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2. 엄마처럼 살게 될까 두렵다는 너에게

by 이해림



시작부터 초 치는 얘기 해서 미안하지만,

넌 결국 엄마처럼 살게 될 거야.

지금의 모습 그대로라면 말이야.

지금처럼 두려워하며 발만 동동 구른다면 말이야.


엄마가 여전히 끔찍하게 밉다는 너의 메일 제목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네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딸들이 나는 엄마처럼, 나는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말을 참 많이 하지.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그래.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엄마를 같은 여자로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와 학창 시절 같은 반이었다면 친구로라도 절대 만나지 않았을 거다.

엄마를 왜 그토록 미워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너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네가 그녀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던 수많은 시간들이 함께 읽혀졌어.



남의 집 가정사에 내가 뭐라고 답장을 할 수 있을까, 한참을 머뭇거렸어.

그럼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건, 네가 너 스스로를 혐오하게 될까 봐.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그 마음이 괴로워 스스로를 할퀴는 밤들을 나처럼 보낼까 봐.

적어도 그건 막아주고 싶었어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빠

울타리가 없었던 어린 너

술이 깨고 나면 쉽게 무릎을 꿇고, 익숙하게 각서를 쓰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하나 마나 한 약속을 하던 아빠와, 그걸 매번 믿고 싶고, 믿었던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던 순간까지, 고통의 고리를 끊지 못했던 엄마.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던 너 자신이 마치 괴물 같았다고 했지?

아니. 넌 괴물이 아냐.


부모는 아이의 세상이잖아.

그 세상 속에서, 네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게 무엇인지

너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잖아.

누가 감히 네 슬픔의 무게를 재고 손가락질을 하겠니.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걸 마치 신앙처럼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음에도

너 또한 아빠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고

그녀가 그랬듯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몇 번의 경험을 하면서,

결국 네가 가장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으로 살게 될까 봐 너무 두렵다고 했지.


나도 그렇게 싫어하는 부모의 모습이 내게서 똑같이 보여지는 순간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꼈는지 몰라.

그런데 있잖아, 부모도 똑같을 거야.

본인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자식에게서 똑같이 봤을 때 느껴지는

일종의 절망감 같은 건 그들도 같을 거야.


그러니까 퉁 쳐.



가장 중요한 건 그걸 인지하는 것,

그리고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걸 인정함과 동시에, 다르게 살려고 미친 듯이 애쓰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해.

이걸 영원히 모르고 부모 탓, 내 탓, 세상 탓만 하다 죽는 사람도 많거든.


너는 아빠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서 자책하면서도 끌려다니는 시간도 있었지만

끝내는 끊어냈잖아. 그럼 된 거야.

또다시 그런 사람이, 그럴듯한 사랑의 모습을 하고 네 앞에 나타날지도 몰라.

그럼 그때는 이전보다 조금 더 빨리 끊어낼 수 있어. 그럼 된 거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내게, 엄마가 밉다는 긴 메일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네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애달파하는지 눈에 선해.



엄마를 미워하지 마, 그래도 언젠가 떠나보내고 나면 이 시간들을 후회할 거야.

같은 뻔한 얘기는 하지 않을게.

미워하지 마, 좋아하지 마, 이렇게 한두 마디 말로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거였으면

사는 게 참 쉬웠을 거야 그치?


엄마가 미우면 미운 대로

마음이 저리면 저린 대로

때론 불쌍하면 불쌍한 대로 그대로 두자.


그녀가 선택한 삶의 모양이 네 눈엔 답답하고 형편없을지라도 그대로 두자.



가끔 아 이렇게 살다가 엄마 돌아가시면 후회하겠지? 하는 마음이 밀려오면

집에 들러서 밥 한 끼 하면서 죄책감도 털어냈다가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 하는 마음이 밀려오면

또 울면서 미워도 했다가

그렇게 살자.



그 정도로 마음이 힘들면, 어떤 이는 너에게 엄마와 연을 끊고 네 삶을 살라고 할지도 몰라.

그런데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엉덩이 한 번 붙일 새 없이 일을 하고

끝내 그의 마지막까지 지키고 보내드린 넌,

절대 그러지 못할 걸 난 알아.


그러니 난 그저

네가 너 스스로를 미워하는 날이 지금보단 적어지기만을 바란다.



또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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