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아웃의 무한 굴레
헬스, 필라테스, 러닝, 크로스핏, 색연필 색칠 공부, 독서, 미드 보기, 영어 회화 공부하기 등 살면서 시도한 무수히 많은 갓-생 프로젝트 하의 취미생활들이 3개월을 채 넘어본 적이 없는 것은 진실로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좋아한다는 따릉이 타기조차 매우 간헐적으로 끌릴 때만 타는 나는 인생에 꾸준함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훌라를 한 번도 쉬지 않고 1년 넘게 내 손으로 등록해서 다니고 있다니. 다들 도대체 훌라가 뭐길래 그러냐고 물을 수밖에.
수능을 제법 망친 내 뒤에서 쑥덕이며 그래서 쟤가 00 학교 ㅁㅁ학과는 갈 수 있냐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보다 지원한 어느 학교의 어떤 전공이 더 나은 거라며 설명하는 아빠, 그리고 동태 마냥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허공을 응시하는 내가 있다. 나은지 아닌지가 뭐가 중허단 말이냐. 할머니가 '공부의 왕도'에 나온 숱한 사례들을 들먹이며 꼽준 말들은 더 이상 그녀의 주장만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정말로 이 말도 안 되는 부모님의 무한한 지원 속에서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해놓고도, 지원한 대학을 다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수능이 끝난 겨울, 다들 그간 붙은 살을 덜어내기 바빴다. 재수를 하는 친구들도, 미리 수시 합격을 한 친구들도, 모두 최소한 운전면허 정도는 따면서 이 시기를 빠르게 즐겨두었다. 혹은 일찌감치 재수 결정을 하고 윈터 스쿨을 등록한 친구들도 수두룩했다. 이 바쁜 친구들 사이로 나는 그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한 채, 그저 2월 말까지 가만히 침대에 누워 보냈다. 그저 흐르는 시간이 내 다음 스텝을 결정해 주길 가만히 기다렸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나는 버닝과 번아웃을 아주 어려서부터 반복해 늘 은은하게 구워져 있는 토스트-아웃 상태의 사람이었다.
내 연구 주제와 하등 상관없는 팀 업무를 하며 밤을 새우던 도중, 대학원 업무는 가사노동 같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만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는데 비해 열심히 해도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밥솥이 알아서 쌀을 씻고 물을 맞춰 밥을 하고 뜸도 들인 후 쉭쉭 젓는 세계관. 세탁기가 알아서 빨래를 색과 재질에 따라 분류해 열심히 빤 후, 축축해진 빨래까지 널어주는 세계관. 아, 이 얼마나 좋은 세계인가. 물론 여기서 밥솥도, 세탁기도, 청소기도 그리고 그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도 모두 전부 내 역할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매 시간마다 정해진 알람을 세워두고 자신의 삶을 꾸준히 통제하며 산다는데, 나는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도 스스로 반짝이는 계시가 내려와야 진행이 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력 부족 대학원의 몰아치는 업무는 이러나저러나 결국 내가 해내기만 하면 됐으므로, 나는 정해진 기한 내에 나만 관리하면 됐다. 신은 내게서 꾸준함을 앗아가고 멀티태스킹 능력을 주었으므로 나는 분명 3인분의 일을 혼자 해낼 수 있음을 믿는다.
