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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원 Jul 16. 2021

데뷔를 기다리는 모두에게

최혜원의 일주일서 2021년 상반기 결산 책 추천

최혜원의 일주일서 상반기 결산

총 25권의 책을 읽었다.


2분기는 투자 받는다 뭐한다 바빠서 거의 책을 못 읽는 달도 있었지만, 투자 유치가 끝나고 나서 그동안 목말라 있던 식물에게 물 주듯 나에게 책 읽는 시간을 허했다. 꼴깍꼴깍.

주로 창업, 투자, 에세이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중에서 인상 깊어서 추천하고 싶은 다섯 권을 꼽아 봤다. 워낙 책 선정에 까다롭게 굴어서, 25권 중 5권이면 까탈쟁이의 상위 20%이니 책을 고를 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미 읽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대박, 이 책 꼭 읽어봐, 지금, 하도 호들갑을 떨어서 가까운 사람들은 책장에 끼워 놓긴 했을 거다. 그래도 좋은 거 나만 보면 아깝잖아!


1. 레비 씨, 스티브 잡스의 골칫덩이 픽사에 들어가다

25권 중에 단연 1위의 책이다. 무조건 추천. 표지의 이미지와 다른 책입니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스티브 잡스가 어느 날 레비에게 건 전화, "픽사에 CFO로 오지 않을래요?"로 시작된다. 지금이야 픽사가 디즈니에 인수합병되고 전세계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사로잡는 creativity의 선두주자로서의 명성이 자자하지만, 당시만 해도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디즈니 독식이었고, 픽사를 가지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서 명성에 먹칠을 한 딱 그때였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직접 상장까지 시킨 실리콘밸리의 유망 기술 기업 CFO라는 직책을 버리고, 이제는 모두들 그에게서 달아나기 바쁜, 악명 높은 스티브 잡스의 휘하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것인가. 그는 그랬다. 미친 결정이었다.


회사는 정말 엉망이었다. 아래서는 사람들이 그를 '아무 것도 모르는 욕심쟁이 스티브 잡스가 꽂은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우고 혐오했으며, 위에서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티브 잡스가 계속 언제 상장할 수 있냐며 닥달했고, 옆으로는 똑똑하고 창의성 넘치는 리더들이 있었지만 어떻게 사업화를 진행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천재들이었고, 레비는 뒷걸음질 쳐서 회사를 도망쳐 나오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사면서 그들의 창의성을 사업화할 방도를 찾아 나간다. 정말 한 단계, 한 단계씩.


이 책은 믿음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다.

첫째, 천재들이지만 사업화를 하지 못하는 리더들에게 어떻게 돈을 벌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CFO로서의 조언과 결단을 내리고 액션하고, 어디까지는 선을 지키고 그들의 창의성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기다림. 조직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관한 이야기다.


둘째, 그는 피하지 않았다. 리더란 무엇인가.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잘라서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정면돌파하는 것.


결국 성공적으로 디즈니에 픽사를 매각하고 실리콘 밸리의 전설이 되었지만, 도중에 얼마나 속이 문드러 들어갔는지, 이 부분을 읽고 너무 웃기고 공감되어서 웃음 반 눈물 반으로 업계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티브와 일하다 보면ㅋㅋㅋㅋㅋ 분통이 터질 때가 있어 ㅋㅋㅋㅋㅋㅋㅋ


그는 결국 스티브 잡스와의 진한 우정을 키워 나갔고,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암 소식을 거의 최초로 알리는 친구가 될 정도로 믿을만한 사람이 된다. 실리콘밸리의 신화 스티브 잡스가 어떤 매트릭스를 그리며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하고, 그들과 같이 일한, 그것도 최측근의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고 어떻게 성장했었는지 샅샅히 써내려간 비밀스런 일기장을 들춰 보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이다.


