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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Sep 12. 2020

까미노 데 피스떼라 -  산티아고 순례길 축소판

6월 24일 - 꼬르꾸비온(Corcubión)

함께 출발한 순례자들은 발을 빠르게 움직여 피스떼라로 향하는 날. 우린 느긋하게 일어나 천천히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8시 15분. 점점 출발하는 시간이 늦어진다.


남들보다 하루를 더 걷기로 했기에 서두르는 일 없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걸으니 전 날의 고됨이 우습게 느껴졌다.


큰 강과 풍차를 보며 걷는 초반에 이어 센다와 메세타를 연상시키는 농로와 산길의 중반 그리고 가파르지만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후반. 마치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축소시켜놓은 것 같았다.

센다에서 만난 표지판. 직진하면 묵시아, 왼쪽으로 가면 피스떼라다.

21km의 짧은 길. 생각해보면 그다지 짧은 거리도 아니건만 33km를 걸은 직후라 그런지 유독 짧고 편하게 느껴진다.


꼬르꾸비온을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다름 아닌 바다 때문이었다. 쎄(Cee) 마을부터 이어지는 해안가 마을은 풍경도 아름답고 편의시설도 다 갖추어져 있었다. 마드리드부터 시작한 우리의 여정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바다, 이곳을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탁월한 위치, 넓고 깨끗한 실내, 바로 옆에 위치한 바르와 식당이 마음에 들어 들른 알베르게는 어쩐 일인지 텅 비어 있었다.

한 마을에서 만난 동네 고양이. 마치 길을 안내해주겠다는 듯이 다가오더니 앞장 서서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인 없는 프런트에는 '연락 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곧장 전화를 걸어 아는 스페인어를 총동원해 더듬더듬 호출을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삐따에로(hospitalero)가 왔다.


대게 알베르게에 가면 오스삐따에로가 침대를 지정해주는데, 원하는 곳 아무 곳이나 쓰라고 말한다. 우리가 오늘의 첫 순례자이자 마지막 순례자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머무르기보단 흘러가는 마을이라서일까.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는 허전함과 고요함이 여간 낯설었다.

쎄 마을에 위치한 페르난도 블랑코 데 레마 재단에서 운영하는 박물관(Museo Fernando Blanco). 대학 설립자인 페르난도 블랑코의 초상화와 유품들을 볼 수 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마드리드 부부 순례자가 알베르게를 찾으면서 알게 모르게 내려앉아 있었던 외로움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배가 정박해있는 해변에 나가 맥주를 마시며 저물어가는 해를 지켜봤다. 조금은 흐리고 쌀쌀한 날씨지만 고요한 마을 분위기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여유에 고민과 걱정은 모두 날아가버린다.


알베르게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까미노 중 마주한 첫 바다였다.

· MAP

까미노 데 피스떼라 (Camino de fisterra) 3일 차 일정 (약 21km)

                                :  올베이로아(Olveiroa) - 꼬르꾸비온(Corcubión)


- 올베이로아(Olveiroa)

- 오 로고소(O logoso) : 알베르게, 바르 있음

- 오스삐딸(Hospotal)

- 오스피딸 순례자 안내소(Punto de información ao Peregrino de Hospotal(Dumbría))

- 쎄(Cee) : 알베르게, 바르, 식당, 대형마트, 병원 있음

- 꼬르꾸비온(Corcubión) : 알베르게, 바르, 식당, 성당, 대형마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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