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뒤엔 과연 기쁨이 찾아올까
좋아하는 가사 중에 그런 가사가 있다.
"슬픔 뒤엔 기쁨이 찾아와"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하지 않나.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는 말인데,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들은 그에 대고 정말?이라고 묻는 듯하다.
** 이 글에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완다 비전, 로키, 팔콘과 윈터 솔저, 호크아이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다 비전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고 했을 때, 당연히 나도 디즈니 플러스 구독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 보는 OTT에 무엇이 있는지 너무 궁금했고, 보고 싶은 드라마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보고 싶었던 건 완다 비전이었다. 완다가 드디어 스칼렛 위치로 각성한다는 내용을 듣고 뭐야 당연히 봐야지! 구매~! 하고 완다 비전 1화를 틀었는데.. 드라마가 좀 이상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토불이 인간으로서 미국의 옛날 시트콤 감성이 뭔지 모른다. 딱 봐도 옛날 시트콤 같은 분위기에서.. 무슨 호러 영화같이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분명히 엔드게임에서 죽었던 비전이 다시 살아나 완다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만들고? 그리고 영상은 흑백이고? 뭔가 이상해서 끝까지 봤다. 끝까지 다 봤더니.. 엉엉 우는 사람이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그 사람을 가짜로라도 불러올 수 있다면
당신은 불러오겠는가?
나라면 다시 불러왔을 것이다. 완다도 불러왔다. 자신의 힘으로 비전을 세상에 다시 불러내고, 그걸 가로막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미 다 가졌으니 날 건드리지 말라며 협박하고.. 도시를 무너지게 할 만한 초능력이 있는 초인이 한 선택이 고작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는 사실이 이 드라마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자신이 불러낸 연인을 다시 돌려보내는 장면 또한.. 가슴이 미어졌다.
사랑하던 이가 실험체로 쓰이는 것을 보고, 능력으로 다시 세상에 불러내고, 다시 또 돌려보낸 이후에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다시 돌아가는 걸 보면서 히어로며 초능력이며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세상을 지킨 들 무엇하겠는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하나를 지키지 못했는데.. 모든 걸 잃고 난 완다가 그 이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지독하게 여운에 시달렸던 드라마다. 엔드 게임 이후 사람들은 다시 사람들을 돌려받았는데 자신만 잃어버린 심정이 어땠을까.. 감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적 있는 사람들은 ptsd에 유의하길 바란다.
로키
아스가르드의 장난꾸러기 신 로키는 이 드라마에서 의외의 면모를 보여준다. 멀티버스에서 말썽을 피우는 본인을 보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산으로 가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멀티버스라는 소재는 정말 흥미로웠지만, 로키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도 그렇고.. 로키라는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작품이다.
멀티버스를 관리하는 사무직 공무원들의 표정이 너무 매너리즘에 찌든 표정이라 ㅋㅋㅋㅋ 좀 웃겼다. 어딜 가나 공무원들은 똑같은가 보지요?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나 사상이 억압되는 구조.. 그것에 반기를 드는 주인공들.. 참으로 미국에서 만든 드라마 같다. 개인의 자유나 사상이 중요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절대 가치로 여기는 미국인들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팔콘과 윈터 솔저
한국에서 어쩌면 가장 언급되지 않는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한국에서 그렇게 큰 인기가 없어서 그럴 뿐이지,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높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이 드라마에도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의 클리셰가 등장한다. 집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과 옳음에 집착하는 주인공이 악역을 비호하는 발언을 하거나, 뉴욕 한가운데서 시민들을 구해낸 뒤에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히어로 스피치를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그것들을 들으면서 씁쓸해질 수도 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흑인이 히어로가 되는 것에 대한 반발을 드라마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현실을 봐야 하니까. 흑인이 그렇다면 유색인종은 얼마나 그렇겠는가. 어떻게 보면 샹치가 나온 게 기적일 수도 있다. 샹치 역을 캐스팅할 때 해당 역으로 언급됐던 모 배우를 보며 너무 잘생겨서 안 된다고 거절했던 마블인데 뭐.
하지만, 세상이 캡틴 아메리카를 잃은 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잃은 뒤에 어떻게 이겨내는지, 그 자리에 대한 책임감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그동안 악의 편에 서 있었던 윈터 솔저가 어떻게 선의 편으로 돌아오게 되는지, 그에 캡틴 아메리카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유색인종 히어로가 더 이상 세상과 맞서 싸우지 않길 바라지만.. 그런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콘의 유머 감각과 윈터 솔저의 새 출발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가 완다 비전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였다. 사람을 살살 긁는 짭캡틴도 나온다.
호크아이
차세대 호크아이..?라는 말이 나올 때 다들 의문을 품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차세대 호크아이가 헤일리 스타인펠드가 연기하는 케이트 비숍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모두 의심을 거두었던 것 또한 기억한다. 히어로를 동경한 금수저 사고뭉치가 차세대 호크아이로 등장한다. 원래 호크아이였던 클린트 바튼이 사랑하는 동료 나타샤 로마노프를 잃고 무너져 있는 그때 케이트 비숍을 만난다.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클린트 바튼이 어떻게 무너져 있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지, 케이트는 어떻게 천방지축 똥꼬발랄 아기히어로에서 벗어나 실전에 뛰어드는지 보다 보면 당신은 금방 케이크 비숍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 있고, 케이트가 그랬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케이크가 결국 클린트네 가족을 만나는 장면은..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었다.
로키를 뺀 네 편의 시리즈 모두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히어로도 영웅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 각기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자신의 방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물론 누군가는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을 친다. 인생은 묘하게도 슬픔 뒤에 바로 기쁨을 주지 않고, 기쁘다고 해서 바로 시련을 주지도 않는다. 시련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사람을 무너뜨리는데, 우리가 교통사고처럼 만난 시련이 있다면, 그것을 각자의 방법으로 어떻게 이겨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의 공통된 서사였던 것 같다.
다시 일어나는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 그런 건 어디에서 나올까. 아무래도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나를 살피는 애정이나,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사랑했던 그 사람이 남긴 말들이나,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또 생기는 게 아닐까 싶다. 순서대로 팔콘과 윈터 솔저-완다 비전-호크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무녀 져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을 보면서 다시 일어나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무너져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길 원하지 않나.
매번 좋은 일만 생기진 않겠지만,
어떻게든 괜찮은 날은 돌아오지 않을까
이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