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어는 수단일까 목적일까
슬슬 영어를 시작해야 하는 아이를 두고 있다면 두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는 영어를 시작하는 시기. 빠를수록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모국어가 완벽해진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 전문가들조차 서로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무엇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어떤 부모(정확히는 엄마)든 자기가 정하는 그 시기가 영어 시작하기 좋은 시기라고 믿(고싶다) 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실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빨리 시작하면 나중에 덜 고생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가 아이가 질려버린 바람에 막상 남들 재미 들릴 때 영어 공부에 손을 떼 버린 경우도 있고, 마냥 손 놓고 있다가 다른 아이들의 실력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돼서야 급한 마음에 애먼 애만 잡고 돈만 날리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영어 공부의 대표적인 진리인 ‘노출은 빠를수록 좋다는 말’ 역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효과를 두고서는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케바케라는 생각이 크다.
다른 하나는 학습 방법. 부지런한 엄마들은 아이가 말을 트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표 (또는 아빠표) 영어 교재와 스케줄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성공담을 십분 활용하는 등 공격적으로 영어교육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경우 아이는 물론 엄마의 엄청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는 건 주변을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만만하고 또 보편적인 방법은 역시나 학원에 보내는 것이다. 물론 학원도 커리큘럼이나 강사 수준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선택이 손쉽고 편리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다. 혹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영어권 나라에 정기적으로 가서 문화와 언어를 동시에 익히는 어학연수도 있다. 어떤 공부든 글로만 배우는 것보다야 몸으로 체험하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학연수를 다녀온 주변 아이들을 보면 어학연수가 다른 나라나 문화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는 줄지는 몰라도 영어 실력을 높이는 데 폭발적인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선생님 발음이 구려요.’나 ‘나 미쿡 갔다 왔어!’와 같은 자랑을 장착하는 게 목적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어 공부가 휘둘리는 순간,
솔직히 말하면 아이의 영어 학습 시기나 방법의 선택에 있어 경제적 문제, 즉 돈의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부모가 영어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다고 해도 경제적 문제가 발목을 잡게 되면 선택과 기회의 폭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모 입장에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주변에서 괜찮은 학원이나 강사의 정보를 들으면 아이의 의사나 실력은 뒷전이고 위치와 수업 시간표를 물어본다.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과 함께 마지막으로 수강료를 물어보고는 이내 좌절한다. 해외 어학연수에 대한 정보를 듣거나 아이 친구 누가 갔다는 말을 들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내 아이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눈 한번 질끔 감고 보내볼까 싶다가도 본전이 생각나서 포기한다. 아이의 친구 누구는 원어민처럼 발음한다고, 또 친구는 누구는 영어 원서를 읽는다고 아이가 말하면 엄마는 괜히 ‘너는 그런 애들 보면 자존심도 안 상하니?’하고 버럭 한다. 정작 자존심이 상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다. 그러다 주변에 휘둘리고 압도되는 시기를 넘어서는 시기, 다른 말로 말하면 아이의 영어 성적에 현타가 오는 시기에 당도하면 영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던지지도 않는다. 다만 투자 대비 아웃풋이 반도 되지 않는 아이를 향해 비난의 질문을 던질 뿐이다. 너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이래서 대학은 가겠냐고. 영어와 대학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영어 수준 즉 영어 성적은 대학 진학과 직결되는 문제인 터라 결국 영어 공부로 시작한 고민이 ‘기승전대학’으로 귀결되는 풍경은 매우 익숙하다.
또래 아이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어 학습에 대해서 다들 반전문가 같다.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하는 부모도 있고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자신의 정보는 내주지 않는 부모도 있다. 겉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척하지만 새로 업데이트된 정보를 듣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서칭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늦게 알았음을 한탄해하면서도 그냥 포기해버리는 부모도 많다. 조금만 빨리 알았어도 성적이 좋았을 텐데, 라는 핑계와 함께.
