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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우소 Nov 19. 2023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영화와 함께

인생의 전반부가 끝나가는 시점에 이 영화를 봤다. 아이들이 늘 우선순위여서 나를 잃고 무기력해지는 시간이 많은거라 생각했던 요즘, 그녀가 60이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놓지 못했던 간절한 소원의 정체와 끝내 이뤄낸 의지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나이애드는 마라톤 수영 선수로, 환갑을 맞아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100 킬로미터가 넘는 바다를 몇 일에 걸쳐 종단하는 필생의 꿈을 이루려 한다. 앞서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본인 스스로 강력한 믿음과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이애드를 따라다니는 일이 돈이 되지 않아 먹고 사는 게 당장 급해 어쩔 수 없이 갈라섰던 항해사 바틀렛은 병을 얻은 뒤 죽음을 예감하자 도리어 자신의 인생에 희망의 불꽃을 지펴준 나이애드와 다시 손을 잡게 된다. 그녀에게는 수십 년 간 함께 하며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보니라는 친구도 있다. 보니 자신에겐 이렇다 할 꿈이 없지만 친구 나이애드의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걸 도우며 삶에 대한 환희와 열정을 느낀다.


만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서 날아오는 모래바람까지 느끼는 바틀렛의 바다에 대한 섬세한 이해와, 나이애드가 수영하는 동안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정성껏 아기 돌보듯 시간 맞춰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며 격려하는 보니의 도움으로, 그녀는 바다에서 해파리에 쏘여 죽을 뻔 하고 상어를 코 앞에서 만나는 등 어쩔 수 없이 닥쳐오는 불운도 담담히 겪어내며 긴 시간 버티다 마침내 조류와 방향이 맞아 수월하게 헤엄칠 수 있게 되는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만나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최대의 고비를 맞이한다. 너무 오랜 수영으로 지쳐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보니는 이 때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그녀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다. 벼랑 끝에서 단 한 번의 스트로크를 살려낼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한 친구 덕분에 나이애드는 다시 완주를 이어갈 힘을 얻는다.  


나이애드에겐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어린시절의 시련도 있었다. 십대 시절 존경하며 온전히 믿고 의지해온 수영 코치에게서 성적 괴롭힘을 당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그 일을 혼자 감당하려다 오랜 방황과 자꾸만 주저앉는 절망을 겪었던 것이다. 나이애드는 환갑이 다 되어 이 일을 보니에게 솔직히 고백하며 묵힌 상처를 털어낼 수 있게 된다. 이들이 함께 플로리다로 향하는 과정을 보면서 마라톤 수영이든 다른 어떤 난관이든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로 사람이 아프게도 하지만 서로를 가슴 깊이 이해하고 믿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마침내 플로리다 해안에 도착해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발을 떼 뭍으로 올라오는 나이애드를 바라보는 보니의 모습이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해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 같다. 긴 시간 물 속에서 홀로 노래하는 나이애드가 외롭지 않도록, 지치지 않도록, 그토록 간절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보니가 곁을 내어준 것도 어쩌면 그녀의 꿈이자 진심어린 열정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반의 나이애드는 혼자만의 신념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 같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와 그녀를 응원하는 이들의 꿈이 모아지고, 나이애드의 마지막 여정은 수많은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생의 의지를 이어가고 싶은 우리 모두가 꾸는 꿈이자 콘서트 떼창처럼 느껴졌다.


사람 사이의 믿음을 바탕으로 내 안의 어려움을 이겨내 마침내 세상 속으로 힘차게 걸어 들어가는 수영선수의 이야기였다. 왕년에 누구보다 앳되고 미소가 천진했던 아네트 베닝과 조디 포스터가 고목같이 주름진 얼굴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며 강인하고 탄탄한 몸매와 연기를 선보여 늙어가는 내 마음에도 환하게 불을 지펴주었다.


@Diana Ny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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