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킹스맨을 많이 본다고들 한다.
다들 새로 나온 스파이더맨 봤으려나?
나는 코로나 이전에도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나마도 대부분 넷플릭스에서 찾은 영화 거나 가끔씩 친구들이 보러 가자 해서 보는 정도?
이번에 새로 친해진 친구 하나가 내게 좋아하는 영화가 있냐고 물어봤다.
갑작스럽게 그런 질문을 받으니 우물쭈물 바로 어떤 영화가 떠오르지가 않았는데, 더더군다나 그 친구는 전문가 수준으로 영화를 좋아하는터라 왠지 더 부담이 됐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려 내가 많이 본 영화 목록을 머릿속으로 훑어보는데, 의외로 대부분이 우주영화였다.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컨텍트, 어웨이, 어나더라이프 등등.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이 중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주비행사가 나오는 영화를 자주 보는 건 확실하다. 내가 본 영화에 나오는 우주비행사들은 대부분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 외로움과 싸우면서도 '우리'를 위한 대의를 위해 임무를 수행한다. 그들은 그 탐험 가운데 외계 생물체를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는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지 못할 경험들을 마주한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건 우주에서의 무섭고도 긴 시간을 버틸 '인내심' 그리고 그럼에도 조종 키를 다시 잡아볼 '용기'다.
영화를 즐겨보지도 않는 내가 유독 우주비행 영화를 자주 찾아봤던 이유를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게는 언제나 공감하기 두려운 주제가 있고 공감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는 내가 공감하고 싶은 주제와 맞닿아 있다. 우주선이 고장 나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담담히 임무를 수행하다 가족과의 통화 한 번에 뒤돌아 우는 모습이라던가, 생과 사를 오고 가는 중에도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런 말보다 더 위로가 되는 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의 대화라는 말이 있다.
우주비행사들이 개인실에 들어가 쉬면서 보내는 짧은 시간들. 사랑하는 사람과 기계 너머로 잠깐씩 나누는 대화. 지구로 돌아가려면 남은 수많은 날들. 그동안 처리해야 하는 수많은 업무들과 위험성. 언제나 요구되는 단단한 마음가짐. 감정을 흘려보내기에는 절대 충분하지 않은 여유.
그 모든 연약한 모퉁이들이 내가 가진 모퉁이와 닮아있었다. 닿아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학생이라는 틀,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내 모습.
보다 여유로운 환경과 기회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 그 압박감.
그래서 보다 '더 나은, 더 배운 사람'이 되어 돌아와야 한다는 임무 같은 것. 어쩌면 책임감.
쉽게 흐트러지지 못한다는 건 얼마만큼의 답답함이었나.
기댈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는 건 얼마만큼의 외로움이었나.
조금 남은 산소로 우주선에서 버티는 비행사를 보면
숨이 턱 하고 막히면서도,
누구나 그런 공간이 있지. 그런 순간이 있었겠지.
그런 날들이 있었겠지. 그럼에도 끝없이 지구로 헤엄쳐오겠지. 돌아가겠지.
하고 안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