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적이다.

1. 감정과 자존감

by 해와

이별은 슬프다. 죽음은 견딜 수 없이 안타깝고 아쉽다. 사랑이라고 해서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다. 아프기도하고, 억울함도, 서운함도 있다. 귀찮고, 지겹고, 지루하기도 하다. 죽음과 사랑이라는 커다란 예를 들었지만 사실 우리내 삶에 이 감정들은 일상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아프고, 슬프고, 귀찮고, 지겹고, 서운함을 느낀다. 화가 나기도 하고, 감동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그런 관계들 속에서 느끼는 어떤 감정들은, 그 감정을 만들어 낸 상황은 트라우마로 남아서 오래도록 잊을 수 없고 그 트라우마가 만들어 낸 모든 행동들은 몸부림을 쳐도 떨어져나가지 않기도 한다. 우리는 감정의 덩어리들이다.


힘주어 말하자면 '감정' 자체는 나약함과는 상관이 없다. 감정은 내가 강인하면 안느껴지고 나약하면 느껴지는 어떤 '미숙'의 증명 같은게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이고, 느끼는 것들 중에는 감정이 있다. 분명히 하자면 나는 감정의 최고 능력자는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저 나를 ‘감정에 관심이 많아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고 봐 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나의 상처를, 그걸로 상처입은 나와 그 상처를 준 이에 대해 동시에 헤아리는 과정을 끊임없이 겪어내는 중에 있다.


앞서 말했듯, 나의 경험은 내게 수많은 피해의식을 남겼다. 나의 경우는 그게 어떤 경험이든 나에게 이로운 것을 ‘경험’이라 부르고 힘들게 만드는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표현한다. 이 두 단어를 혼용해도 되는진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건 나는 수많은 트라우마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저 삶은 그 과정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경험이 만들어 낸 모든 행동들을 하며 살아왔다. 꼭 어떤 경험이 트라우마까지 남기지 않았더라도 많은 것들이 나의 행동을 제어하고 변화시켜왔다. 어떤 행동을 하고 반성하고, 때로 억울해하고 이해하며 몇십년을 살았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어떤 삶의 생체기들과 함께 살아내고 있다. 단언컨대 피해의식 없는 사람은 없다.


내가 아는 피해의식이란 피해를 입었던 비슷한 상황을 의식하면 피해를 또다시 입지 않기위해 스스로 방어하려하는 행동이다. 예를들어 골목길을 걷다 바바리맨을 마주쳐 아주 놀란 적 있는 어떤 여성이 그 어디에 있는 으슥한 골목길로든 절대 가지 않기위해 항상 큰 길을 돌아가는 경우를 예로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친구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주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자 친구들의 놀림과 비웃음을 받았던 기억 때문에 자신의 꿈에 대해 타인에게 잘 말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과거에 내 트라우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극복하려고 본능적으로 애썼다. 살기 위해서였다. 물론 지금도 애쓰고 있지만 겁이 좀 많아졌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하다. 나는 많은 이들이 나 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트라우마가 삶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은 제법 흔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종종 오는 것이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 극복해내는 방법을 찾았다면 다행이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오랜기간동안 치유받아야 하는 경우도 참 많다.


전문가와 함께 있어도 트라우마는 결국 내 스스로가 헤쳐나아가야 할 문제다. 전문가와의 상담 혹은 프로그램 이후에 변하기위해 스스로 무진 애를 써야 한다.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는 참 어렵다. 그런 트라우마 상태일때 주변이 통 도와주질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 추스리는 것도 힘든데 주변에서는 그런 나에게 나약하다거나 감정적이라며 가볍고 날카로운 말들로 트라우마를 더 깊은 궁지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흔히 말하는 ‘자존감’과 닿아있을 것이다. 나도 자존감이 중요하다 여기고 있다. 나는 자존감은 나 자신만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트로피같은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잃은 사람은 보통 남도 잃는다. 여기서 '잃는다'는 것은 깊이있게 교감하거나 공유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자존감은 ‘자아존중감’, ‘자기존중감’이다. 자기존중감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자존감’을 설명하는 많은 글에서는 그 안에 ‘자기 자신’만 설명한다. 나는 세상에 자존감을 형성하도록 돕는 다양한 요소를 빼놓고는 그것을 스스로 형성하기에 매우 어렵거나 잘못된 자아존중감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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