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집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권한

훔쳐 들은 이야기 2

by 해세

약수역에서 강남방향으로 가는 오후 세시의 지하철 3호선.

출입구 가까이에 친구로 보이는 오십 대 여성 둘이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키가 크고 모피 옷을 입은 여자는 목소리나 말투에도 우아함이 배어있고

다른 여자는 상대적으로 작고 친근한 생김새다.


대화는 주로 모피가 주도했고

결혼을 앞둔 모피의 딸은 시부모를 모셔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마의 조언을 물었나 보다.

평생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온 모피는 고민이 깊어진다.






모피

ㅇㅇ아빠를 모시게 될 지도 모른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냐.

불편할 수 있겠지만, 어른들한테 배울 수 있는, 보고 배우는 것들이 있지 않겠느냐.


나는 우리 엄마가 나한테 말을 그렇게 하는 바람에...

'세상에 외아들을 키워서 세상에 내놓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아무리 집을 해주신다고 그래두, 속마음은 진짜가 다 그렇진 않다.'

(그러시길래) 난 그래? 그럼 같이 살지 뭐, 이렇게 시작이 된 거거든.


근데 내가 정말 속상한 건 뭐냐면, 예를 들어서 내가 특별히 좀 맛있게 하는 음식이 있잖아.

먹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는 거야. 동생 생각도 나는 거야.

남동생들은 정말 우리 집에 한 번도 못 왔어. 왜냐면 돌 때도 큰 애가 군인이었나... 못 올 형편이었었어.

그때(아기 돌) 정말 자유롭게 올 수 있는 날이잖아. 고모들 다 오고, 아부지 엄마 오시고, 이랬거든.

근데 우리 엄마, 특히 엄마도 따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른들 계시면 우리 집에 안 와.

오라고 해도 안와. 그래 동생들도 올 기회가 없지.

그때 놓쳤어. 놓쳤어. 그래서 계속 싸운 거야.

누가 오지 말라고 하니? 누가 '네 동생 여기 왜 오니?' 그럴 사람 없잖아.


작은 여자

그치, 그냥 어려운 거야.


모피

어려운 거야. 그게 싫드라구. 그런 게 어려운 거야, 사실은.

그니까 일상에서 그렇게 되면 어려운 거거든 사실은. 근데 그게 너무 속상한 거야.

우리 엄마가... 예를 들어서 인제 부모님 꼭 여행 보내 드렸잖아.

아버님 환갑잔치 안 하신다그래가지구 예순한 살에 시작해서 일흔세 살까지 십이 년 동안 매일, 우리, 겨울 방학 때... 여행 많이 다니셨거든. 그때 우리 집이 비잖아. 안 와. 안 와. 어르신들 안 계셔두.

난 그 때라도 좀 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우리 딸한테 그랬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은 네가 보는 거고, 네가 네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니까

돈 때문에 너무, 돈이 우선은 아니라고 본다. 엄마두 내 쓸만큼 내가 벌어서 쓰는 거니까 그게 크게 작용은 안 했다.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지금 그 사람이 돈을 어떻게 많이 벌지는, 부모님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내가 어떻게 알 수가 없지만

... 시부모님을 모시는 상황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내가 너네 집 출입을,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을 만큼의 권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세상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우리 드라마에선 도대체 결혼과 시댁이 등장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인지 답답했는데

내가 탄 지하철 3호선 열차에는 온통 시어머니들과 예비 시어머니들, 며느리와 예비 며느리들로 북적거렸다.


모피 아줌마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며느리는 아들 둔 시부모의 심정을 헤아리는 친정 엄마의 조언만 듣고도 쉽게 시댁행을 할 수 있었나 보다.

그때에는 시부모님과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모피 아줌마는 남편의 부모를 모신 만큼 친정 부모를 충분히 모시지 못 했다는 죄책감과 서운함으로

자기 딸만은 시집살이를 시키고 싶지 않다.

거기에는 시댁 식구 눈치를 보게 될 딸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사돈 때문에 딸을 맘대로 보러 갈 수 없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마음도 섞여 있는 것이다.


아들 가진 부모만 아들을 세상에 내놓기 싫은 것이 아니다.

모든 친정엄마들은 아들만큼 딸을 사랑하고, 자기가 결혼생활에서 깨달은 것들을 딸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

모피 아줌마가 "딸 집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권한"이라는 다소 묵직한 단어까지 써야 했던 것은

결혼이란 딸의 소유권을 사돈에게 넘겨준다는 인식이 너무도 만연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고민이 되는 사항은 남는다.

딸의 신혼집은 이제 딸과 그의 남편 둘만의 집이다.

친정 엄마건 시어 머니건 당당하게 '권한'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문제는 요새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의 보금자리가 부모들의 경제력에 저당 잡혀

부모들이 무리한 권한을 주장하더라도 별다른 반박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세상은 이렇게 겹겹이 겹쳐져서 끊임없이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나는 엄마 배에 겹쳐져 있고, 내 딸은 내 배에 겹쳐져 있다.

그렇게 다들 줄줄이 맞물려서 비슷비슷한 고민들을 하며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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