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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Sep 17. 2020

까미노 데 묵시아 - 아쉽고 서운한 '안녕'

6월 26일 - 묵시아(Muxía)

묵시아 성지는 해안가에 위치해있다. 노사 세뇨라 다 바르카 성당(Nosa Señora de Barca) 주변으로는 많은 바위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바위 하나가 있다. 치유의 바위라고 불리는 돌배 조각이 그것이다.


묵시아에는 산티아고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설화가 내려온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로 떠났던 산티아고(성 야고보)가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멈추었을 때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성모 마리아가 돌배를 타고 왔다고 한다.

노사 세뇨라 다 바르카 성당(Nosa Señora de Barca). 특이하게도 바다를 향해있다. 돌배를 타고 온 성모 마리아를 맞이하는 모양새다.

성모 마리아가 타고 왔다는 돌배의 조각은 소화불량을 낫게 해 준다 하여 치유의 바위라 불리게 되었으며, 죄가 없는 사람이 배 밑에 서면 선체가 움직인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처럼 묵시아는 가톨릭 성지로서 순례자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임에도, 1년 전 나는 미처 오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꼬박 1년 만에 찾은 묵시아.

쭉 뻗은 길에서 화살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순례자들도 많지 않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나나 동행인 모두 초면인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가이드 책에는 주변의 볼거리 정도로 짧게 설명이 되어 있을 뿐이고, 표지석과 화살표가 많지 않아 방심하는 찰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정확한 길을 알지 못하고 걷는다는 것에 긴장감이 감돈다. 혹시나 화살표를 놓칠까 신경이 곤두서고 갈림길이 나오면 곧바로 지도를 펼쳐 든다. 피스떼라 공립 알베르게에서 받아온 지도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간헐적인 이슬비가 내리고 우리는 괜한 불안감에 부지런히 발을 놀린다. 까미노는 마지막까지도 쉬이 품을 내어주지 않는다. 까미노가 매력적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묵시아 성지에 다다른 우리는 35일간 함께 했던 등산화와 이별했다. 그리고 피스떼라에서 보지 못했던 노을을 보기 위해 커다란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슬비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새파랗고 깨끗했던 낮의 하늘은 노을이 질 때가 되니 거짓말처럼 구름에 휩싸였다. 결국 그렇게 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발 끝에 닿은 바다를 온전히 느끼며 까미노와의 이별 의식을 가져본다.


까미노에서의 마지막 만찬은 순례자 메뉴로 결정되었다. 순례자 메뉴는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이 저렴하게 골고루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메뉴다.


애피타이저와 본식(대개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구이로 구성돼 있다.), 후식, 와인을 골고루 맛볼 수 있어 좋지만 1인당 10유로를 매일 지출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몇 번 먹지 못했던 터였다.


이제 내일부터는 순례자도 아니고 까미노와는 안녕이니, 순례자인 마지막 날에 순례자 메뉴를 먹는 것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까미노에서 먹은 다양한 순례자메뉴. 맛은 대체로 평탄하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어 좋다.

처음 신혼여행지로 까미노를 선택했을 때는 걱정도 우려도 많았다.


언어가 안 되는 두 사람이, 두 달간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큰 모험인데 하루 20~30km씩을 매일 걸어야 하는 까미노라니.


걱정과 우려 속에 준비하고 시작했던 까미노로의 신혼여행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미움, 걱정, 후회는 비우고 고마움, 행복함, 즐거움은 가득 담아가는 의미 있는 신혼여행.


물론 아쉬움도 남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섭섭하기도 하지만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과 만족감. 그리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감정들이 가슴을 휘몰아친다.


매일 저녁, 하루를 되새기고 추억하고 기록했으며 다음 날을 계획하고 무사하기를 기도하며 잠들었던 지난 날들.


이제는 다음날 숙소를 걱정하고 걸을 길을 기대하며 출발 시간과 걷는 거리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 걸은 길을 떠올리거나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걸으며 만났던 것들을 적을 필요가 없다.


시원한가, 편안한가 생각해보니 아쉽고 서운하기만 하다.


묵시아를 찾아가는 길의 풍경. 아름답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 MAP

까미노 데 묵시아 (Camino de Muxía) 1일 차 일정 (약 29km)

                                :  피스떼라(Fisterra - 묵시아(Muxía)


- 피스떼라(Fisterra) 

- 산 로께 돌십자가(San Roque) : 화살표가 없다. 표지석을 보고 가면 되니 불안해하지는 말자.

- 산 마르띠뇨(San martiño) : 바르, 성당 있음

- 에스까셀라스(Escaselas)

- 에르메데수호 데 바이호(Hermedesuxo de baixo) - 바르 있음

- 부산(buxán) : 알베르게, 바르 있음

- 수아리바(Suarriba ) : 알베르게 있음(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화살표를 따라가는 왼쪽길과 달리 직진하는 길은 거리는 짧아도 표시가 없어 헤맬 수 있다.)

- 까스뜨레헤(Castrexe) : 알베르게 있음

- 빠드리스(Padris) : 알베르게 있음

- 루갈 데 릴레스(Lugar de Lires) : 알베르게, 바르, 식당 있음. 묵시아 길 절반 지점으로 이곳에서 머무르는 순례자들이 많다.

- 피아헤(Frixe) : 알베르게, 성당 있음

- 모그뀐디안(Morquintian) : 성당 있음

- 수라란떼스(Xurarantes) : 묵시아 3km 지점

- 묵시아(Muxía) : 알베르게, 바르, 식당, 성당 있음

- 묵시아 성지 : 해안도로를 따라 1.5km를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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