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가 될 수 있을까
이전에 일했던 회사 중에 나와 사장만 오피스로 출근하던 작은 회사가 있었다. 음악이랑은 상관없는 직종이지만 그 회사에서 일을 할까 결정하게 된 계기도 단순하게 사장의 음악취향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의 취미와 취향이랑 인격과 그다지 상관관계가 있지도 않다. 그저 그 당시에는 장르에 상관없이 좋은 음악을 많이 알면, 지적이고 수용적인 보스일 거라 믿었다.
그는 종종 내게 블루투스 스피커를 넘겨줬고 오늘은 너의 음악리스트를 듣자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앨범을 순서대로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었다.
그는 첫 번째 트랙이 나오는 동안 나 이거 알아 하시면서 앨범과 아티스트를 곧잘 맞히시곤 했다.
대단히 놀라운 능력이었다. 물론 그가 모르는 음반도 많았지만 유명 아티스트이더라도 모든 사람이 수많은 앨범의 시작 부분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제스로 툴(Jethro Tull), 내가 처음 가본 라이브 콘서트였어”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는 훌륭한 아티스트임 이 분명하지”
“이건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
“슈퍼 세션(super session)은 너의 시대가 아닌데 어떻게 아는 거니?”
그건 바이닐 시대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니까.
사장과 나는 같은 문화권에서 자란 것도 아니며 딸이 대학생이라 했으니 한세대 정도 세대차이가 난다. 가끔 점심을 먹으면서 무인도에 휴가를 가면 어떤 앨범을 가져가야 하는지 떠들었다. 나는 내가 나이가 들면 보스와 비슷한 음악취향을 가지게 될까 생각했다. 일보다 취미로써의 음악에 대해 말할 때는 문화적 장벽이나 세대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일찍 태어난 그도 늦게 태어난 나도 올드송을 처음 들어 본 순간이 있고 이미 오랜시간 들었던 익숙한 음악이 있으며 함께 지난달에 발매된 음악을 듣을때도 있으니까.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1651)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는 거인보다 멀리 본다 했다.
뉴턴이 인용했듯이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발견은 이전시대의 축적되어 온 기반에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오래된 음악도 누군가에게 여전히 추억되고 대물림된다. 그리고 분명히 그 자취는 새로 나오는 음악에 묻어 나온다. 나는 이전시대 음악들이 히트곡이던 시절은 못 봤지만 다행히 현대 미디어의 힘을 빌어 지금 보다 이전 시대 음악에는 언제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그리고 현대 미디어 덕에 음반 발굴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해외 음반을 수집하는 건 쉽지 않았다. 벅스 멜론에는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 위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던 시절이고, 희귀한 앨범은 중고 음반가게를 뒤지거나 ebay에서 수입을 하던 시절이니 지금처럼 유튜브나 스포티파이로 전 세계의 발매되는 따끈따끈한 음반을 디지털로 듣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음원을 다운로드할 곳은 없고 저작권이라는 의식이 약했기에 듣고 싶은 유명하지 않은 음반들을 찾아서 하드디스크에 장르 - 아티스트 -음반단위로 몇백 기가 정리해서 모았다. 수집의 낭만이 있던 시절이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음원 리스트를 가지게 되었고 옛날처럼 앨범에 아티스트가 만든 리스트를 순서대로 들을 필요가 없으며 더 이상 피지컬 앨범을 찍어내고 홍보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그다지 효율적이 않다. 앨범 전체보다 공들인 리드 싱글 하나만 잘 띄워도 훨씬 인지도가 높아지니까, 대중에게 지속적인 어필을 해야 하는 아이돌을 비롯한 팝스타들은 요즘 계속 주기가 짧은 미니앨범으로 활동을 한다.
여전히 음반을 사는 사람과 모으는 사람, 레코드판을 틀어주는 뮤직 플레이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찾아서 갈 정도로 완전히 매니악한 영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음악을 선물할 때는 여전히 CD나 바이닐을 준비한다. 받는 사람이 그 앨범을 포장을 뜯지 않고 스포티파이에서 디지털 음원을 재생할 것이라는 걸 알아도, 음반이라는 완결된 선물을 고작 몇 메가바이트의 전자파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앨범이란 정성스럽게 찍어낸 종이 책과 같아서, 나는 아티스트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테마로 발표한 리스트 중 유명한 한두 곡만 발췌해서 듣는 것은 불완전 한 이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앨범의 수록곡이 창작의 연관관계가 있다면 처음 들을 때 트랙 1부터 마지막까지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악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하나의 미디어로 본다면 아티스트는 하나의 앨범을 완성시킬 때 어떤 메시지를 담는 것일까 하는 끊임없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스웨덴 밴드 Kent는 대표적으로 모든 앨범의 테마가 뚜렷하고 밴드의 리더인 요아킴의 관심사에 따라 전체적인 음악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독일의 심포닉 메탈 밴드 La Crimosa의 음악은 앨범들이 기승전결을 따라가는 오페라와 같아서 트랙을 따라가다 보면 화자의 감정적 변화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아이슬란드의 múm은 앨범이 하나의 프로젝트와 같아서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빼놓고 논할 수가 없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 모든 음악을 듣고 싶다. 십 대를 함께한 마이클 잭슨, 레이디 가가 등 팝스타들과 중2병 락키드 시절에 사랑했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인플레임즈(inflames)와 같은 하드록과 메탈, 대학에 들어와서 알게 된 인디밴드들, 교양 수업 때 음반을 나눠 듣고 감상문을 쓰면서 알게 된 재즈, 전자음악과 프로그래시브, 그리고 크로스 오버. 음악의 범위는 너무 넓고 사람의 취향이란 건 꽤나 픽키해서 아주 잘 만든 음악이 대중성에 실패한 경우도 있고 실험적인 음반이 의외로 히트한 경우도 있다. 음악에 관해 단순히 딜레탕트인 나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들에 대하여 어딘 가에 풀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어느 시대에 어떤 음악을 했던지 좋은 음악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듣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