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을 위한 수학 [CAGR]
모든 분야에서 10%씩만 더 성장한다면 (월드클래스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손흥민 선수 아버님께서는 여전히 아들은 월드클래스가 아니라고 하시네요. 모든 영역에서 10%씩만 더 성장한다면 그때는 월클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고 합니다. 이 발언이 너무 박한 평가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돌려서 생각해보면 대단한 칭찬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해석] 흥민이는 아직 최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다.
똥해석일 수도 있지만, 한번 손 선수의 기록을 살펴보면 위와 같이 해석할 법도 하구나... 싶으실 겁니다.
렛츠 게릿.
12년 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프로 무대 데뷔골을 터뜨린 이후 손흥민은 매 시즌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번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도 차지했지요. 종종 '꾸준히 성장한다'는 수식어가 붙는 손 선수. 이쯤 해서 손 선수의 '꾸준한 성장'이 어떤 수준인 건지 한번 알아보기로 합니다.
우선, [성장]이라는 말은 너무 광범위하네요. 퍼스트 터치, 공간 이해력, 멘탈 등등 성장을 논할 요소는 무궁무진하므로, 그냥 결과만 놓고 보겠습니다. 공격수의 Output이라 할 수 있는 [공격포인트]가 매년 얼마나 증가했는지 그 추세를 성장이라고 전제해봅니다.
12년 동안 공격포인트는 3개에서 32개로 늘어났습니다. +29개 늘었으니, 29 나누기 3 해서 +967% 성장세를 보인다고 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건 성장의 "총량"이지, 성장의 "추세"는 아닙니다. 우리는 [공격포인트가 매년 얼마나 증가했는지] 그 추세를 보고 싶은 거잖아요. 그렇다면 위의 표에다가 매년의 증가율을 좀 추가해 봐야겠습니다.
[공격포인트가 매년 얼마나 증가했는지] 그 추세를 보자고 했었죠. “추세"라는 건 하나의 수치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11개의 증가율 수치가 있으니 이를 하나로 나타내는 대푯값을 정해야겠네요. 그런데 11개의 증가율은 100%, 133%, 36%... -18%로 수치가 들쑥날쑥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푯값으로 일단 평균을 쳐버리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럼, 손흥민은 매년(시즌당) 33%의 성장세를 보였다...라고 하면 맞을까요?
틀립니다.
"매년의 독립적인 성장률을 단순 평균 낸 게 아니라,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성장률이 얼마냐"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즉, "매년 동일한 비율로 성장했다고 할 경우 그 비율이 얼마냐"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CAGR(연평균 성장률 Compound Annual Growth Rate)입니다. 말이 복잡하므로 한번 도식으로 이해해보겠습니다.
연평균 성장률은 복리(複利)의 개념입니다. 위 그림을 보면, 첫 데이터 A에서 R%만큼 증가한 수에 또 R%를 증가시키고 이걸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E가 나오게 되는 그때의 R이 몇%냐. 이게 연평균 성장률 CAGR의 개념입니다.
CAGR은 복리의 개념이라서, 매년의 성장률 a, b, c, d를 단순 평균 낸 값과는 다릅니다. 아까 실제 손흥민의 기록에서 단순 평균값이 33%였지요. 만약 첫 년도 공격포인트 3개에다가 33%를 증가시키고 거기에 또 33%를 증가시키고... 를 반복하면 마지막 시즌 공격포인트인 32개가 나올까요? 아닙니다. 전혀 다른 수가 나옵니다. 33%는 복리를 계산한 게 아니라 매년의 성장률 수치를 단순 평균 낸 거니까요. 실제로 곱해 본 아래 표를 보시지요.
각 년도 성장률의 산술평균값인 33%를, 실제와 똑같은 공격포인트 3개에서 시작하여 반복하여 적용해봅니다. 3에다가 33%를 증가시키면 4, 이 4에다가 또 33%를 증가시키면 5.3 이런 식으로 계속 33%를 증가시켜 나가면 마지막에 69.1이 나옵니다. 실제 값인 32보다 2배 이상의 값이 나오네요.
즉, "손흥민이 매년 평균 33%의 추세로 성장해왔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 된다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그 연평균 성장률 R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이 그림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 그림을 수식으로 나타내 보겠습니다.
