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들은 이야기 3
27년 동안 한 건물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해 온 40대 후반의 여자.
특징 없는 얼굴에서 중년의 안정과 여유가 느껴진다.
"여기서 27년이나 했어요. 남편이랑 같이.
우리는 초등학생 가르치고 선생님들은 중학생 가르치고.
저는 영어수업하고 남편은 수학."
내 나이와 맞먹는 세월에 나도 모르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뭐가 대단해요, 발전이 없는 거죠."
여자는 쓸쓸하게 말했다.
27년 동안 초등학교 저학년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옆 교실에서는 남편이 덧셈과 뺄셈을 가르치고 여자는 '아이엠 어 보이, 유아 어 걸'을 가르친다.
초등학생들은 쑥쑥 자라서 어른이 다 됐을텐데 이 부부는 한결같이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도대체 이 부부는 어떤 부부싸움을 할까.
여자는 밤마다 무슨 꿈을 꿀까.
쓸쓸함조차 감추려하지 않는 여자의 여유가 서글펐다.
남들의 비판도 초월할 정도로 여자는 무료했고
여자의 잘못이 있다면 젊은 나이에 안정을 추구했다는 것 뿐이다.
얼마 전 먼저 생을 마감한 데이빗 보위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편안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죽었다는 뜻이에요.'
키스해주고 싶을 정도로 멋진 말이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데이빗 보위니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범인들이 일부러 불안정을 선택할 이유는 없으니까.
안정적인 인생은 없다고 하지만 좀더 편한 길과 좀더 어려운 길은 반드시 있다.
결국 인생의 방향은 범인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며 후회나 좌절 역시 범인의 책임이다.
나 역시 안정과 불안 사이에서 매번 고민하는 범인에 속하지만
나중에 남편과 싸울 때 좀더 특별한 이유로 싸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좀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