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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름 Nov 02. 2021

여성들의 팀 스포츠, 골 때리는 그녀들.

유캔두애니띵



축구 때문에 웃고 축구 때문에 우는 여성들의 이야기. 보는 사람이 더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이야기.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다 보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의 출연자들은 축구가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였냐, 축구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다른 스포츠와는 또 다른 것 같다고 말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코미디언, 모델, 가수,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이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는 한데 모여 축구에 몸과 마음을 내던진다. 그들은 다리에 멍이 들고, 발톱이 빠지고,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테이핑을 덕지덕지 붙이면서 사력을 다해 축구를 한다. 매 경기를 마지막인 것처럼 뛰고 난 뒤에 이긴 팀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진 팀은 누구보다 아쉬워한다. 왜 이렇게까지 해?라고 물어도 다들 모르겠다고, 축구가 너무 좋아서 이기고 싶다고 답한다. FC 불나방의 박선영의 활약과 FC 구척장신이 보여준 성장 서사와 같이 축구에 진심이 된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올해에는 전 국민을 감동시킨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만들어낸 여자 배구 대표팀도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여자 배구 대표팀의 스포츠 정신은 배구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여성 팀 스포츠에 대한 관심까지 끌어올렸다. 배구가 이렇게 재밌는 건지 몰랐다는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배구를 응원했다. 김연경 선수가 외치던 하나만 해보자 하나만-은 큰 감동을 준 명장면으로 꼽힌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스포츠 정신이 빛났던 배구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배구 선수들이 받는 대우까지 이어졌다. 샐러리 캡과 여자 배구 선수들에게만 주어진 짧고 붙는 유니폼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배구 선수들이 하는 활약만큼 대우를 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자 축구 선수에 대한 대우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지소연 선수가 첼시 FC 위민에 들어가서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으며 대단한 활약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언론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서특필될만한 업적에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것은 아마 여성 스포츠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전에는 미디어에서 팀 스포츠로 활약하는 여성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여성이 팀 스포츠를 잘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리 티비 예능의 힘이 약해졌다고 해도, 레거시 미디어로 인정받는 티비 예능의 힘은 여전히 작지 않다. 여성 축구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많아지고, 여성이 미용 목적 이외의 목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골 때리는 그녀들’이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여성 축구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축구 경기 매칭 플랫폼 ‘플랩풋볼’ 자료를 보면, 지난해 5035명이었던 여성 회원 수는 올해 9월까지 7856명으로 늘었다. 이예림 플랩풋볼 운영팀장은 “<골 때리는 그녀들> 방영 기간에 신규 참여 문의나 포털 사이트 클릭 수가 유의미하게 늘었다"라고 말했다.


FC 국대 패밀리 소속 양은지의 첫째 딸이 엄마인 양은지에게 축구가 힘든지 아니면 할만한지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 양은지는 “축구는 힘든데 재밌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을 듣는 아이의 눈빛이 빛났다. 미디어란 그런 것이다.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소리를 지르고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여성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면, 그것은 곧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엄마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당연히 자신도 축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이 예능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른들도 당장 풋살장으로 뛰어나가는 마당에 아이들은 오죽할까.


KBS 다큐 인사이트 ‘국가대표’ 편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여성 운동인들의 운동 능력, 스포츠 정신에 대한 이야기에 잘 주목하지 않았던 점을 지적했다. E채널에서 방영되는 예능 ‘노는언니’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운동인들의 본업보다 사생활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언론의 태도를 언급했다. 그동안 여성 스포츠인의 외모와 몸매에 대해 언급하기 급급했던 언론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운동에 진심인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볼 수 없었다. 미디어가 스포츠를 다루는 방식과 여성 스포츠인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씩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조차도 출연자들에게 여신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아직 더 나아갈 길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능이 시사하는 바는 뚜렷하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성별이 무엇이든, 원래 무엇을 했든, 피부색이 무엇이든 당신도 해낼 수 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 해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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