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어요. 차리지 마요.

by 해야리

최근 상태가 다시 안좋아졌다.

잠잠했던 바다에 다시 태풍이 불었다.

주변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이상했다. 손이 떨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다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삼킬 것 같았다.

온몸이 마비되면서 부르르 떨며 잠에서 깼다. 식은땀이 났다.

다시 하루종일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여름이라서 그래. 응. 응. 더워서. 별일 없을거야. 실제로 아무 일도 없어. 괜찮아."

그 다음주에 병원에 갔다.


"생리 전후면 그럴 수 있어요."

"생리 기간이 맞긴 한데, 반년동안 이렇게까지 심한 적은 없었어요. 힘든 일이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까요 선생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기분을 약이 잡아주고 있었잖아요, 딱 중간으로. 약을 먹어도 가끔 다시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해요. 그러다가 오히려 더 좋아지기도 하구요. 약을 바꿔드릴게요."




집밥을 먹지 않은지 1년이 넘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부모님은 대가 없는 호의라는 게 없었다. 너가 상을 받았으니까 용돈을 준다, 너가 1등을 했으니까 선물을 사준다, 너가 성적을 잘 받았으니까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 나에게 부모의 사랑이란 거래관계같은 거였다. 내가 무언가를 잘해야만 받을 수 있는, 대가 같은 것.


아빠에게 나는 본인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트로피였다. 1등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2등을 하고 오면 혼이 났다. 실망한 티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나는 1등을 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야 했고, 1등을 하는 날에도 기쁘기보다는 '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내 자존감이 낮았던 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는 아무렇게나 나를 낳아놓고 단 한번도 나를 감정적으로 돌봐준 적이 없었다. 엄마의 관심은 오로지 아들이었다. 아들, 아들, 아들... 동생이 나에게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해도, 나를 혼냈다. 억울함을 토로하면 억울함을 토로한다고 나를 혼냈다. 하루는 동생이 내 노트북 컴퓨터를 바닥에 집어던져서 컴퓨터가 두동강이 났다. 대학교 3년치 레포트와 공모전 자료들이 들어있었는데, 모든게 눈앞에서 사라졌다.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엉엉 운다고 또 혼이 났다. 울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밤 12시에 운동장을 혼자 걸으며 꺼이꺼이 울었는데, 늦은 시간에 나돌아다닌다고 또 혼이 났다. 태어날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래도 나는 배다른 자식이 아닐까 수십번 생각했다.


"밥 먹었어요. 차리지 마요."

엄마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부엌으로 걸어가 가스불을 켠다. 타다다다다다다... 전자레인지를 돌리고 국을 펐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엄마는 밥을 하기 위해 태어난 AI 로봇 같다. 자식이 집에 온다, 현관문을 연다, 가스불을 켠다, 전자레인지를 돌린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낸다, 방으로 들어간다, 밥을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설거지를 한다와 같은 알고리즘이 장착된 AI 로봇. 정확히 이 순서를 매일 반복한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는 관심대상이 아니다.

"쟤는 밥을 차려놨는데 또 안먹어. 당신이 좀 뭐라고 얘기해봐요!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내 방문 안으로 나를 비난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는 묵묵부답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엄마밥이 싫어졌다. 나를 사랑해서 차리는 밥이 아니라,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본인의 의무감과 본인이 만들어낸 숙제와도 같은 밥이었다. 내가 밥을 먹고 왔는지, 누구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묻지도 않고 밥을 차려댔다. 엄마가 차린 밥은 제사상처럼 매일 식탁에서 그대로 차갑게 식었다. 내가 오후 2시에 집에 오든, 오후 4시에 집에 오든, 저녁 9시에 집에 오든, 엄마는 매일 밥을 차렸다. 그리고 밥을 먹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아빠에게 뒷담화를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숨이 막혔다. 너무너무 숨이 막혔다. 본인의 틀에 나를 가두는 것 같았다. 내가 차렸으면 너는 반드시 먹어야 해. 니가 밥을 먹고 들어왔든 말든 중요하지 않아.





어느날 내가 안동 여행을 갔다가 냉동 간고등어를 사온 적이 있었다.

"밥 먹고 왔어요."

밤 9시 정도였는데, 엄마는 내 말을 듣지도 않더니 또 간고등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꽁꽁 언 간고등어를 자르다가 엄마는 손을 다치고 말았다. 시뻘건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밥 먹었다고 했잖아!"

나는 걱정되고 놀라고 당황스럽고, 거기다 하루종일 운전했던 피곤함까지 겹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책을 했다. 내가 고등어를 괜히 사와서... 다 내 잘못이야. 엄마는 밥을 먹었다는데 왜 짜증나게 고등어를 손질해서. 매일 내 얘긴 듣지도 않고.

아빠는 비상약들을 꺼내와 엄마 손에 붕대를 감았다. 나는 분노와 자책감 때문에 속이 상해서 방으로 숨었다.

엄마는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정말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울었다. 부엌에서 아이처럼 나뒹굴며 새벽 3시까지 내리 울었다. "너만 엄마 있어? 나도 우리 엄마가 보고 싶어."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나에겐 그 울음소리가 공포였다. 그날은 나에게 또다른 트라우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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