세탁기를 돌려두고 밥을 안친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다. 밥솥에 밥을 안치고 반찬을 시작한다. 건조기 같은 고급 장비는 없으므로 빨랫대를 펴고 하나하나 널기 시작한다. 좋아, 이대로만 하면 된다. 아, 다음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야 한다. 아! 밥을 저어 줘야 한다. 이 세계의 밥은 젓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특성이 있다. 밥을 젓다 실수로 밥풀을 흘려버렸다. 바닥 청소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괜찮다. 처음부터 하면 된다. 오, 어느새 당장 한 시간 뒤까지 5가지의 반찬이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가지를 막 썰기 시작했다. 애초에 가지 주문을 한 달 전에 했는데 코로나로 인한 재료 공급 문제로 막 어제 도착한 참이다. 화를 낼 시간조차 없어 소고기를 같이 볶으려 한다. 소고기가 어디 있지. 도저히 손이 부족해 급히 보조를 한 명 구한다. 아, 가장 간단한 청소를 시키려 하는데 전원 버튼을 찾지 못한다. 알려주러 다녀오겠다. 돌아와서 아무리 찾아도 주문한 소고기가 없다. 문의하니 연구비가 부족해서 소고기 대신에 돼지고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결국 적당히 더러운 바닥과 적당히 널브러진 빨래를 배경 삼아 초기 계획과는 전혀 달라진 요리 4가지를 그릇 10개에 예쁘게 보이도록 나누어 담은 채 손님을 맞는다. 방긋방긋 웃으며 하이톤의 목소리로 명랑하게 대답하니 꽤나 괜찮은 결과라는 평을 듣는다.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수개월을 밤새가며 빚은 똥을 가만히 바라본다. 손님이 전부 나간 후 혼자 남은 나는 똥을 변기에 내리지도 못한 채 그냥 가만히 들고 있었다.
사실, 그때 내가 빚은 똥은 꽤나 괜찮은 똥이었다. 반짝거리는 큐빅도 박혀 있었고 모양도 처음 빚은 똥 치고 꽤나 획기적이었다. 그 똥을 빚어낸 나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추진한 사람의 결과물이 아닌가. 나는 연구실 생활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 과고나 영재고 출신은 더더욱 아니었지 않는가. 그러나 그것을 그때의 나만 몰랐다. 나의 완벽주의와 이상주의는 나를 꽤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을 나만 몰라주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그 똥은 창작자의 몰인정 아래에 만들어진 채로 5년이 방치되었고, 이제는 정말로 영락없는 똥이 되어버렸다.
다시금 고백하자면 나는 훌라 자체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 허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안전한 관계성에 매료된 것이다. 몸은 여전히 뻣뻣했고, 빡빡한 대학원 일정에 한 주 빠지기라도 하는 달에는 다음 수업을 쫓아가기 조차 어려웠다. 분명 다녀오면 즐거웠는데 피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동작 연습도 해온다는데 나는 늘 수업 가는 지하철에서 급하게 지난 영상을 수 회 돌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자신만의 속도로 수업을 따라오면 된다는데, 같은 반의 누가 오래 들은 사람이고 누가 처음 하는 사람인지 구분 조차 되지 않는 나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수업을 잘 쫓아가는 듯해 보였다. 선생님은 비교하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비교 경쟁 사회에 익숙해진 한국인은 당최 저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끝없이 의심한다. 동작을 끊임없이 틀리는 순간, 급기야는 제대로 알려준 선생님께 죄송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나는 훌륭한 대한민국의 건아답게 자꾸만 잘 해내려고 하는데, 이를 귀신같이 파악하고 “여러분, 열심히 하지 마세요. 제발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세요.”하는 선생님이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동작을 틀리면 틀린 모두가 다 같이 빵 터지곤 했는데, 이때 깔깔대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순간이 좋았다. 틀릴 때 웃는 웃음이 진짜 웃음이라며 서로의 틀리는 순간을 응원하는 우리가 좋았다. 그렇게 점차 좋아하는 것이 늘던 어느 가을날에, 늘 거울로 남의 동작을 베껴 쫓아가기 바빴던 내가 처음으로 내 동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이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훌라에는 버닝도 번아웃도 없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자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들과 수업 전후로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익숙해졌다. 수업이 끝나고 누군가 “저녁 같이 드실래요?”라 던진다. 기다렸단 듯이 여섯 명이 모여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팥칼국수와 바지락칼국수를 나눠 먹던 선선한 10월의 어느 따끈한 밤. 훌라를 배운 지 막 3개월이 된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나는 훌라를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