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리 Sep 28. 2020

이젠 날 좀 그만 사랑해도 괜찮아

우리 집 유행어 #1

요즘 JTBC ‘1호가 될 수 없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개그맨 부부는 이혼율이 0%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유머 코드 때문인 것 같다.

아무리 화가 나도 서로의 유머 코드가 잘 맞으면 금방 풀어지기 마련인 데다, 모든 것을 웃음으로 승화를 시키니 개그맨 부분들의 금슬이 좋은 것이 아닐까?


우리 아빠 엄마는 유머 코드가 정말이지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런대로 잘 산다. 참 신기하다.


‘1호가 될 수 없어’의 팽현숙 님과 우리 집 김여사 님은 성향이 굉장히 비슷하다 (일단 두 분 다 이름이 현숙이다.) 이런 캐릭터들은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산다. 잔소리 대마왕이지만 그런 모습들이 귀엽기도 하다. 물론 그 시절 대표 퀸카였다는 부분도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 아빠는 최양락 님과 박준형 님을 섞어놓은 캐릭터다. 최양락 님처럼 깐족이 특기며, 와이프의 성질을 괜히 건드려보는 것이 대 반사다. 반대로 박준형 님처럼 자상하고, 와이프에게 백이면 백 져주고 또 주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점도 상당히 비슷하다.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면 내가 상당히 피곤해진다. 둘 사이의 판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시절 법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할 것을…..)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는 대부분 딱 두 가지 이유다.


첫 번째는 아들 문제, 두 번째는 아빠가 너무 심하게 깐족거릴 때다. 이럴 때에 엄마는 분해서 죽으려고 하고,

아빠는 대부분 엄마의 성질을 건들고선 좋다고 낄낄거리곤 한다 (남자는 나이가 먹어도 애라던데, 정말이지 딱 그 꼴이다.) 



어느 날은 집에 들어와 보니, 항상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없더라.


“엄마! 엄마!”를 불러봐도 답이 없어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옷 방에서 전화가 울리더라.

옷 방 문을 열어보니 엄마가 매트를 깔고 마치 시위하듯 누워 있었다. “왜 이러고 있어,”라고 물어보니, 엄마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그럴만한 간이 있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24시간 중 거진 24시간을 나와 함께 사무실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 왜? 엄마가 착각하는 게 아니야?라고 반문을 했다. 반문을 하니 엄마는 더 억울한 듯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는 어젯밤, ‘촉’이 와서 아빠의 핸드폰을 뒤져보니, 아빠가 어제 분명 오랜 친구들 두 명과 커피를 마시기로 했는데 거기에 자신이 모르는 여자가 섞여있었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여자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고, 자신 몰래 만나기까지 한 것이 너무 속상하고 서운하다고 했다. 일단, 이미 여기서부터 나의 상식선의 ‘바람’이 아니 였지만, 너무 서러워하는 엄마를 토닥여주고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빠는 오랜 친구 둘과 커피를 마시던 중, 우연히 벙개로 여자 동창이 합류를 했고, 함께 두어 시간 커피를 마시고 근황 토크를 한 것이 다라고 했다. 아빠야말로 너무나 억울한데, 엄마가 저렇게 시위 아닌 시위를 벌이니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요즘 중학생 커플도 이런 일로 싸우지 않을 텐데…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아빠를 데리고 옷 방에 가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도록 했다. 판사 역을 맡고 있는 나는, 아빠와 엄마는 서로 눈빛 교환을 하고,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엄마는 자신은 아빠를 아직까지도 너무 사랑해서 이런 모든 것이 섭섭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도대체 우리 아빠는 무슨 마성의 매력이 있길래 우리 엄마는 거진 40년간 이렇게 일편단심의 사랑을 할 수 있단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도 없는 찰나에 우리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이젠 날 좀 그만 사랑해줘도 괜찮아. 날 좀 놔줘. 부탁이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


엄마는 베개를 아빠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아빠는 그렇게 옷 방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엄마의 투쟁은 하루 정도 더 갔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서로 “이젠 날 좀 그만 사랑해줘”를 유행어처럼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