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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l 18. 2016

커피와 죽음



마음 맞는 친구와 죽음에 대해 떠들었다.

달착지근한 커피를 시켜놓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얼마나 죽고 싶고 왜 죽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 친구 앞에서는 죽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남자친구 뒷담화 같은 시시한 이야기나 하면서 시시덕거린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매일매일 희미하고 끈질기게 죽음을 바라고 있다면

친구는 나보다 구체적이고 강렬한 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를 말리거나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친구가 죽음을 바라는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녀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듯이 죽음의 방식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목을 매단 친구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무 원망도 슬픔도 없이 그냥 그런 장면.



달달한 커피가 절반씩 비워졌을 때

나는 이 카페에서 이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바라는 마음엔 

살아있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들의 사랑을 얻어내고 싶은 좌절된 마음들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걸 알고 나니 친구의 죽음을 말리고 싶진 않아도

그녀를 더 사랑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나만큼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그녀가 내 곁에 있으면

언제라도 삶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낼 것 같아서다. 

이 친구랑 커피를 마셔야 하니까 죽는 건 내일로 미뤄야지,

하는 털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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