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Bluebird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중, 갑자기 왼쪽 눈에 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시야를 가린 건 불이 붙은 담배를 손에 쥔 채 앞뒤로 흔들며 코앞을 지나가던 아저씨였다. 병원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장면만큼은 지금도 선명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 옆 놀이터를 지나가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왼쪽 무릎 아래에서 피가 솟구쳤고, 그 아래에는 깨진 소주병이 있었다. 놀람과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지만 그보다 더 컸던 감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었다. 그 자리에 서서 울며 지나가는 어른을 바라볼 뿐이었다. 세 명의 어른이 나를 보고도 지나쳤고, 중학생 형 한 명이 내 손을 잡고 119를 불러 응급실로 데려갔다. 무릎에 남은 흉터는 여전하지만 그보다도 날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어른들의 눈빛이 더욱 선명하다.
2009년,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보던 중 조두순 사건을 접했다. 어른이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고 믿을 수 없었다. 그날 먹었던 것들을 모두 토해낸 뒤에도 불쾌와 분노가 평소 상태로 돌아오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감정은 슬픔보다는 분노였고 안타까움보다는 역겨움에 가까웠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내가 바라본 세상은 설명되지 않는 폭력과 무책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시 어렸던 나조차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다 큰 어른이란 작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걸까.
시간이 지나며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정신적 성숙과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경험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것을 사유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어떤 이는 사고가 확장되고, 어떤 이는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문다. 그리고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니라 구조에 기인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그리고 문명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예외적이며 변수다. 그렇기에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나 사람이 정말 문제라고 하더라도 문제를 재생산하고 확장하는 주요 원인은 바로 사람이 문제를 일으켜도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한 뒤 오랫동안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체계는 너무 거대했고, 개인이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처럼 느껴졌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시간은 그런 질문과 방황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분명해진 것도 있다.
세상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균열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와 다르다. 데이터를 통해 현상을 구조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추상적인 문제의식을 서비스와 시스템의 형태로 구체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혼자가 아니며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인적 자원도 있다. 무엇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명확하다. 사람들의 심리 문제 중에서도 불안이 야기하는 의사결정의 왜곡이다.
불안은 개인의 약점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위험, 신뢰할 수 없는 타인, 작동하지 않는 안전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라면 불안해지지 않는 편이 오히려 비정상에 가깝다. 지금의 사회는 불안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개인에게 극복을 요구한다. 그 결과는 약물, 회피, 고립이다.
여러 경험들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를 믿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충분히 보아왔다. 그렇기에 사람을 믿을 것이 아니라 사람이란 변수를 전제로 설계된 시스템을 믿어야 한다. 오랜 사유와 실패를 거쳐 축적된 지혜가 구조로 구현된 시스템을 신뢰해야 하며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고 사유해야만 한다.
기존 질서를 전복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사고방식에 파동을 일으키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며 그 기준이 시스템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패러다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집요하게 비이성적으로까지 집착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