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오늘도 차라리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길을 걸었니?
사고로 인생이 박살 날 자신은 없지만
정당하게 출근하지 않아도 될 만큼만 딱 그 정도로만 다치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습관처럼 아아 한잔 사들고
성실하게 그 지옥으로 걸어 들어갔니?
너는 내게 출근 길이 끔찍하게 싫다고 했지.
그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누른 게 일요일 밤이었으니,
너는 아마 그다음 날도 지긋지긋하다고 하면서도, 누구보다 지루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또 같은 버스,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건물 같은 자리에 앉아 점심 메뉴 고민도 해가며 하루를 보냈을걸 알아.
내가 너의 메일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아니?
안쓰럽다 불쌍하다 연민의 마음이 들었을까?
나약하다 철없다 한심한 마음이 들었을까?
글쎄, 네가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안심이라는 감정이 먼저 들었어.
차에 치이고 싶다는 네 말,
몇 년 전의 내가 똑같이 매일을 하던 말이었거든.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니었구나, 우스갯소리로 직장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라지만
오로지 인스타그램 속에서만 알던 내게, 절절하게 꼭 차에 치이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면
쟤는 적어도 우스갯소리는 아니구나.
얘
그런데 있잖니
나도 그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꽤나 긴 시간이 있었거든.
회사에서 딱히 누군가의 괴롭힘이 있던 것도
미칠듯한 야근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누가 멱살 잡고 끌고 가서 회사에 취직을 시켰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매일 아침 출근길에 차에 치이고 싶었는지 몰라.
그 생각이 극에 달한 어느 월요일에는
빨간 불에 오른발 한쪽을 횡단보도에 아주 살짝 먼저 디뎌봤거든.
그때 빠르게 달리던 140번 버스 기사님이 빠아앙 하고 클락션을 얼마나 세게 누르던지.
고작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났는지 세지도 못하겠어.
그날의 쪽팔림이 마흔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생생해.
차에 치이고 싶다는 네 말,
사실은 죽고 싶다는 것도,
회사를 잠시만이라도 명분 있게 쉬고 싶다는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아.
나는 아는데 너는 모르는 것 같아서.
미리 밑밥 좀 깔아보자면, 이건 자랑이 아냐.
누구의 불행이 더 큰지, 누구의 고통이 더 대단한지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야.
많은 날들이 지나고
진짜 내가 죽고 싶을 때가 오니까 말야.
그때 내가 출근길에 경미한 부상 정도로만,
살짝 금이 갈 정도로만 치이고 싶다 제발!
세상 끝난 듯 간절하게 빌던 그 매일이 얼마나 사치스럽게 느껴지던지.
정말로 죽고 싶은 날이 오니까 알겠더라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랑이 아니다?
그리고 너는 절대 지금의 이 마음이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는 걸 영원히 몰랐으면 해.
너도 나도
우리 다 성실하게 살잖아.
그러니까 차에 치이는 걸 간절히 바라면서도
또다시 하루를 살아 내잖아.
정말로 끝내고 싶은 사람은 아아를 사 들고 출근길에 오르지도, 어떻게 부딪쳐야 덜 다칠지, 실비는 얼마나 될지 따위는 계산하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어렴풋이 느끼는 그 죽음에 대한 갈증 같은 건 거짓말이라고.
진짜가 아니라는 거야.
우리 다이어트할 때, 가짜 배고픔이라는 거 있지? 그저 그런 거야.
차에 치여서라도 멈추고 싶은 건, 니 삶 자체가 아니라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140번 버스 클락션 소리에 짜치게 뒷걸음질 쳤던 그날
순식간에 모든 직장인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고 얼굴이 벌게지던 그날 나는 깨달았어.
나는 차에 치이고 싶은 게 아니라,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걸.
어김없이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가던 어느 날 했던 생각인데
너 한번 들어봐.
그 지옥이, 그러니까 네 회사에 갑자기 큰 불이 났어.
다 타버리고 재 밖에 안 남았대.
슬픈 일이지, 그래 재난이지.
하필 책상 위에 두고 온 네 에어팟
며칠 전에 산 아비에무아 텀블러, 매일 털어 넣던 영양제들, 아깝지.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것보다 더 아깝지.
너 그래서 내일부터 출근할 곳이 사라졌다면
그래도 차에 치이고 싶을 것 같아?
만약 그렇다면 나한테 메일 보낼 게 아니라
병원부터 가.
그런데 난 네가 단숨에 아니라고 할 걸 알아.
이 생각을 하고 다음 날
나는 사직서를 냈어.
너도 나처럼 당장 사직서를 내라고
꿈을 찾으라고 무책임하게 말하지 않을게.
나도 내 꿈을 못 찾은 주제에, 너한테 밥 값도 쥐여주지 못할 주제에 내가 뭐라고.
그래도 이건 알고 가자.
네가 진짜 바라는 건, 저 버스에 치이고 싶은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저 버스를 타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권이라는 게 너한테 있다는 것.
애석하게도 주말이 끝나간다.
내일도 버티자, 힘내자 같은 말은 안 할게.
그냥, 내일은 네가 조금만 덜 차에 치이고 싶은 마음이길 바란다.
차 조심해라.
또 편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