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감정과 자존감
내가 제안하는 방식은 순서가 있다. 순서를 되새기며 적용시켜주길 바란다.
1. 내가 힘든 것,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알기
- 먼저, 내가 힘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금 어떤 일, 어떤 대화, 어떤 상황을 불편해하고 어려워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나는 회사가 싫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다’ 이것을 생각할 때는 스스로에게만은 솔직하는게 좋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때때로 내 어려움을 자신에게 조차 들키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속이는 이들이 있다. 내가 힘들고, 어렵고, 속상하고, 자신감을 낮추고, 스트레스 받게 하는 일, 사람, 상황을 생각해본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헤아리다 지칠 수 있으니 현재 나를 가장 많이 지배하고 있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2.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생각했으면 그 이유를 나열해본다.
- 이유가 늘 있다. 그 이유는 내 내부에 있을 수도 외부에 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내 내부에 있을 경우는 생각하다가 자괴감에 빠질 수 있으나 거기까지가지는 말도록 하자. 만일 ‘나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라는 어려움에 대해 이유를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이유는 ‘나는 사회성이 부족해서다’가 될 수 없다. ‘나는 친구들이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놀리기때문에 만나고 싶지 않다.’가 이유가 되는 거다. ‘나는 회사업무에 서툴러서 실수가 잦아 꾸중을 듣는데 그 꾸중이 강도가 지나쳐서 회사에 다니는 것이 싫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성적이 낮고 재미가 없어서 학교에 다니기 힘들다’ 같은 구체적인 이유를 드는 것이 좋다.
3. 그 이유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나는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은지도 고민해본다.
- 내가 느끼는 어려움의 이유들이 전부 해소되는 상황을 홀로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보통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은 나 혼자는 해결되지 않기때문인 경우가 많다. 물론 아닌 것들도 많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싶지 않지만 친구들을 만나지 않으면 외롭다. 회사가 싫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힘들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이 더 힘들지 않다고 자신할 수 없다.
나는 친구들이 나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말과 행동에 대해 최대한 오해가 없도록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는 회사업무에 익숙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강도가 지나친 꾸중에 시달리고 있어도 상사에게 그만해달라고 여청할 수 없으면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거나 그 회사에 있는 동안 내가 잘하고 즐겁해 할 수 있을 다른 일을 모색해보고 회사를 떠날 수 있다. 너무 힘들다면 당장 그만두고 국가에서 주는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생각해본다.
씀씀이를 줄여 아르바이트 하면서 즐거운 일을 함께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든 이유가 공부라면 학교를 그만두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다른 공부를 하는 일과 학교를 적당한 성적으로 다니면서 다른 공부를 병행하는 일에 대해 부모님과 진지하게 상담해본다. 부모님이 어려우면 청소년 상담전문 기관에 의뢰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사회적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압박은 개인을 그토록 가둬둔다. 그러나 실제도 그렇게 사는 이들이 있다.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고, 회사를 다니지 않고도 즐거운 일을 하며 자본주의를 살아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학교 안에만 있어서 몰랐던 학교밖 청소년들 중에도 공교육 시스템보다 훨씬 더 멋진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삶들에도 전부 어려움과 힘듦이 있다는 것이다.
4. 대안을 찾는 일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될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나서 할일은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래야 온전히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실패해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선택일수록 또 다른 선택지를 가져오고 그 선택을 하고 또 실패하는 과정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리고 어느순간 알게될 것이다. 나라는 사람과 내가 속한 이 사회룰 말이다.