겉으로 보기엔 멋있기만 한 유수기업의 CFO였지만, 얼마나 머리 뜯으면서 한 문제씩 뽀개 나갔는지, 한 명씩 설득해나갔는지 그도 한 인간이었다. 누구나 처음에 '그놈의 픽사'에 간다고 했을 때 말렸지만, 픽사 사람 한명 한명을 만나면서, 이들의 천재적이고 순수한 창의성을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 인정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안타까워 하면서 으어아아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글을 너무 재미있게 써서, 2018년 읽었던 <카오스멍키> 이후, 재미와 교훈까지, 최고의 책이었다.  강추!


2. 슈독


나이키 창업자가 쓴 너무 유명한 자서전이다. 지금이야 세계 최고의 스포츠 기업이 되었지만, 나이키도 처음에는 일본에서 신발을 떼오던 곳이었다. 만년 2등의 달리기 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핸드폰도 없고, 전보로 모든 비즈니스가 진행되었던 1960년대에 그 머나먼 신비의 땅 일본으로 가서, 자신이 원하는 품질의 운동화를 떼오기 맨땅의 헤딩으로 시작한다. 일본 지방의 한 공장에 다짜고짜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마치 법인이 있는 것처럼 브랜드를 설명하는, 아무 것도 없는 청년의 겁없는 승부수란! 파트너십이 이어지면서 일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몇 년간의 노력들, 그리고 결국 빠그러지고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기까지의 배신감, 적자의 연속, 고뇌와 몸부림, 자기반성은 정말 눈물겹다. 절대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가히 대단한 창업가들이 단 하나의 인생 책을 꼽으라고 하면 유독 <슈독>을 꼽는 이유를 알겠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고뇌할 일이 생기면(사실,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거의 매순간이지만), 동업자와 말없이 몇키로씩 묵묵히 같이 뛴다는 그의 ritual이었다. 달리기를, 그리고 그것을 잘하기 위한 신발을 사랑하다 못해 그것을 위해 모든 인생을 바친 사람을 어찌 얕은 집중력으로 이길 수 있을까.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한다(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즐기는데 노력까지 피눈물하게 하는 사람은 오죽할까. 겸손하게 내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3. 승려와 수수께끼


제목과 달라요. 아니 잠깐만, 들어 보세요. 철학서 아님.

때는 199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연쇄 창업자이자 VC가 혈혈단신으로 종이 몇 장 들고 찾아온 젊고 혈기왕성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예비 창업자에게 커피숍 피티를 들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미뤄 놓은 인생 설계'대로 산다.

1단계 : 해야만 하는 것 (보통 돈을 버는 일)
2단계 :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1->2단계로 지나가는데 30년, 혹은 평생이 걸리고, 창업을 하는 사람들조차 1단계에서 평생 머물다가 후회하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이번 텀에는 돈 벌고, 그 다음에 가슴이 뛰는 걸 해야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시간'이며, 1단계->2단계가 아닌, 바로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종교 철학서처럼 지루하지 않게,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를 하다가 2단계의 삶을 살고 있는 현직 VC의 목소리로 들으니까 굉장히 설득력 있고 재미 있는걸. 1단계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자원을 다시 생각해보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3년 전에 어떤 현자가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셨을 때는 그렇게 감명 있게 읽지 못했었는데, '시간'이라는 것에 골몰히 생각하는 요즘 매우 가슴을 후벼 파는 대목들이 많았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는 <빌 캠벨, 실리콘밸리의 코치>로 유명한 빌 캠벨과 공동창업을 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전혀 몰랐음.. 또 배달의 민족 김봉진 회장이 초심으로 돌아갈 때 이 책을 읽는다고. 제목에 겁먹지 말고, 한번쯤 후루룩 읽어보길 추천한다. 당신은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가.