A x (1+R) = B
B x (1+R) = C
C x (1+R) = D
D x (1+R) = E
첫 번째 식에서 A x (1+R)이 B라고 했으니,
두 번째 식의 B를 A x (1+R)로 바꿔서 써주면 두 번째 식은 이렇게 됩니다.
A x (1+R) x (1+R) = C
이로써 A x (1+R) x (1+R)이 C라고 정의되었으니, 세 번째 식의 C를 A x (1+R) x (1+R)로 바꿔서 써주면 세 번째 식은 이렇게 됩니다.
A x (1+R) x (1+R) x (1+R) = D
마찬가지로 A x (1+R) x (1+R) x (1+R) 이게 D라고 했으니, 네 번째 식의 D를 A x (1+R) x (1+R) x (1+R)로 바꿔서 써주면 네 번째 식은 이렇게 되지요.
A x (1+R) x (1+R) x (1+R) x (1+R) = E
결국 A에다가 (1+R)을 4번 곱한 게 E라고 하니, 거듭제곱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R을 구하는 중이니까, 좌변에 R만 남도록 모두 우변으로 이항 시킵니다.
이렇게 CAGR(연평균 성장률, 위에서는 R을 의미)을 구하는 산식을 도출했네요.
그런데, 여기서 A와 E 그리고, 4 제곱은 제가 임의로 붙인 문자입니다. 아까 [그림5]를 잘 보시면, 결국 A란 주어진 데이터 중의 첫 값을 의미하고, E란 마지막 값을 의미합니다. 손흥민의 기록으로 보면 A는 첫 시즌의 공격포인트 3이요, E는 마지막 시즌 공격포인트 32이지요. 그리고 4 제곱이란, 전체 데이터 개수가 아닌 그 간격의 수입니다. 손흥민의 예로 보면, 총 12개 시즌의 데이터가 있는데 그 간격 수인 11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전체 데이터 수에서 1개를 뺀 숫자가 지수(거듭제곱)의 '간격 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반적인 산식으로 다시 표현하면 이러합니다.
유의사항
간격 수는 전체 데이터 수 - 1이라고 했습니다. 5개년 데이터라면 4, 7개년 데이터라면 6을 말합니다. 그냥 전체 데이터 수를 넣으면 값이 달라지니까 이 점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엑셀에 수식을 넣을 때, 지수(거듭제곱)는 윗 꺽쇠(^)로 표현합니다. 즉 3의 2승은 엑셀에서는 3^2 이렇게 씁니다.
다시 손흥민 기록으로 돌아와서 한번 CAGR을 구해봅시다.
엑셀을 여시고, 위의 엑셀 수식을 쓰면 됩니다. 끝 연도 공격포인트가 32개, 첫 연도가 3개, 간격 수는 11이었죠. 엑셀에 아래 수식을 그대로 긁어 붙인 후 엔터를 쳐 보세요.
=(32/3)^(1/11)-1
그러면
0.2401이 나옵니다. 이는 소수이므로 %로 바꾸면 24.01%인 것이죠.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검증도 해볼까요?
검증할 때는, 앞 연도의 수에다가 그냥 24.01%를 곱하는 게 아니라 (1+24.01%)를 곱하는 겁니다. 앞 연도의 수에 그냥 24.01%를 곱하면 뒷 연도 수가 안 나옵니다. 그냥 24.01%만 곱하면 그건 딱 증가량만 구하는 것이니까요. 앞의 수 그대로(100%)에다가 그 증가한 부분(24.01%분)을 더한 수가 다음 연도의 수이므로, 앞 연도 수에 (1+R)을 곱해야 뒷 연도 수가 나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해요.
네, 첫 년도 공격포인트 3개에서 24.01%만큼 증가한 3.7개에 다시 24.01% 증가를 적용하면 4.6개가 나오고, 이를 11번(총 12개 시즌의 간격이니까 11개) 반복하면 마지막 값은 32.0이 나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도대체 첫 공격포인트에다가 어떤 증가율을 동일하게 반복 곱해야만 마지막 공격포인트가 나올까?... 의 해답은 24.01%였습니다. 이것이 연평균 성장률, CAGR의 개념입니다.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하다 보면 비슷한 고민을 할 때가 생깁니다. 회사 주력 제품 출시 후 10년간 매출량이 매우 크게 증가했는데, 이 성장세를 하나의 수치로 딱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써먹는 것이 바로 CAGR입니다. 위에서 다룬 엑셀 수식을 통해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단,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CAGR을 쓰고 싶을 땐, 우선 데이터들을 간단하게라도 차트로 만들어서, 꾸준한 성장이 있었는지 시각적으로 한번 확인한 후에 사용 여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CAGR은 매년 꾸준히 성장세가 보일 때 써야지, 매년 널뛰기가 너무 심할 때는 연평균 성장률이 몇 % 다 보여주는 것이 자칫 데이터를 곡해하여 피보고자에게 허위 보고를 한 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격포인트로 제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손흥민과 똑같은 포지션(윙어)에서 플레이하는 세계적인 공격수 중에 사디오 마네(Sadio Mané)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손흥민이 낫냐 마네가 낫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제가 위에서 손흥민의 공격포인트 CAGR을 구했듯, 마네 선수의 공격포인트 CAGR도 구해봤습니다.
