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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16. 2019

내 글은 뭐가 문제일까

일단 써서 올리기로 결정했다.

추석 당일 브런치로부터 내 뼈를 때려 순살로 만들어버리는 메시지를 받았다.


잘하는 사람보다 꾸준한 사림이 멋지다는 그 글을 읽는 내내 나는 도대체 브런치를 왜 시작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그저 꿈에 부풀어있었다.

용기가 없어서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도전하지 못하던 일을 수업의 일환으로 이루어냈으니

마치 내가 당장 유명한 작가라도 된 것처럼 기뻤다.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정리해서 목록을 만들다 보니 그 양이 너무 많아져서 대체 왜 브런치는 매거진을 10개밖에 못 내게 하는 걸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했을 정도로.


그러나 내 생각을 남들 앞에서 조리 있게 전달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유명하지도 않은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읽는 사람들의 의견이 나와 너무 다를까 걱정했고 내가 쓰는 글이 충분한 조사 없이 쓰인 글이라는 지적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인기가 있어졌으면 좋겠는데 동시에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을 정도로 글이 부끄러웠다. 글을 쓰는 날보다 올린 글의 조회수를 확인하는 날들이 더 많았고 0에 수렴하는 조회수를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글을 더 자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를 댈 수 있어 기뻤다.


아무리 지금까지 작성한 글이 많다 하더라도 그걸 남들 앞에 공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행위였고

점점 서로 야무지게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새로 글을 쓰는 작업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 시간, 하루, 일주일 서로 미뤄가던 업로드 일정은 서로의 용인 속에 바쁜 일상 속에서 미뤄진 지 오래였다. 하물며 이제는 스케줄러에 업로드 일정을 표시하지도 않는다.




대체 초기의 그 즐거움은 고작 한 두 개의 글을 쓰는 동안 어디로 가고 스트레스만 남았냐고 물어보면

아니, 사실은 여전히 즐겁다.



여행을 가서도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기록하고 주변에 물어본다.

나의 생각이 날개를 달고 다른 사람들에게 훨훨 날아가는 상상은 언제나 해맑게 내 단기 기억과 장기기억 사이를 오간다.


그렇게 묵혀둔 이야기가 도대체 몇 개인지 이젠 셀 수가 없다. 대학원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 글 욕심에 글을 또 잔뜩 쓰는 수업을 들으려다 스스로의 부담감만 증가시키는 행위인 것 같아서 수강 취소를 하기도 했다.


잘 쓰려고 애쓸수록,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할수록


내 글은 길어지고


잘 쓰인 글은 반드시 길지 않아도 의미 전달에 충분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짧은 글이 더 잘 읽힌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에


글이 길어질수록 쓰는 행위는 부담이 된다.




세상에 댈 핑계는 무궁무진하다.

교수님이 주신 퀘스트를 깨러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듯 숨이 벅찬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여름이라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 해서 집도 자주 가야 하고 돈도 없어서 돈 벌 궁리도 해야 하고 등등의 무수한 핑계를 뒤로하고 돌이켜보면


사실은 그냥 나태했던 것이지.

세상에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천천히 쓰고자 했던 글의 목록을 보니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보를 담은 글일수록

잘 쓰고 싶다는 강박에 갇혀있는 내 모습과 그럴수록 잘 써지지 않는 내 실력의 현주소이다.

그런 나도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이기에

그저 천천히 긴 글과 짧은 글의 호흡을 같이 하려고 한다.


한 달 넘게 멈춰있던 내 브런치의 활동을

다소 두서없지만 즐겁게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의지를 굳이 이렇게 구구절절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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