4. 크래프톤웨이

크래프톤 상장을 바로 앞두고 2021년 7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2007년 창업 초기부터 배틀그라운드를 출시하기까지 10년간 게임의 전설 크래프톤이 어떤 실패를 극복하며 성장하였는지 보여준다. 아니 근데, 이정도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게, 회사를 이리 저리 움직였던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반이 되었던 이메일, 각 참여자의 목소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그대로 쓰여 있어서 매우 놀랐다. 거칠다. 절대 이 배가 함선으로 발전하기까지의 여정은 전혀 장밋빛이 아니었고, 때로는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을, 때로는 바로 다음달 자금까지 떨어져 허덕이는 폭풍을 수도 없이 겪었다. 인터뷰 영상에서 사람좋게 웃고만 계셨던 장병규 의장님의 위용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엇다.


또 유퀴즈에 김창한 대표가 나와서 회사 자랑을 할 때는 정말 겸손하고 여유 있게 보였는데, 배틀그라운드라는 프로젝트가 어떻게 아이디어로 착안되었고, 회사를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고 짜증나는 검증 과정을 거쳤으며, 실제로 나오기까지, 그리고 나와서 잘 되어도 조직을 얼마나 처절하게 설득해서 리소스를 받아갔는지까지 그 crude한 이메일 하나하나를 다 읽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진짜 처절하다. '배그 글로벌 가입자 10억명', '매출 1조 6천억원'이 크네- 정도의 인상으로만 다가오는 사람에게 추천.


리더란 무엇인가. 조직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고민하고, 그게 맞다면 처절하게 싸우고, 필요하면 피 눈물을 흘리며 칼을 빼들 줄도 아는 사람. 읍참마속의 비장함.


5. 데뷔의 순간

누구나 '데뷔'를 꿈꾸며 살아간다. 우리가 지리함과 괴로움을 참는 이유. 언젠가는 보란듯이 멋지게 내 분야에서 데뷔하고 싶어서, 잘 나가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아니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어서. 하지만 생각만큼 그 순간은 빠르게 오지 않는다. 그 순간을 기다리는 20대뿐만 아니라 현대인 모두에게 영화 거장들의 십년, 이십년의 기다림의 순간들의 기록을 선사한다. 사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신화가 난리일 때, 안 그래도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의 데뷔기가 궁금해서 펼쳐 보았지만 생각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대학 때부터 그냥 직진만 해온터라 드라마틱한 무언가는 없었다. 대신 다른 유명 감독들의 눈물 겨운 이야기들이 눈에 밟히는 책이었다.

 "우리가 언제쯤이면 이런 소작질을 끝낼까"

 "나에 대한 희미한 좌절감, 부모님의 기대와 걱정을 비롯한 이런저런 시선들, 먼저 치고 나가는 동료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 등으로 점점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그때까지 버리는 시간 없이 나름 착실히 살아왔기에 갑자기 주어진 그 시간의 진공상태를 견딜 수 없었다"  

십년이란 무명 세월을 어떻게 버텼을까. 모두의 이야기에서 숭고함이 절절이 스며들었다. 데뷔는 절대 행운처럼, 하루 아침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하지만 그 잔인한 사실을 다시금 새겼다. 우리는 왕도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삶에 왕도는 잘 없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꾸준히, 하루 하루 앞으로 나가는 것.

어떤 순간에도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어라.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엄습하겠지만,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  - 봉준호



최혜원의 일주일서로 써내려간 책들을 굳이 한 묶음 안에 묶어보려 시도한다.


이번 제목은 <데뷔를 기다리는 모두에게>로 꼽았다. 픽사의 이사 로렌스 레비,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 이름 없는 창업가,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을 비롯한 초기 해적선원들, 그리고 한국 영화 거장 17인.


모두가 처음에는 작고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 말렸고, 오랜 시간 기다렸고, 넘어 졌고, 조력자가 배신하기도 했고, 귀인이 나타나 구원을 해주기도 했다. 위대한 거장들의 청춘을 따라가며, 자기 인생, 내가 만드는 서비스와 같이 '내 소중한 것들'의 멋진 데뷔를 기다리고 있는 모두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데뷔를 기다리는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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