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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름 Apr 12. 2021

우리는 케이팝을 기억한다

we remember kpop


요즘 문명특급에서 컴눈명이라는 컨텐츠를 진행하고 있다. 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수 있는 명곡이라는 이야기인데, 주로 2010년대의 케이팝이 그 물망에 오른다. 나인뮤지스의 뉴스, 애프터스쿨의 디바, 샤이니의 뷰, 에프엑스의 4walls와 같이 다양한 곡들이 존재하고 기획을 점점 더 세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븐틴의 승관은 최근에 we remeber kpop이라는 브이앱으로 유명해져서 케이팝판에서는 부교수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는 아직 케이팝을 기억한다는 그 제목이 왜 그렇게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케이팝을 사랑하는,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잘 지내시는지 물어보고 싶다. 본격적으로 아이돌 문화가 부흥기를 맞고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보는 시대를 2010년 즈음이라고 쳤을 때, 그때부터 2021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했고 누군가는 시대에 역행하는 짓을 하고 얼굴과 이름이 지워지기도 했다. 하루도 조용한 나날이 없었다. 쉴 새 없이 문제가 터지고 다시 또 사랑한데도 돌멩이에 걸려서 넘어지고 내 안목은 왜 이런가 신세 한탄하는 날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모금을 하고 시위를 하고 맹세코 단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케이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니 한 번이라도 케이팝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 번이라도 케이팝을 사랑한 적 있는 당신이, 만약에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그만두게 되었다면 그건 당신의 안목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했던 기억, 보여주는 모습으로 인해서 즐거웠던 기억을 고통으로 안고 살아가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다. 가을방학의 계피님이 하신 "누가 쓰고 누가 불렀든, 노래로 위안받았던 순간의 기억은 무엇에도 침범받지 않을 오로지 여러분의 것"이라는 말처럼 노래로 인해, 케이팝으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은 그 순간 자체만으로도 그 누구도, 심지어 노래를 부른 당사자도 침범할 수 없는 소중한 영역이다. 추억 앞에는 굳이 미사여구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냥 추억은 추억대로 안고 가셨으면 한다. 케이팝에서 상처 받고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분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사랑을 누군가와 나누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이 터지고 하는 와중에 거기 뜨면 되지~ 아이돌 안 좋아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이 문화를 즐겨보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길가에 지나가다가 온깃이 스쳤다는 이유로 호감을 갖게 되는 드라마 클리셰가 이해되는 것처럼 모니터 너머로 마주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콘서트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더더욱 빠져나올 수 없다. 음악이 주는 황홀함이란 그런 것이다. 게다가 팬덤 내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유대감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빠져나올 수 없는 일이 된다. 



음악이 주는 힘은 원래 그런 것이다. 거기에다가 사람에 대한 호감,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만나게 된 인연까지 더하게 된다면 그만큼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없다. we remember kpop이라고 말했을 때, 우리가 기억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노래나 퍼포먼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곧바로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음악은 가장 손쉬운 타임머신이라고 하잖아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나서 그 음악을 들을 때 얼마나 즐거웠는지, 얼마나 슬펐는지, 그때 날씨가 어땠는지, 내가 누구 를 만나고 있었는지까지 떠올리게 된다. 일반 대중가요여도 그런데 케이팝이다? 그러면 그때 내가 누구의 콘서트를 어떤 친구랑 같이 갔는데 그날 콘서트 끝나고 뒤풀이에서 먹은 피자가 맛있었고 그 날 행복했다 까지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어떤 아이돌을 이제 그만 좋아하게 되었다고 알리고 그 판을 떠나와도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같은 감정과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유대감은 어디를 가도 쉽게 따라올 수 없다. 케이팝이 원래 그렇다. 



사람들이 실물을 보지 못한 지 몇 년째냐며 내 케이팝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이 난리통에서도 아직도 케이팝을 좋아한다. 케이팝은 단순히 아이돌 그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콘텐츠를 즐기면서 그와 관련된 밈을 재생산하면서 웃고 떠들고 같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취미 활동의 원동력에 오히려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위한 사랑보다는 나를 위한 사랑을 외친다. 아이돌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사랑하겠다는 문화보다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이 문화를 즐기겠다는 생각이 요즘은 더 흔하다. 이 취미는 아마도 놓기 힘들 것이다. 이 취미로 인해서 죽도록 힘든 시간을 겪었던 적도 있지만, 콘서트 오프닝에서 폭죽이 터지고, LED가 열리면서 무대에 멤버들이 등장하고, 다 같이 응원봉을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는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영원히 잊지 못해 나는 아직도 케이팝을 좋아한다. 지치고 힘든 어느 새벽에 누군가의 한 마디로 위로받아 내일 또 살아갈 힘을 얻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해 나는 아직도 케이팝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일만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나쁜 일이 있을까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느니,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생각하면서 이것도 겪고 저것도 겪고 그냥 무던하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나와 같이 이곳에 서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케이팝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케이팝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길 희망하기도 한다. 한 번이라도 찍어먹어봤던 사람들 또한 나름대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곳에서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부교수님같은 분들이 케이팝을 듣고 자라 또 하나의 케이팝을 만들어낸것처럼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사회에 족적을 남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2010년의 케이팝이 있었기에 2021년의 케이팝도 있는 것이고 2010년의 케이팝은 2000년대의 대중가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는 계속해서 케이팝을 기억할 것이다. 문명특급과 부교수님의 브이앱이 그러한 것처럼. 한 명의 소비자인 나도 목격자로 계속해서 케이팝을 기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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