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공연
나는 꽃거지다. 말하자면 서울역 광장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비둘기 같은 존재다. 땡전 한 푼 없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 한 번듯한 기술이나 전문지식도 없다. 다만 신수가 멀끔하고 옷맵시가 좋다. 헌옷수거함을 뒤져서 뭘 하나 걸쳐입어도 백화점에서 산 것 같다고나 할까.
하루일과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시작한다. 세면대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물에 깨끗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며 밝게 인사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근처 드럭스토어의 점원에게 퍼스널 컬러를 봐달라고 하고 어울리는 톤의 화장품을 추천받은 뒤 테스터로 간단한 화장을 마치고 섬유탈취제나 방향제, 향수를 그 날의 취향껏 뿌린다. 들어온 김에 진열대의 신상 화장품, 이미용품 과 건강식품을 빠르게 스캔한다.
다음 목적지는 베이커리다. 이 시간 즈음에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차의 시식과 시음을 하기 때문에 잠깐 들러 요기를 한다. 천천히 오랫동안 꼭꼭 씹으며 빵 한 조각을 음미하는 동안 새로 나온 빵과 2월 졸업, 발렌타인 데이 선물을 둘러본다. 축하해,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같은 문구들이 적힌 알록달록한 초콜렛, 마카롱, 빼빼로, 케익들을 멀리 떨어진 벽에 전시된 작품처럼 감상한다.
다시 정처없이 길을 걷다가 천원샵으로 들어선다. 이 곳에서 점원에게 메모지 한 장을 얻어 문구코너로 가서 가장 밝고 선명한 싸인펜을 들고 잠시 뭔가 고민하다가 받은 종이에다 또박또박 꾹꾹 확신에 찬 글자를 눌러쓴다.
“오늘은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요.”
메모지를 베이커리 앞 쓰레기통에서 주운 기다란 은색 고무줄에 끼워 목에 걸고 거리를 활보한다.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춘다. 오지랖 넓어 보이는 할머니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애매한 태도로 주변사람 모두 들으라는 듯 말한다. “목에 그게 뭐에요? 스테이크가 먹고싶어?” 꽃거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네,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요. 그런데 돈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으러 갈거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별 미친 사람 다 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있던 아저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역정을 내며 “아니 누구는 스테이크 먹기 싫어서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출근하는줄 알아? 사지 멀쩡한 사람이 영 안되겠구만!”하고 침을 뱉을듯이 마구 튀기며 흥분해서 종종걸음으로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옆에 있던 중학생 두 명이 킥킥대며 슬며시 전화로 이 장면을 재미있다는 듯 찍었고, 그게 조금 미안했는지 꽃거지의 목에 걸린 후르츠 캔디가 그려진 틴케이스에 동전을 몇 푼 던져준다. 쨍그랑, 쨍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