언어학자 김성우는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성과 추구형과 원리 추구형으로 나눈다. 말 그대로 성과를 목적으로 하느냐 원리(탐색)를 목적으로 하느냐다. 학문의 목적이 진리탐구에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후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 닥치면, 아이의 성적에 ‘현타’가 오면 이제 영어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문제가 된다. 중학교 이하까지의 영어는 그나마 엄마의 관심과 투자가 곧 아이의 영어 성적(수준)과 비례한다. 효과만 분명하다면, 아이의 영어 실력과 성적을 올릴 수만 있다면 부담스러운 비용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다짐한다. 게다가 실제 성공담까지 확보했다면, 그 성공의 주인공이 우리 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아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생긴다. 그런데 영어 공부는 ‘나’가 아니라 아이가 해야 한다는 건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 시작은 엄마가 했지만 결과는 아이가 뽑아내야 한다는 게 함정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실패를 하기 전까지는 절대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엄마의 자존심은 엄마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성적이나 실력에 달렸기에 엄마는 불안할 때마다 애먼 아이만 닦달한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특히 영어는 아이 미래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지표로 사용되기 때문에 민감하고 요란하고 열정적이다. 물론 그 지표는 발음, 유창함, 그리고 점수로 매겨지는 영어 성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건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 것이다.
단단한 영어 공부란,
영어가 곧 스펙이라는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영어는 늘 남들과 비교와 평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남보다 빨리 시작해야 하고, 실패해서는 안되며,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이든 돈이든 ‘투자’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영어 사교육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 안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문화, 역사는 물론 개인의 가치관, 성격, 개성을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괜찮은) 스펙을 갖는다는 것 이외에도 다른 세계에 진입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를 학습이 아니라 언어의 개념으로 확장시킨다면, 다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기회나 수단으로 본다면 적어도 조급한 마음은 갖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내가 필요할 때 시작하면 되니까. 세 살 아이와 팔십 노인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건 영어 실력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규칙이나 형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문화적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일입니다.-김성진, <단단한 영어 공부>, 유유, 34쪽.
영어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가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아마 귓등으로 듣거나 잘난 척 쪄는 강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계시민이니 사회 문화니, 커뮤니티 일원이니 하는 것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시가 시급한 나(와 내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는 딴 세상 일 일뿐 나의 목표는 오로지 내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 것, 영어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이제 막 영어 교육을 시작할 때쯤엔 미래지향적인 청사진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도 잘한다, 똑똑하다, 뛰어나다는 말을 달고 산 아이(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대개 모든 아이들이 똑똑하고, 뛰어나고, 잘한다)인데 이 정도 목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 아이가 세계 시민이 된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러나 성적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학년일수록, 대학 입시를 가까이 둔 학생일수록 이런 목표는 철 모르는 소리에 불과하다. 세계 시민 따위는 필요 없다. 쟤를 이기는 것, 1등이 되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제일 중요한 목표다.
기왕 목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바로 동기부여와 기술이다. 동기부여는 목표 달성을 위한 촉발제이고 기술은 그것의 효과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보조적 수단이다. 동기부여가 중요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시간에 쫓길수록, 하기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동기부여 대신 기술 습득에 집착하거나 의지하려고 하려는 경향이 높다. 다이어트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이어트를 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건강한 몸이다. 그러나 ‘내가 한 달 안에 10킬로를 빼겠다.’와 같이 목적을 숫자나 수치와 같은 가시적 것으로 정하다 보면 종료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목표한 몸무게에서 멀어질수록 기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특히 정해진 목표를 달성했을 때 대가나 보상이 크다면 말할 것도 없다. 무작정 굶기, 다이어트 식품이나 약 복용하기 등 가장 효과가 빠른 기술을 찾아 적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술을 사용해서 당장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건강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생각한다면 다이어트 목표는 실패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기술은 공짜가 아니다. 돈이든 시간이든, 하다못해 해친 몸이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영어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동기부여를 가르쳐주는 학원은 없지만 기술을 가르쳐주는 학원이나 강사는 많다. 도덕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세계시민으로 가는 영어’가 목표인 학원은 없지만 좋은 기술로 성적을 올려주겠다는 학원은 많다. 책도 마찬가지다. ‘하룻밤에 끝내는 영어’, ‘남들은 모르는 영어 비법’, ‘원어민처럼 말하기’와 같은 책은 막상 보면 별거 없는 것 같아도 늘 베스트셀러지만 조금만 어렵고 깊게 들어갔다 싶은 책들은 늘 베스트셀러 뒷전으로 밀려난다. 혹시나 자신이 영어 성적을 올리는 데 탁월한 신기술을 여러 가지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외국인 앞에서는 안부 인사를 나누는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내가 그동안 기술 습득을 위해 영어에 투자한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액수가 훨씬 클 텐데, 속이 쓰리지 싶다.
휘둘리지 않는 영어 공부, 단단한 영어 공부가 되기 위해서는 목표와 그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내가, 또는 우리 아이가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단지 유창하게 읽고 말하기 위해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와 같은 과시하기 위한 영어 공부가 목적이라면 그 영어 수준은 딱 그만큼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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