이 방법들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몇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나의 감정을 알고 말하는 일이다. 내 감정을 상대가 상처입지 않도록 말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해 풀어서 구체적으로 솔직히 말해야한다. ‘나는 이런 의도로 그 이야기를 한 것이고, 그것에 대해 너는 이렇게 생각해서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말이 너에게 그런의미로 받아들여질 줄 몰랐다. 미안하다. 그러나 너의 말과 행동에서 나는 이런이런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는 내 말에 어떤 기분이 들면 나에게 솔직하게 그 감정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이걸 간략하게 하자면 ‘의도-이해-반성-감정전달-대안’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화는 중요하다. 인간이 언어를 만든 이유가 좀더 쉽게 대화하기 위해서다. 물론 오늘날은 대화하는 일이 쉬운 사회는 아닐 수 있으나 우리는 대화를 통해 사회가 잘못 가르쳐 잠들어버린 나의 모든 감각을 깨울 수 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상황, 환경, 타인이다.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는 없고 유기적으로 묶여있는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내 밖도 잘 살아야 한다. 나와 나의 밖은 끊임없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환경을 바꾸는 청소부터 이 사회를 바꾸는 사회운동까지 우리는 저마다 엄청나게 방대한 철학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에 어느정도 공감하고 있다. 나와 나의 밖을 헤아리는 일, 나의 행복을 위해 나 외의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고 대화하는 일은 무조건 중요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덧붙여 이건 다만 나의 방식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은게 있다. 나의 글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생긴다면 평가보다는 인정을 하기위해 노력해달라. 그러니까 ‘이건 아니다’가 아니라 ‘이건 내 생각과 다르다’ 혹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말라. 모든 글도, 모든 사람도 자신과 완벽히 일치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다름은 틀림으로 해석해서 깊은 감정의 쓰나미를 끌어오지 말아달라.
이런 방식은 사실 모든 글, 모든 사람을 만났을 때 적용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친구의 이야기보다 책으로 출판된 어떤 글귀를 더 신뢰하고, 부모의 충고보다 언론이나 뉴스에 크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그럴싸한 방식으로 오픈된 다양한 정보에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책이 대표적이다. 책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이 사회에 만연한 이유는 엘리트라는 집단에 대한 동경때문이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나 책을 내던 시절이 있었고, 전문가가 되기위해서는 돈도 많아야하고, 공부도 많이, 열심히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책을 내는 건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책을 쓰는 사람들, 즉 전문가, 교수 등에 대한 소시민들의 그러한 동경은 유아때부터 교육에 힘쓰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소비층들 때문에 교육정책에 반영되었으며 현재 공교육은 그들의 동경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 되어버린것이 아닌가.
책은 소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방적이다.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절대적 믿음’은 어떤 것이든 위험하다. 차라리 친구들과의 소통을 더 소중히 하자. 나는 언제나 무엇에게나 누구에게나 내 의견을 말하거나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권리는 당신의 지식이나 능력과는 완벽히 무관하다.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는 것, 또 질문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야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을 것에 대해 입체적인 정보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를 신뢰하고 내가 신뢰하는, 나와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소중하다. 정보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나의 관심에 대해, 나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믿게 된 ‘자존감’은 더이상 무시와 배척, 자기방어로 똘똘뭉친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다. 나를 버리고 나의 외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포용하는 것은 자존감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포용이라는 것이 무조건 끌어안는 방식은 아니라 이해하려는 모든 의지다. 깊은 관계일 수록 이해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물론 지금은 누구도 이해하고 싶지 않거나, 그리고 이해하려는 용기를 냈던 나름의 경험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더는 하고 싶지 않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평생 그런 상태에 스스로를 가둬두지는 말자.
조금 외로워지면 도전도 해보는 거다. 그렇게 천천히 한명씩 만나게 된다. 내가 아끼고 싶은 관계를.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나를 이해해주 것만으로도 세상 참 살만해진다. 이 글은 ‘감정’과 ‘자존감’에 대한 나의 이야기와 가치관이며, 나는 감정에 관심이 많고 자존감이 낮은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아직은 훈련 중에 있으며 온 생명들과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내 글을 통해 누군가 살짝 미소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동을 받고 행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이의 삶도 하찮지않다. 단언컨데 당신의 삶은 세상 유일하다. 많은 이들이, 이왕이면 모든이들이 많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이해하는 삶을 살길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