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 들은 이야기 1
대사 연습을 위해 실례지만 옆사람의 이야기를 훔쳐 듣기로 했다.
돈을 훔치는 것보단 정중한 일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늦은 저녁 스타벅스.
50대 후반의 남녀.
남자는 스웨터부터 구두까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감각 있는 스타일,
여자는 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로 오랜만에 보라색 스카프를 둘렀음.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하지만 남자는 웅얼거려 잘 들리지 않음.
여자
잉꼬부부였어. 근데 몰랐는데 우울증이 있었다고 그러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혼하는 사람들이 구십 퍼센트가 넘는다고.
내 경우는 그냥 투닥투닥하다가...
... 내가 한두 번은 느낀 적 있어.
내가 하기 버거울 때, 아 이건 남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때가 두어 번 정도 있었어.
장가보내고 상견례할 때는 조금, 있으면 좋지.
남자
상견례 이런 것도... 주위 사람들이 보면은 좀 그렇긴 하지...
여자
그렇지. 이혼을 했을 때는 그렇지.
남자
어떤 사람은 좋게 해석하고 좋게 받아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외투 속 핸드폰이 울리지만 둘 다 못 듣는다)
여자
... 결혼을 시킬 때는 다 버려야 해. 나도 그 말을 들었거든, 보내기 전에는.
근데 며느리 눈치가 보이더라. 안방에 못 들어가겠더라.
냉장고 문 못 열고, 방에도 못 들어가고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몰랐는데 알겠더라고. 내가 해보니까.
밥도 못 먹고... 신경 쓰이잖아, 애기도 가졌고.
...
(며느리랑 아들이랑) 부부싸움을 했었나 봐.
밤중에 나한테 전화를 한 거야. 오라는 거야 나보고.
근데 나한테만 한 게 아니라 시누이한테도 했더라고.
우리 시동생 거기까지 전화했더라고. 거기다 시동생은 깁스까지 하고 있었는데 어떡해, 못 가는 거지.
한 밤중에 차도 없는 상황이라 그래서 아무튼 갔는데 난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왔어.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그럴 때는 혼자가 좋더라?
... 나이 30이 넘었는데 뭘 알겠어, 걔가. (만약) 시아버지가 있으면 더 하지.
어머니, 제가 이거 하니까 뭐뭐 해주세요~, 이렇게 해야 하는데, 오세요. 와주세요.
남자
그건 뭘 몰라서가 아니라 걔 성격이야.
여자
그래. 새벽에 내가 깜짝 놀랐어.
남자
그니까 전화가 오면은 무조건 알았다고 하지 말고, 이유도 없이 무조건 시어머니 오라고 하면 되니?
그렇게... (혼을 내라고)
여자
아니, 지 부모님도 다 있다니까. 다 옆집에 산다니까, 걔는.
그래서 내가 화가 나는 게, 왜 친정살이를 하느냐. 내가 우리 아파트 수리해서 살으라고 했어.
거기 살면은 시누이가 있어, 시어머니가 있어?
그랬는데 지가 이런 데 와서 못 사는 거야...
훔쳐 들은 이야기 1
두 남녀가 무슨 관계인가 가장 궁금했다.
둘 다 이혼 한 싱글인 것 같았고 서로 친해 보였는데
내용으로 봐서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고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재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사이일 수도 있겠지만
둘 다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낀 후라 지금처럼 편한 친구 관계가 편한 것 같았다.
갓 결혼한 30대 며느리에게 시집살이가 완전한 새 세상이듯
이 아줌마에게도 시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며느리를 대해야 하고, 어떤 것이 시어머니다운 행동인지
걱정스럽고 조심스러워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러 다닐 것이다.
아마 모든 며느리들이 무서워하는 시어머니의 뒷담화는
이런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일도 친구가 대신 화내면서 경우가 아니라고 거들면
왠지 며느리가 미워보이고 화가 나게 되는 순서.
결국 우리 시어머니들도 모두 서툴다.
한밤중에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걸어나와
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며느리의 반찬을 집어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다 때려치우고 혼자가 편할 수도 있겠다.
머리가 커진 아들이 어렵고, 며느리도 불편하고, 사돈도 꼴 보기 싫을 때.
남편과 이혼한 것은 이 아줌마가 제일 잘 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타벅스 커피를 다 마시고 친구와 헤어져 텅 빈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럴 때는 갑자기 자기가 맨 처음 시집 온 때가 생각나면서
그때 자기가 얼마나 서툴렀는지, 자기 시어머니를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떠오르고
당장 전화를 걸어서 며느리와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자라날 지도 모른다.
얼마 전 나영석 PD의 인터뷰 기사에서 나로서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나는 갈등이 더 재미있다"
대부분 갈등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세상에서 이 남자는 갈등이 생길 때마다 속으로 낄낄댔던 것이다.
배신감과 함께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엉망으로 망가져 도저히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가장 최악은 무시와 단절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관계라는 것은 작은 갈등과 큰 갈등의 연속이고
그로 인해서 점점 긴밀해진다.
다만 서로가 서툴다는 것, 네가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
그걸 잊지 말고 갈등에 맞서자.
혼자가 편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혼자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