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수 이효리가 한 예능에서 얘기했다; 자신은 항상 모든 주변을 다 먹여 살려야 하는 사주라고.
그 말이 참 슬프게 느껴졌다. 어깨 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울까? 그런데 이효리는 너무 쿨하게, “얻어먹으면서 사는 것보다 나은 삶이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
역시나 오늘도 그녀는 나를 감동시킨다.
왜 우리는 선택하지도 못하는 것을 그렇게나 부러워할까?
사람을 수저로 비유해서 금. 은. 동. 흙 등 등급을 나누어 이야기하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타이틀들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때로는 너무나 속상하고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차피 태어날 때 복불복으로 태어나는 거, 왜 우리는 남의 집안 사정, 돈, 재산 같은 것들에 불필요한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왜 그런 것을 부러워하며 살아갈까? 애초에 바꿀 수도 없는데.
다양한 모임들, 온라인 커뮤니티, 심지어 메이저 방송들에서도 너무나 쉽게 우리는 “수저”로 사람의 등급을 나눈다. 그 사람의 돈이 아닌 가족의 일원이 일구어낸 돈과 명예. 우리는 그것에 열광하고 또 부러워한다. SNS만 봐도 그렇다. 명품가방, 비싼 외제차와 브랜드 아파트를 태그 하여 사진을 올리고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얼마 전에 ‘지하철 3호선녀’ 사건은 정말 안타깝기까지 했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자 자신을 명품가방과 명품 옷가지, 브랜드 아파트로 포장한 그녀는 실제 달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걸 또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냈고, 그녀의 SNS는 어느새 삭제되었다. 참 이상한 문화임은 분명하다. 남의 생활에 지나치게 오지랖을 피우고, 또 그들의 돈과 삶에 갖지 않아도 될 관심을 두면서 속상해한다.
정말이지 정신과 감정의 학대 같다.
외국에서 중산층의 기준은 제2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며 폭넓은 세계 경험을 갖는 것,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별미(요리) 하나 정도 만들 줄 알기,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는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같은 것들이다. 돈이 기준이 아니라 인격과 인품, 한
사람의 성품에 초점을 맞춘 기준들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중산층의 기준은 월급 500 이상, 부채 없는 아파트 자가 30평 대 이상, 예금액
잔고 1억 이상이다 등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보더라도 우리는 “사람”보다 “돈”이 앞서는 사회이다.
이 얼마나 슬픈 사회인가. 더군다나 요즘 같이, 3포를 넘어 5포 세대에 말이다. 이러한 사회의
기준들이 어쩌면 우리를 더더욱 “수저의 틀”에 가두는 것 일수도 있다. 이 사회가 오죽 각박하면
한 TV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 아이가 “돈이 없는 화목한 가정보다, 돈이 있는 불안정한 가정”을
택하겠는가? 그 모습을 본 해당 아이의 부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랑스러워했을까, 아니면
슬퍼했을까? 나라면 정말 가슴 아팠을 것 같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예전과 비교했을 때 개천에서 나는 용이 되는 것이 더 어려워졌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팍팍해진 것이 맞다. 밀레니엄 세대인 우리는 더더욱 물질만능주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직업과 집안이 어느덧 명함이 되었고, 나 자신보다는 배경이 우선시되는 사회다.
우리는 이를 당당히 맞서야 한다. 어차피 태어난 이상 바꿀 수도 없는 팔자이다. 그렇기에 배경을 탓하고, 남의 ‘수저’를 부러워할 시간에 나의 내면을 가꾸는데 힘써야 한다.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기회가 반드시 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배경이 좋으면, 집안이 좋으면 그 기회가 더 빨리 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는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해서, 안정이 되어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우리가 돈보다는 가치를, 배경보다는 자기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면의 나를 가꾸고, 나 자신을 찾아 나서는. 나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희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