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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Jan 24. 2019

아흔, 일하고 있으면 땡큐일 인생

손바닥만 한 크기의 지면에 영화 <똥파리> 리뷰를 쓰는 게 첫 임무였다. 그게 2009년의 일이니, 횟수로 봉급생활 10년을 채웠다. 중학교 때 KFC에서 시작한 아르바이트부터 계산한다면, 나의 사회인 경력은 꽤 될 것이다. 그만큼 면접도 많이 보았고, 이제 면접이면 자신 있을 정도다. 청소년 서적 출판사에서 일할 땐 고입/대입을 위한 면접책도 쓰고, 편집도 했으니. 


면접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은 무엇일까. 이게 아닐까 싶다. 

꿈이 무엇인가요?


대게 마무리에서 나오는 질문으로, 전문성(전공) 확인이나 업무역량하고는 좀 다른 굳이 편입하자면 '인성'을 확인하기 위한 물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답은 무난한 걸 고르면 좋다. '책을 써보고 싶다'거나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 등등 추가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적당히 말하면 된다. 어떤 분은 경력자 면접에서, '조직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조직의 성공이 개인의 성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직이 성공하는 게 내 꿈이다'라고 이야기했다던데 면접관이 조금 감동하지 않았을까? 


MBC '무한도전' 면접의 신 특집 한 장면. 


나 역시 이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할 때도 임원면접에서 이 질문이 등장했다. 나 역시 추가질문이 없을 적당한 대답을 고르다가, 그냥 진짜 나의 꿈을 들려주기로 했다. 


90살에도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나는 정년에 은퇴하지 않고 일하는 게 꿈이다. 기대수명이 100년이 넘어 120세에 다다른다고 하는데, 90세에 일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건 '많이' 이기적일 수 있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일할 미래의 동료들은 90세의 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청소기로 유명한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현재 72세다. CEO의 자리에서 물러나 현역 엔지니어로 일한다는데, 신문기사를 통해 본 그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동료도 행복한지 물어야 한다. 게다가 다이슨은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를 채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젊은 열정과 새로운 아이디어 때문이다. 20대 입장에선 나이 차가 반세기나 나는 어른과 함께 일하기가 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말이다. 


'아는 사람이 들려준, 아는 사람의 이야기'로 출판계에도 유명한 현역 어르신이 있다. 그는 표지 디자인 업무를 보는데, 안타깝게도 센스가 최신의 것이 아니다. 일단 내놓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유명한 작가의 책도 그분이 손댔다 하면 중고서점에서나 찾을 수 있는 70, 80년대 책으로 둔갑한다고. 



90살에 무슨 일을 할 건데?

나처럼 90살이 되어서도 일하고 싶어 하는 모임이 있다. 하루는 모임에서 '우리는 90살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토론한 적이 있다. 마치 창업동아리가 창업기획서를 내기 전 브레인스토밍하는 것처럼. 


젊은 동료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고, 소소하더라도 돈도 벌려야 하고, 정신적 만족도 얻을 수 있는 일. 

90살이란 대단한(!) 전제조건을 끼고 이런 조건을 충족하려면, '나이 든 사람끼리 나이 든 사람을 고객으로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실버세대의 실버마켓. 


그때 나온 몇 가지 아이템을 소개한다. (진지하지 않다)


먼저 실버세대를 위한 카지노 카페다. 시간당 입장료를 내면 카지노를 즐길 수 있다. 허가받지 않은 도박장 영업은 (미래에는 어떨지 몰라도) 불법이므로, 보상으로 음료나 간단한 선물을 한다. 잃는 법은 없도록 기계를 조작한다. 도박과 게임이 주는 스릴과 성취감을 맛보고, 시간도 때울 수 있다. 지금부터 바카라를 배워 딜러로 일하거나, 보상으로 줄 선물을 기획하는 MD로 일해도 좋겠다. 


이 아이디어는 일본의 한 노양요양시설에서 빌려왔다. 요코하마 외곽지역에 있는 이 요양소는 카지노 스타일을 표방한다. 가짜 돈으로 도박하게 하고, '오늘의 우승컵'을 수여하는 식으로 참가자에게 보상한다. 요양원인 만큼 입장하기 전 혈압과 체온을 재는 건 필수다. 


이런 건 어떤가. 굿즈를 표방한 실버 아이템 가게를 운영하는 거다. 

내 나이 또래라면 다들 해리포터를 알고 있을 테니 기숙사별 아이덴티티를 차용한 지팡이나 돋보기안경 같은 거를 구비해놓는 거다. 옆에선 손녀, 손자를 위한 선물코너를 꾸려놔도 좋을 것이다. 


90살에 창업하기 부담스럽다면 취직하는 방법도 있다. 

보청기 브랜드 오티콘으로 유명한 윌리엄 디만트 그룹은 2018년 '스마트 보청기'를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켜고, 잠들기 직전에 끄는 보청기야말로 실버세대에겐 휴대폰보다 더 가까운 기계장치다. 이렇게 생활에 밀접하다는 점을 이용한다면 보청기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다. 


윌리엄 디만트 그룹이 꿈꾸는 미래는 이렇다. 

일어나자마자 보청기 전원을 켰다. IoT 센서가 작동하면서 거실 조명이 켜지고 커피머신이 작동한다. 보청기를 통해 측정한 체온과 혈압, 혈당수치 등이 스마트폰 화면으로 전송된다. 


멋지지 않은가. 이 회사에서 고객분석과 테스트 등을 위한 노인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때를 대비해 파워블로거가 되어야겠다. 



이런 아이디어는 내가 90살이 되기도 전에, 당장 내일이라도 나올 수 있다. 어쩌면 이미 시장의 외면을 받은 옛 아이디어일 수도. 알파고와 알파고가 바둑을 두고, 그 기보가 신문에 실리는 시대. 오늘의 아이디어는 해가 지기도 전에 과거가 된다. 60년 후의 일을 상상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주 무의미한 건 아니다. 90살에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하면서, 90살이 어떨지 그 비밀스러운 문을 열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90살에 일하고 싶다는 건 많은 걸 포함한 말이다. 가장 먼저 건강해야 하고, 돌봐야 할 손자나 아픈 배우자가 없어야 하며, 아이디어가 아직 '살아있고', 남과 협력할 줄 알며, 그 나이에도 꿈을 좇는다는 것. 


그래서 면접에서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반응이 '아니, 이런 직장 생활을 90살에도 하고 싶다고? 발전이 없는 거 아냐? 탈락!' 하지 않고, '90살에도 일할 수 있으면 행복하겠군요'라는 반응이 나온다. 젊은이와 다름없는 삶. 우리가 원하는 노년이다. 


글을 쓰면서, 문득. 

실버 비즈니스가 유명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고 싶어졌다. 한 90살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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