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감정과 자존감
자존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포용심이다. 그러나 존재와 세상을 포용하기 어려운 상태에서는 포용보다는 무시, 배척, 불신의 자존감이 탄생되기 쉽다. 나는 존재로서 존재를 포용하는 능력, 그 존재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오는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에게 자존감을 기르는 능력이란 나와 나의 밖을 동시에 보고자 노력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나만보거나 나의 밖만 보고 생겨나는 것은 자신감일 수는 있으나 자존감이기 어렵다. 이 말이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은 아니다. 존중과 중요는 다르다. 나의 중요는 나만 알고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과연 있다가 사라졌을까. 자존감은 어릴 때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자아'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는 우리를 잃는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주 일반적인 예를 들어보자.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집안이든 집 밖이든(학교, 학원, 마을 그 어디든) '어른'들이 직접 규칙이나 규율을 만들었고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은 해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 이유를 묻는 아이에게 "말 대꾸한다", "왜 이렇게 따지냐", "하라면 해"라는 말을 하는 어른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을 주는 방식으로 아이를 억압했다.
어릴 때 나는 참 혼이 많이 났는데, 손을 들고 벌을 서면서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유를 물으면 어른들은 불쾌해했고 나를 야단쳤다.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반항은 아픔과 상처만 남겼다. 사적, 공적으로 이유모를 억압의 연속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법적으로 성인의 나이가 되기 전까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상태가 기본이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20살이 되자마자 세상 밖으로 던져진다. 하루사이에 내 삶의 주인이 부모가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고 세상은 말한다.
학교나 학원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20살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고, 내 적성에 맞는 일은 찾아야 하며, 자존감도 획득해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은 넉넉잡아 20살 중반을 넘기 전에 모두 깨우쳐야 사회가 원하는 성인의 모습이 된다. 20살부터 25살까지 5년이라고 하자. 5년은 인생을 알고, 깨우침을 얻기에 터무니없이 적은 시간이다. 하지만 깨우치지 못하면 '나잇값' 못한다거나 무능력한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장한다. 대학교를 졸업해야만 하는 사회구조때문에 공부하기도 바쁜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야하거나 열심히 사는 듯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구나 대학교를 졸업해서 취직을 못하면 낙오되는 기분을 받는다.
20대 중반이 되어 나는 나잇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수치심을 느꼈다. 그 수치심은 나를 좀 더 성숙해보이는 사람으로 위장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성숙한 척하는 것으로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나는 지속적인 우울증에 시달렸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떠나고자 했다. 이렇듯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심각한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일이 여전히 많다.
어린시절부터 우리가 스스로 모험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부모에게 공교육을 시킬 의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기질을 깨우치도록 하는 교육이나 활동이 의무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걸 부모 개인들뿐만 아니라 이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보장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만족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경험에 따라 세상과 사람을 보는 자세가 다르다. 그 자세에 따라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건 당연한 논리다. 하지만 그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여러사람 앞에서 단둘이 있을때의 모습이 다른 것에 대해 사람들은 쉽게 이중적이라거나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상대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쉽사리 하지 못한다.
최근 몇년동안 서점 스테디셀러 목록을 장식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존감'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라는 멘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내 삶의 의미를 못찾겠어'라고 호소하는 이들이 왜이렇게 많은 것일까. 고민의 양상도 비슷하다. 그 이유는 똑같은 옷을 입게하고 똑같은 공부를 시키고, 비슷한 목표를 가지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 돈, 학벌, 외모 등이다.
비슷한 환경(공교육, 사회적 억압)에서 자라왔다고 해서 거기에 속한 모두의 기질이 같아지진 않는다. 기질은 다 다르고 그 기질에 따라 다른 능력이 발전 할 것이다. 물론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예를들어 노래만 열심히 부르고 싶은 사람과 그림울 그리는데 집중하고 싶은 사람에게 공부를 하라고 억압하면 그 둘에게 공통적으로 남는 것은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억압받고 있다'는 자각이나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 같은 의문, '막막함', '서러움', '소외담함'같은 감정이다. 그 깊이나 내용이 각각 다르지만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양상의 걱정과 고민을 갖게 되어 비슷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자존감을 갖기 위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적이나 조언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자세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뭉퉁그려 한가지 방식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게 되면 자칫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나는 세상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러니까 나는 내 외부의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떤 눈빛과 말, 행동을 하면서 무엇을 흡수하거나 뱉어낼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스텐스(자세)를 구분해봤다. 여기서 나의 스텐스는 5번이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습관이 된 스텐스는 한번에 해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타인의 생각을 들었는데 그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가치관과 조금 다른 상황>
1. 존중 : '그렇구나'
2. 내 안의 중요도 : '그렇구나, 나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네. 멋진데?'
3. 내 밖의 중요도 : '그렇구나, 그럼 나도 저렇게 생각해야 되나?'
4. 감정의 쓰나미 : '그렇구나, 나는 저렇지 않은데 어떻게하지? 내가 잘못된 걸까?'
5. 무시와 배척 : '저건 좀 틀린 것 같은데?', '헛소리하고 앉아(서)있네'
3, 4번은 함께 오기 쉽다. 이 모든 스텐스 이외에 다른 것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그 종류를 다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현재 스스로의 삶의 스탠스를 비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선택한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나는 무시와 배척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여의치 않을때는 내 밖의 중요도에 더 관심을 가져왔다. 그나마 나는 스스로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살아 온 사람이라 내가 사라지거나 불안하면 줄곧 도망치거나 숨어왔지만 당시에는 대안을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당신이 ‘나는 지금 이런데,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고민하고 있다면 내가 제안한 방식이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