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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l 03. 2020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다시 그 길에 서다

2014년, 20대 끝자락에 다다른 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정보를 모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을 탈탈 털어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인 탓에 여권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설렘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4월, 아직은 쌀쌀한 초봄의 그날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갔고, 길을 잃고 지하철 막차를 놓치고 노숙까지 했었다. 다행히 좋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까미노 프랑스길의 시작점인 생장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순례길 걷기는 약 두 달간 계속됐고, 9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완주했다.


2014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받은 sello.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다.

처음엔 그저 마냥 설렜고 겁이 없었고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는데, 무수히 많은 위기를 겪고 도달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이제 이곳에 다시 못오겠지.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려 출발하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꼬박 1년 후.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던 그 길에 다시 섰다.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나의 순례길 완주에 크게 감흥을 느낀 남편은 신혼여행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제안했다.


"그땐 함께하지 못했으니 이번엔 같이 걷자."


두번째 걷는 순례길은 아무것도 모른채 설렘만으로 마주했던 첫번째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과 같았다. 아는 곳, 가봤던 곳, 해봤던 것... 추억을 되새기면서 걸으며 그때의 감동을 공유하는 기쁨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를 표현한 그림. 괜한 욕심에 필요없는 물건까지 다 짊어지고 걸으면서 머릿 속으로는 편안하게 쉬는 것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풍자한 것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걷게 된 길.
나는 이제 와서 다시 한번 그 길을 추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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