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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미온 May 09. 2022

세상 속으로 뛰어든 간호사

Ep.1 여행의 시작, 스페인 바르셀로나

병원을 다니면서 항상 드는 생각은 이대로 괜찮은가였다. 가끔 차오르는 뿌듯함, 사명감과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어진 익숙함, 소속감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했지만 내 발목을 붙잡고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을 하며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나 라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하며 숨 막히는 압박감이 몰려들었다. 뭐라도 하면 나아질까 싶어 운동, 공부, 취미활동도 시작했었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에 더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병원을 그만둘 수도, 다닐 수도 없는 상태로 꾸역꾸역 살아가며 매일같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환자에게로 향하며 나를 탓하게 되던 순간, 더 이상 발을 내디딜 곳 없는 낭떠러지라는 걸 깨달았다.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 후 나의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흘러갔다. 병원을 가지 않아 시간이 많았지만 딱히 뭔가를 하지도 않았고, 매일같이 했던 고민들에 답을 얻은 것도 아닌데 그동안의 눈물이 무색할 만큼 모든 걸 놓아버린 나는 오히려 무의 상태가 된 것 같았다. 모든 걸 그 자리에 놓아두고 약간의 설렘만 가진채 18일간의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


나의 첫 유럽여행의 시작, 그곳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서 보이던 낮선풍경을 보며 설렘과 걱정으로 가득 찼던 내가 생가 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약 4개월 동안의 여정을,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멋있고 아름다웠던 나의 여행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한글밖에 못했던 나지만 겁도 없이 마드리드에 사는 친구만 믿고 무턱대고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학생 때부터 여행을 좋아하긴 했지만 일본, 중국 정도만 가봤던 나는 딱 그 정도로 생각하고 첫 유럽 땅을 밟았다. 그러니 당연히 처음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한국을 떠나 스페인에 도착하고 친구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 쉴 틈 없이 퀘스트를 받고 성공적으로 완료해야 하는 게임 속의 용사가 된 기분이었다.


 파리에서 경유하는 비행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생각했지만 유럽의 비행기들이 연착을 이렇게 자주 하는지 몰랐고, 내 캐리어가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도 몰랐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파리의 공항을 뛰어다니고 손짓 발짓으로 내 캐리어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캐리어를 찾지 못한 채 지친 몸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오는도중 이번엔 인터넷이 끊겼다. 다행히 구글맵에 찍어둔 주소를 보고 더듬더듬 찾아와 체크인 후 친구를 기다리는데 그제야 한숨 돌리니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꼭 한번 살아보고 싶던 유럽의 발코니가 있는 집. 그곳으로 보이는 거리의 풍경들이 너무나 이색적이고 예뻤다. 그 순간 몸은 지쳤지만 내 머릿속은 활기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당장 먹을거리들을 구입해 숙소로 가는 길,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며 찍은 유럽에서의 나의 첫 사진. 시간도 늦고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했지만 색다른 풍경에 모든 걸 잊고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매일 아침 친구와 챙겨 먹었던 비스킷과 맛없는 치즈, 오늘은 뭘 할지 고민했던 그날들이 생각난다.


캐리어를 찾지 못한 나는 당장 입을 옷을 사러 가까운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것저것 골라도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신나게 쇼핑하고 본격적인 바르셀로나 구경을 시작했다.


상그리아와 먹물 빠에야. 이곳 상그리아는 도수가 높은지 마시고 알딸딸했는데, 식당마다 도수가 다른 것 같으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빠에야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먹었던 곳이 제일 맛있었는데 다음 세비야 편에서 이야기하기로! 사실 이 식당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마스크를 벗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던 순간이다. 막 한국에서 왔던지라 마스크를 벗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물론 지금은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너무 어색하지만!


해양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인 날 방문했다. 박물관 자체가 예뻤고, 엄청나게 큰 배도 있어서 구경하고 사진 찍는 재미도 있었다. 안에 카페도 있으니 여유롭다면 커피 한잔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반짝반짝 해지는 보케리아시장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초콜릿과 주렁주렁 걸려있는 하몽이 눈을 사로잡았다.  바퀴 돌며 구경  붐비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바로 유럽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가게들을 지나치며 이곳의 분위기에 푹 빠져들었다.


나이스 타이밍! 걷다 보니 근처의 유명한 츄러스 맛집이 딱 오픈하는 시간이라 곧장 그곳으로 갔다. 갓 튀긴 츄러스를 뜨끈한 초코에 찍어먹는 맛은 정말 너무나 환상적이니 꼭 드셔 보시길!


여기저기 발 닫는 데로 걷다 만난 성당과 키스 벽. 가까이서 보면 여러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모여 완성된 벽이다.


마치 동화 속의 마을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구경하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 앞에 있던 스타벅스에서 설탕 빠진 녹차라테를 먹으며 잘생긴 직원을 바라보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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