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을 구독하지 않는 남자

by 이해림


나는 우울의 전시자이자 곡절 많은 세미 작가.

그리고 세미 인플루언서.


수많은 낯선 이들이

내 밑바닥을 구독하고 구경하고

때론 위로하고 때론 동정하는 이 세상에 그는 없었다.



공감받지 못하는 나의 절망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그 갈증은 이내 불안이 되어,

왜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

왜 나의 고통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

따위의 말들로 그를 찔러댔다.



내가 그동안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

얼마나 열심히 싸워왔는지

그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이 다쳤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다시 살고자 하는지

알아주는 사람이어야만 사랑이라고 믿었다.



나의 불행에 대한 글을 쓰는 것만이

삶을 견디고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전시된 나의 비극 위에 따뜻하지만

얄팍한 낯선 이들의 연민이 입혀진다.




나의 우울을 구독하지 않는 남자.


그는 내가 쌓아 올린 높은 비극의 성에

노크도 없이 신발까지 신고 걸어 들어와,

'여기 너무 어둡다. 불 좀 켜고 밥 먹으러 가자'

투박하게 던진다.



나의 고통과 깊이를 무시하는

무지하고도 무례한 남자의 말에,

너도 한 번 찔려보라는 심산으로

아픈 말들을 골라내어 그에게 내던지던 시절이 있었다.



우울에 취하고 삶에 지친 내가

비극의 성에 혼자 영원히 갇히지 않도록

현실의 땅으로 끌어내리는 가장 직접적인 사랑인 줄도 모르고.




이해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오로지 수면제로만 꺼지는 나의 매일을.


무너져 있는 내가 아니라,

약 없이 버티지 못하는 내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매일을.

찬란하기도 했던 나의 시절을.



그는 나의 절망을 묻는 대신

불안으로 차갑게 식은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때로는 그 뻣뻣한 무심함이

나를 극악스럽게도 외롭게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쌓아 올린 비극의 성에서

못 이기는 척 그의 손에 이끌려 나와

현실의 볕 아래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나를 아예 모르는구나 라는 지독한 외로움과

나를 오해하지 않는구나 라는 기묘한 해방감.

이 온도 차가 주는 안도감과 외로움 사이에서 나는 멀미를 느꼈다.



전시된 비극의 관람객들은 나의 글을, 그리고 나를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해는 곧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침몰했는지를 선명하게 말할수록

그 위로들이 커져간다고 믿었다.

그것이 연민이었는지 동정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따뜻했고 안전하다고 느꼈지만

이해받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 살아내야 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것 같은 지하

반복되는 불운

이젠 정말 끝났다 싶었을 때

슬그머니 다시 찾아와 삶을 잠식하는 우울



나락도 락이라며 대학시절 연기 수업 때 배웠던

하찮은 연기들로 나는 그의 앞에서 웃어 보였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러웠거든.

내가 아픈 것도, 내가 나약한 것도

내가 무너진 것도, 나의 불운들도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끔찍하게 내가 미웠거든.



같잖은 나의 웃음 앞에서

그는 단 한 번도 함께 웃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내 고통의 깊이와

현실 또한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장바구니에 냉동 볶음밥, 과일, 비비고 만두를 담는다.

아주 성실하고 지루하게.


내 세상이 무너졌다는 걸 정말 모르는 사람처럼.

혹은 알면서도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그 장바구니는 어김없이 성실하게,

나의 비극의 성 문 앞에 내려진다.



이해받고 싶은 나와

이해할 생각이 없는 그.


그가 지키고 있는 이 단단한 현실의 땅 위에서,

나락도 락이다!

되도 않는 연기를 나는 또 해 보인다.

내가 어떤 어둠을 지나왔는지,

얼마나 위태로운 밤을 보내는지 당신은 영영 모를 것이다.



나의 우울과 고통, 실패를 구경하는

온라인 세상의 많은 이들과

나의 심연을 모르는 단 한 명의 남자.




너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서 나를 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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