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에 대하여

-관행을 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관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행.

뭐, 나름의 이유는 있다. 업무 처리와 평가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반복되는 업무의 피곤함을 덜기 위해서 관행은 필요악이다. 그럼에도 관행을 깨야 하는 절실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사회의 변화 속도는 관행이 형성되기까지의 속도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생각하지 못하다 보면 어느 순간 관행이 법의 정의를 훼손하고 있거나, 법 위에서 올라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충남 당진에 사는 스물세 살의 어린놈의 새끼는 열아홉 살에 w2v라는 성인 사이트를 싼 값에 사서 다크 웹이라는 암흑의 경로를 통해 전 세계에 아동 성착취물을 전파 했다. 게다가 인류애가 넘쳤던 이 어린놈의 새끼는 ‘어린이 사랑물’(포르노 사이트 w2v에서는 아동 성 착취물을 이렇게 불렀다)을 보고 싶지만 돈이 없어 보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여 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는데 포인트를 받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소비자가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아동 성 착취물을 w2v에 공유하면 된다. 그렇게 아동 성착취물을 단순히 소비하려던 개스키들은 소비자와 생산자를 넘나들면서 전 세계 아동들의 성 착취물을 기계로 찍어내듯이 신나게 생산했고 또 소비했다. 자급자족하는 훌륭한 공동체니 죄의식란 것도 없었을 테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빛도 못 보고 감옥에 들어갔을 테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축복인 스물세 살의 어린놈의 새끼는 그렇게 최소한의 자본을 가지고 23만 건의 아동 착취물을 손쉽게 관리하며 전 세계를 휘저으며 ‘어린이 사랑물’ 분야의 ‘뉴페’가 되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실수로 무려 32개국의 경찰이 공조하여 만든 법망에 걸려 안타깝게 그만 한국 경찰에게 잡히고 곧 구속되어 어린 나이에 철창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초범이며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이유를 근거로 법원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하자 2심에는 이것보다 아주 조금 강한 1년 6개월의 선고를 받았다.

이 선고가 나오기까지 그 뒤에는 어린놈의 새끼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어린놈의 새끼가 직접 선임한 일곱 명의 변호사가 있었으며, 선고를 보름 앞두고 갑자기 혼인 신고를 하는 바람에 이제는 벌어먹어 살려야 할 부양가족이 생겨버린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야말로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연은 정상참작이 되어 감형에 큰 도움이 됐다. (살면서 변호사를 사본 적이 없는 내가 막연히 생각했을 때 일곱 명의 변호사를 선임한 돈이면 모르긴 몰라도 몇 년은 놀고먹어도 될 것 같은데 법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법은 강자에게 너그럽고 또 너그럽다. ) 참고로 말하자면 이 어린놈의 새끼가 운영했던 s2v 사이트에서 아동 성 착취물을 소비하거나 단지 영상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영국의 개스키와 미국의 개스키는 각각 22년형과 5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그런데 이 사이트를 운영하며 혼자 독박 쓰는 건 싫어 소비자를 공동정범화한 어린 놈의 새끼는 어리다는 이유로, 초범이라는 이유로, 진심으로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선고 보름 앞두고 먹여 살려야 할 부양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1년 6개월은 심하다고 여전히 지랄 중이란다.


어린놈의 새끼의 판결문 일부

이 어린놈의 새끼가 낯짝 두껍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지능화, 음성화, 세계화하고 있는 성범죄의 속도를 우리의 법과 제도,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집단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매우 와 닿는다. 사건의 신속 정확한 판단과 해결을 위해서 범죄의 유형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처벌을 내리는 것은 보편성과 공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기본적인 과정이겠지만, 단지 효율성을 위해 죄의 수법과 유형에 따라 처리하고 과중한 업무 해결을 위해 관행이 법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되면 피해자는 법의 보호는커녕 눈치 없이 유별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러나 초단위로 진보, 지능화하는 범죄 사건과 수많은 과거 결과의 누적으로 만들어지는 관행 사이에 간극이 크면 클수록 그 안에서 벌어지게 되는 변수와 특수함은 일반화로 지워지고 뭉개진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특수하고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소시오패스가 벌인 사건’이 되거나 그도 아니면 ‘또 그런 사건’중 하나가 되어 피해자만 남아 있고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한 줄짜리 가십 사건으로 끝나고 만다.


어리고, 반성하고 있고, 초범이고, 심신이 미약하다고 부여되는 정상참작이란 관행은 정상적인 사람들한테나 참작할 수 있는 것이다. 천 번을 너그럽게 생각해본다고 해도 자신이 어떠한 위험에 처해 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검은 힘을 밀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힘조차 가지지 못한 아동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천벌도 아까울 마당에 정상참작이라니.


관행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상대적 위치에 있는 약자들과 그들의 섬세하고도 복잡한 저항을 그저 유난스럽고 별난 행동으로 추상화해버리는 위험을 않고 있다.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량한 소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조차도 가끔은 관행이란 핑계로 누군가에게 깊은 무력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낀다면 예전처럼 쉽게 관행을 따르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은 저항할 힘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절대적 약자에게는 법은 늘 마지막에 만들어진다는 말이 적용되지 않길. 적절히 못한 관행은 실수에 대한 자비가 아니라 권력 남용일 뿐이다. 윤리에 반하는 것, 무력감을 주는 것, 인간의 분노를 유발하는 것, 비열한 것, 위협과 협박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만드는 놈들은 하루라도 늦게 잡히기 위해 매일매일 그 수법을 진화한다. 그리고 그들의 악은 법보다 늘 먼저 앞서간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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