흥민's 공격포인트 CAGR : 24.01%
마네's 공격포인트 CAGR : 29.24%
CAGR만 놓고 보면, 마네가 더 낫습니다.
와, 마네가 손흥민보다 더 높은 성장세를 보여주는구나...라고 오해하기 딱 좋죠. 하지만 공격포인트 증가 추이를 차트로 그려서 시각적으로 비교해보면 읭? 스럽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네의 CAGR 계산은 맞습니다. 29.24%라는 수치는 맞는데, 막상 차트로 그려보니 성장하는 추세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첫 시즌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에 폭발적이었지, 그 후로는 하향하거나 정체된 추세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왜 연평균 성장률은 높게 나오는 걸까요?
왜 그러냐면, 산식을 통해 보셨듯이 CAGR의 계산에는 첫 데이터와 끝 데이터만 쓰입니다. 그 두 데이터 간의 간극이 클 경우 CAGR은 높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첫, 끝 데이터 외에 그 중간의 데이터들이 어떤 추이를 보이는지 반드시 시각적으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마네의 경우, 공격포인트가 거의 없었던 첫 시즌을 제외하고 두 번째 시즌부터 CAGR을 다시 산정하면 -1.2%가 나옵니다.
이렇게 CAGR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글 첫 부분에서 손흥민 아버님의 인터뷰를 제 나름대로 해석했었습니다.
[해석] 흥민이는 아직 최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다.
손흥민과 마네의 차트를 비교해 보니 저는 저렇게 해석이 되더라구요. 손흥민은 아직 성장이 꺾이거나 정체되지 않았고 여전히 상향 추세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추가적인 10%의 성장을 왜 원하시는지도 알겠습니다. 제가 위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사실 모하메드 살라(Salah)의 기록으로도 계산을 해봤는데요... 정말 살라는 대단한 선수 같습니다.
살라 역시 공격포인트로 차트를 그려보면 손흥민처럼 우상향을 그립니다. 계속 성장 중이에요. CAGR은 37.6%인데, 첫 시즌에 경기수가 너무 적다 보니 공격포인트가 1개뿐이라 CAGR이 좀 높게 나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시즌부터 CAGR을 다시 계산하면 18.7%가 나옵니다. 손흥민의 24.01%가 더 높긴 하지만, 살라는 데뷔 초반부터 공격포인트가 많아서 성장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뿐입니다.
그리고 공격포인트를 좀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살라가 살짝 더 수준이 높습니다. 정말 퍼포먼스를 따지려면 그냥 공격포인트가 아니라 “경기당 공격포인트”를 봐야 합니다. 더 나아가 경기당보다 90분당 공격포인트가 더 설명력 있는 지표이지만 나무위키에서는 출전시간 대비 기록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경기당 공격포인트]에서 손흥민과 살라는 차이가 납니다. 최근 3년만 평균을 내보면, 경기당 공격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흥민's 경기당 공격포인트 : 0.737개
살라's 경기당 공격포인트 : 0.862개
선발이든 교체 출전이든 살라는 일단 경기에 나서면 그 경기에서 0.86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대할 수 있는 겁니다. 손흥민은 그에 살짝 못 미치는 0.74개를 기대할 수 있죠. 둘 다 어마어마한 퍼포먼스이지만 그 살짝쿵의 차이, 그게 바로 손흥민의 아버님이 생각하는 10%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CAGR 개념을 설명하는 글이었는데, 축구 정보만 잔뜩 담았네요. 더 궁금한 점은 댓글 등 남겨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youtube.com/shorts/YY15CVPmFdA?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