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해정 Aug 16. 2018

괴테는 몰라도 배틀그라운드는 알아야

그레이트 헨타이 아닙니다 

초등학교에 수위 아저씨가 새로 왔다. 친절했던 아저씨는 오자마자 아이들의 인기를 차지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아저씨와 컴퓨터 선생님이 사귄다는 것! 그 소문은 가짜로 밝혀졌지만, 아저씨가 일과 후 매일마다 컴퓨터실에서 선생님과 만나는 건 진짜였다.  


얼마 뒤 아저씨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소문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동네 1호 PC방 사장님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PC방을 차리기 전에 컴퓨터를 배우셨던 거다. 컴퓨터 선생님과 사귄다는 소문이 있던 자리엔 아저씨가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가득 찼다. 아저씨는 가끔 학교 앞에 와서 우리들을 아는 척하며 PC방에 놀러 오라고 했다. 스타크래프트와 한게임이 한창 유행하던 때였다. 


담배연기와 초등학생에겐 비싼 요금 때문에 PC방에 자주 가진 못했지만, 집에서만 하던 테트리스를 친구들과 할 수 있어서 나도 PC방에 가곤 했다. 나는 테트리스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빡쳐서 그만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넷마블 카트라이더에 빠졌다. 당시 난 허영으로 가득 찬 10대로, '청소년을 위한 명작 시리즈' 같은 고전을 즐겨 읽었다. 강 건너 보이는 롯데월드의 '롯데'가 괴테의 작품 속 이름이라는 것에 깊은 깨달음을 얻어, 카트라이더 아이디를 '그레이트 헨'으로 지었다. 그는 <파우스트>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테트리스만큼 나는 카트라이더를 아주 잘했다. 하지만 게임을 할 때마다 기분이 상하곤 했다. (아마도) 내 실력을 시기한 이가 내 아이디를 가지고 놀렸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헨이라는 이 우아한 이름을 지 마음대로 '그레이트 헨타이'라 불렀다. '헨타이'를 찾아보니, 변태의 일본말이란다. 하루아침에 '왕 변태'가 된 나는 내 아이디가 싫었고, 게임도 곧 그만두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보드케임카페가 인기였다. 그곳에서 배웠던 루미큐브를 아직도 즐겨한다. 이제는 보드 말고 온라인에서 하지만 말이다.


게임 이야기를 하자니 엄마의 입담을 빠뜨릴 수 없다. 고스톱을 치는 우리 엄마만큼 입담 좋은 사람은 없다. 


짝이 맞는 같은 패가 두 장씩 나오면 '2학년 2반 2번'이라고 한다. 세 명 중 하나가 광을 팔고 연달아 죽으면  '열사(烈士)는 있어도 연사(聯死)는 없는 법'이라고 거절한다. 패가 안 풀리면 '소나기가 내릴 땐 잠시 쉬어 가야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무 높은 점수 차로 상대를 이기면, '오늘이 3.1절이어도 만세를 못 부르겠네'하며 미안함을 드러내고 '한국인의 정은 개평에서 나오지'하며 너스레를 부린다. (온라인 맞고에 무슨 개평이람) 나는 그게 우스워서 엄마의 고스톱을 구경한다. 성능 좋은 내 노트북에 고스톱 게임을 깔아 빌려준다. 

 

2016년 추석이었던가. 알파고와 이세돌의 승부가 세계를 휘감고 그 열기가 아직 남아있었을 때 엄마는 새로 받아든 패를 들고 이런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건 알파고가 쳐도 못 이길 똥패야.

 

게임 좋아하시나요?

컨설팅기업 PwC는 게임 산업이 2020년까지 약 5%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2020년에는 게임 규모가 901억 달러(한화 약 103조)를 웃돈다고 한다. 더 감이 오는 숫자를 보자. 약 500개. 하루 동안 마켓에 등록되는 게임의 숫자다.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항상 소지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기기가 늘어나고 SNS의 발달로 '늘 접속해 있는' 상태가 일상이 되면서 게임은 우리 생활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뿐만 아니라 게임은 다양한 산업과 접속해 새로운 시너지를 낸다. 게임을 하지 않아도 모두 게임 유저가 되는 시대는 이미 도래 했다. 

그러나 이건 산업의 이야기일 뿐. 게임이 가정에 들어오면, 일단 싫다는 분위기다.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공감할 만한 일이 아닐까. 


동료 중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었다.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으로 글도 쓰고 하는 그런 친구였다. 하루는 마케팅 담당자가 그에게 게임에 빠져있는 자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장르에 대한 호불호는 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없는 것처럼 게임도 마찬가지예요. 
인문학을 알아야 지적대화가 가능한 것처럼 이제는 게임을 알아야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해져요. 
게임으로 나무라지 마세요. 어떤 게임을 하느냐를 보세요. 

 

그렇다. 괴테는 몰라도 배틀 그라운드는 알아야 하는 시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