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다양한 색깔을 불어넣는 동사로서의 꿈
대학을 다니면서 열 개가 넘는 대외활동들을 했지만, 지금의 내 삶과 앞으로 걸어갈 방향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던 경험이 하나 있다. 성수동의 모회사에서 진행되었던 그 프로젝트는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믿으며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체인지 메이커(Change Maker)들을 선발하여 반년 동안 진행됐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정말 귀중한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잘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어디선가 열렬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길 원하고 있었으며 그 꿈을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 나 또한 내가 지니고 있던 꿈에 대해서 여러 번 복기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각자의 꿈과 목표를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개인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OO님은 꿈이 뭔가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대답은 '데이터 분석가'였다. 무의식적이고 조건반사적인 대답이었다. 물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타인에게 드러내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기술을 활용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할 때마다 상대가 보인 반응은 '당황스러움'이나 '읭?'과 같이 말을 꺼낸 내가 조금 민망해지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그래서 '진짜 꿈'과 '공개용 꿈'을 암묵적으로 구분해놓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때 내 대답을 들은 상대는 다른 질문들을 이어갔다. "데이터 분석가가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데요?", "그 꿈을 이룬 다음에는요?" 등 그동안의 경험에서 일반적으로 받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연이은 질문들에 대답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에만 담아두었던 '진짜 꿈'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는 6-7명 정도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 정도의 인원에게 내밀한 꿈에 대해 이야기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낯이 뜨거워졌고 나체가 된 것처럼 불편한 느낌이었지만 1초, 2초...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후련해졌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내 진짜 꿈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더 이상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로부터 꽤나 시간이 지난 후에 커리어와 관련된 세션에 초대된 적이 있다. 서른 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내 꿈에 대해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라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었다. 줌(Zoom)을 활용하여 비대면으로 진행된 자리이긴 했지만,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꿈이 명사일 경우엔 그 꿈에 도달한 다음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만약 내 꿈이 '데이터 분석가'라는 명사형이었다면 그 꿈을 이뤄낸 지금, 아마 새로운 목표를 찾기 위해 기나긴 방황을 하거나 열정과 동기를 잃은 채 죽은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목표가 없으면 매일이 지루하고 동력을 잃어버리는 나 같은 부류는 증상이 더욱 심할 것이다. 명사로서의 꿈은 동사로서의 꿈보다 실현하는 게 비교적 쉽다. 반면에 동사로서의 꿈은 그 꿈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꿈과 목표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사로서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주니어 데이터 분석가로서 경험을 쌓고 역량을 기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게 꿈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 직업을 진지하게 대하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과는 별개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색채를 불어넣는 '동사로서의 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동사로서의 꿈을 위해 평일 밤과 주말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은다. 잘 진행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꿈을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고 직접 행동하는 그 과정 전체가 내 삶에 색을 불어넣는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프랑스 작가인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의 말처럼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결국 그 꿈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꿈을 오랫동안 꾸기 위해선 수많은 과정을 파생시키는 동사적인 꿈을 품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기술로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꿈이 지금의 내겐 너무도 멀게 느껴지지만, 그 꿈을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살아있음을 만끽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