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단단한 사람입니까?

야스토미 이유무, <단단한 삶>


1. 존재가 곧 민폐란 생각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장애학 도전>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장애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비슷할 것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 남에게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 물론 여기에는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라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이 조건을 잠깐 가려보자.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은 정말로 이 세상에서 장애인뿐만 있을까? 아이는 노인은, 그리고 나는?

인간은 태어나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까지는 양육자에게 의존한다.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하지만 마흔 넘은 어른이 되어서도, 괜찮은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서 밥을 해먹지 못한다는 핑계로, (내)돈을 아낀다는 핑계로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건 의존이 아니라 기생에 가깝다). 그러다 경제 활동을 하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에게 의존하거나 직장, 동료, 친구들에게 의존한다. 먹고는 살아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하니까, 그리고 때때로 밀려오는 외로움도 달래야 하니까. 노년이 되면 배우자나 자식 또는 간병인에게 의존한다. 아픔 몸과 죽음이야말로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물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만 타인에게 의존하는 건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 부를 위해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 남에게 아쉬운 부탁도 하고 상대의 권위에 기대어 무임승차를 바라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하루라도 남에게 쉬운 소리를 하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 싶다. 못나면 못나서, 잘나면 더 잘나고 싶어서 때로는 ‘을’을 비관하기도 하고 때로는 ‘을’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런데 핵심은 ‘을’이라는 위치가 나쁘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누가 나를 ‘을’로 만들었냐, 다.


2. “도와줘!”

종속과 의존의 뜻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르다. 종속가 의존이 차이점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단단한 삶>의 저자인 야스토미는 이렇게 구분한다.

종속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일방적이며 주체는 대상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불가하다. 대표적인 예가 주인과 노예 관계다. 주인은 노예를 선택할 수 있지만, 노예는 주인을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노예는 주인에게 선택을 당한 순간부터 충성해야 한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애쓴다. 주인은 노예의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악용한다. 너보다 저렴한 노예는 많다며 무급 노동을 강요하며 협박한다. 맘 같아서는 주인을 들이받고 싶지만, 노예의 선택지에 ‘박차고 나간다’는 선택지는 없다. 나가면 굶어 죽으니까. 주인과 노예 관계는 ‘갑을관계’라는 이름을 바꾸며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종속 관계는 연애할 때도 발생한다.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거나 헌신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그렇다. 종속되는 것이 나인지 상대방인지도 잘 모른 채로 모든 행위를 사랑으로 포장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고귀한 행위는 맞지만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은 집착으로 변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에게 버림받으면 나는 끝이야.” 하며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맡기고 오로지 헌신하게 되면 어느 순간 헌신짝이 된 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의존은 그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상호적이기에 주체든 대상이든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데서 종속과 차이가 있다. 의존은 말 그대로 기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한테 기댈지는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엄마에게 기댈 수도, 아빠에게 기댈 수도, 배우자나 친구에게 기댈 수도 있다. 하다못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댈 수도 있다. 물론 거절당할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절당했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쪽팔려 할 필요는 없다. 다른 대상을 찾으면 되니까. 거절로 인해 자존심은 상할지 모르지만, 이유 없는 비난이나 모욕은 듣지 않아도 된다. 혹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그 사람과 손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또 하나는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 삶은 윤택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속과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재산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수많은 위기는 나의 뛰어난 능력으로 극복된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오는 도움으로 극복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응급 환자를 위해 길을 터주는 수많은 운전자, 강에 뛰어내리는 사람을 붙잡고서 위로하는 행인,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또 다른 아이.

타인에게 의존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있다. “도와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라,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교육은 끊임없이 받았어도 ‘도와달라’는 말을 하라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 ‘독립적 인간’인 인간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스스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만이 진정한 자립이라고 배우고 또 그렇게 교육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등등 살아남는 법에만 집중했다. 핵심은 ‘혼자’, ‘능력’, 그리고 ‘승리’다. 하지만 영원한 승리는 없듯이 승리자도 언젠가는 의존해야 할 것이다. 승리자는 누구에게 의존할 수 있을까? 옆에 있는 사람이라곤 자신이 누르고 밟고 무너뜨렸던 사람, 무시하고 비난하고 혐오했던 사람밖에 없다면? 승리자와 패배자의 위치가 바뀌는 묘한 순간이다.

종속은 선택권이 없다(고 믿)는 데서 발생하는 불안함과 그 불안함을 억압하기 위해 그 관계를 애를 쓰며 유지하는 관계다. 하지만 의존관계는 무엇이든,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권은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점에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때에 따라서 상대를 바꾸며 도움을 청해도 상관없다. 그건 의리가 없어서도 예의가 없어서도 아니라 그저 도움의 종류와 질이 다를 뿐이다. 종속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나를 거부하면 그것으로 관계는 끝이 난다. 혹 그렇게라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절박한 ‘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의존 관계는 그렇지 않다. 둘 중에 한 명이 그 관계를 끊는다고 해도 삶에 큰 지장이 없다.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고 운이 좋으면 훨씬 괜찮은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다. 선택이 주는 기대는 나를 절절매지 않게 만들어주는 에너지다.

3. 팔 할의 변변치 못한 자

자기혐오는 나의 욕망이 타인으로부터 강요당하는 순간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와 같은 말을 오랫동안 그리고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이 말은 감시자 역할을 하면서 나의 욕망을 컨트롤한다. 그리고 성공에 실패했을 경우 내가 감시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때부터 자기혐오가 만들어진다. 왜냐면 자신의 욕망과 의지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이기에 실패했을 때 증오하고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혐오는 성장하는 데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휘둘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야스토미는 자기혐오가 어떤 식으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이기주의자, 이타주의자, 그리고 변변치 못한 자로 나누어진다고 설명한다.

이기적인 사람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자기 것을 챙기고 채우느라 바빠 주변 사람들의 평판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친구는 없지만 그래도 자기 이익을 챙겼다는 점에서 뭐, 큰 손해는 없다.

이와 반대로 이타적인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친구도 많고 지인도 많다. 나를 필요로 하고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다. 그러나 부족한 자기 시간과 빈 지갑은 필수다.

마지막으로 변변치 못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은 욕을 먹을까 봐 싫고, 이타적인 사람은 귀찮고 그만한 에너지도 열정도 없기에 그냥 그사이 어디쯤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이다. 야스토미는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좋은 평판을 얻는 것도 실패하고, 물질적 이익을 얻는 것도 실패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거나 지나치게 주변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에게 지적이라도 받으면 부들부들하거나 집에 가서 이불킥을 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란 칭찬을 포기할 수 없어 하기 싫은 일도 꾸역꾸역하는 사람들. 아....바로 나다. 하지만 나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친구도 그렇고 내 남편도, 하다못해 내 아이도 그렇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살다보면 변변치 않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건 인생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얻으려다 다 놓치는 일이 한 두번이던가. 이 세상에는 팔 할의 변변치 못한 사람들로 굴러가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팔 할의 변변치 못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그리고 이들이 승자에게 조종당하지 않고 잘 살아가려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의존하라고 야스토미는 조언한다. 내가 그 주체가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무언가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혹 그 대상에게 거절당했다 하더라도 씩씩하게 털고 다른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타인에게 종속될 일도, 거절당했다고 해서 부들부들할 필요도 없다.

완벽하게 온전하게 독립적인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성인(聖人)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세상은 소수의 이기적인 사람의 욕심이나 이타적인 사람들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 의존하며 그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굴러간다고 생각한다.


#유유당

#유유당1기

#단단한삶

매거진의 이전글내 아이의 영어능력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