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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영작가 Apr 17. 2024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번아웃이 왔다.

진짜 번아웃을 맞은 게 하필 중요한 시기

번아웃은 생각보다 한순간에 찾아왔다. 22살부터 약 8년, 지금껏 디자인만을 다루며 단 한 번도 크게 위기라 느낀 심적 변동은 없었다 생각하였는데 얼마 전 천직이라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번아웃을 마주하였다.


강한 긍정이 부정을 불러왔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봄이었다. 노력해서 성취하고자 했던 부분들은 늘 좋은 성과를 내어주었고, 곡선은 우상향으로 서서히 드러 서고 있던 찰나, 너무 강하게 긍정을 바라왔을까 잠깐의 연속된 실수와 실패에 흐름의 선두권을 내어주었던 것 같다. 당연히 될 거라 생각했던 공급사업 채택이 고작 매출 2천만 원 정도 증빙부족으로 5월로 선정이 밀려나고, 더불어 직원채용에 지원받고자 해서 지원한 사업도 너무 자만해서 성의 없게 신청서를 내서였을까 탈락하며 연속적으로 안타까운 상황을 마주했다.


200번 넘게 받아본 불합격 통지. 왜 경쟁실패는 왜 익숙하지 않을까?


대학새내기시절 콘테스트 참가자에서 현재 심사위원직까지 올라오는 데는 200번 이상의 탈락통지를 경험했었다. 뿐만일까 심사위원들 앞에서 pt 하다 실력에 굴복한 적도, 계약불발로 차에서 한없이 서러워한적등 여러 부정적인 상황은 늘 겪어왔지만 이러한 상황과 친구가 되긴 어려웠나 보다. 경쟁사보다 경쟁력을 갖추는 것 하나 바라보고 일만 하는 나에게 경쟁력이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늘 치명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도 배워나가야 할게 많기에 마주해야 할 현실 중 하나이지만 친구가 되긴 어렵더라도 조금은 익숙해지지 않을까 기도는 아직은 소용이 없다.


계획에 차질이 균열을 일으켰다.


계획의 모든 프로세스가 전부 성공적으로 흘러간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렇기에 만약의 상황에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엔 만약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너무 자만해서였을까, 흐름 깨진 프로세스를 다시 부여잡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일상에 있어서 그나마 흥미라고는 뭔가 배우는 것에서 느끼는 편이었는데 책상에 앉기 싫고 잠만 오는  막막한 상황 속에 결국 나를 놓아버렸다. 주말에 약속을 거의 안 잡는 편이지만 그나마 하나 있던 약속마저도 취소하고 홀로 잠만 자며 토요일, 일요일을 보냈다. 잠을 자고 나면 뭐라도 괜찮아질 줄 알았다. 웬걸 잠을 오래 잘수록 스트레스만 급격하게 늘어날 뿐, 오히려 원래대로라면 업무고민을 하고 있을 시간에 누워있으니 몰아치는 걱정과 불안으로 얼마나 두통이 심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2주를 필수업무미팅을 배제하고는 홀로 지냈다.


그래도 다행이라 느낀 것은, 어릴 적엔 단지 연인과 헤어졌다는 이유로도 멘탈이 나가 몇 주 아무 일도 못하곤 했었는데, 번아웃상태여도 업무시간엔 정상적으로 일을 쳐내는 내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악의 상황에서도 살아지긴 하는구나를 배운 것 같아 조금의 뿌듯함을 느꼈다.


무기력함은 능력을 쇠퇴시킨다.


흥미를 잃은 직업은 더 이상 가치를 빛낼 이유를 상실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난 2주간 밸런스를 잃었었다. 원인을 찾는데만 너무 급급했다. 지난 2주간 소화했던 대내외적인 업무미팅부터, PM보고, 강의등 모든 주어진 환경에서 평상시의 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발걸음도 무겁고 자주 머리가 백지화되는 것을 느끼며, 내가 벌려놓은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만 하였다. 더하여 대인기피증까지 찾아와 사람과 말하는데 식은땀이 많이 나는 증상도 느꼈다. 미팅 때 말실수가 잦아지는 것을 보고 스케줄표를 급하게 수정했고, 원래 정상적으로 소화했어야 할 많은 업무미팅들이 미루어져 전반적인 스케줄이 꼬여나가기 시작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호흡의 템포를 한번 잃는 것이 전반적 흐름에 제일 큰 타격을 주는 것처럼, 잠깐 숨을 쉬는 법을 까먹었었나 보다. 아니면 내가 추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 버거워서 그랬나 보다 생각하고 다독여나갔다. 숨을 쉬는 법은 다시 찾아가고 있는데 멀리 뛰는 법은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책임에 댓가를 어깨 위로 올려낼 시기.


일은 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뼈 없는 사람처럼 살다가도 결국 업무자리에서 다시 극복하고 기운을 내어가는 것을 보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긍정의 표를 던졌다. 가죽만 남아 돌아다니는 것 같았던 나에게도 여러 지속적인 긍정상황들은 결국 다시 일을 붙잡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과정에 감사하게도 배우 한지민 씨의 최근 인터뷰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인생에 주인공이 되고 싶고, 또 편하고 싶은 건 욕심이다, 그렇기에 일의 무게만큼 감당해야 할 것들이 책임으로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과 부담감, 책임감이 엄청 크지만 때론 그게 원동력이 된다." 

-한지민 님의 퇴근길 인터뷰 중


나는 단한순간도 내 인생에 주인공이 남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렇기에 노력하는 분야에서는 경쟁선상에 있는 대상들을 이겨내려고 매번 노력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저 다 잘하고 싶었다. 남들보다 잘난 아들이고 싶었고 다 듬직하고 잘 해내는 업무 파트너이자 믿을만한 거래처가 되는 게 목표였다. 그 정도 마음가짐에 책임을 너무 작게 지었나 보다. 당연한 것에 너무 작은 희생을 바랐다면 이제는 정당하게 대응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더불어 늘 응원해 주고 걱정해 주는 가족들과 지인들을 소중한 배려들이 결국 원동력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번아웃을 극복하는 것도 결국 용기가 필요로 하다.


아주 작은, 사소한 것부터


책상을 단정하게, 나한테 하지 못했던 사소한 투자들을 가볍게 하였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몸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할 거 같아서 말이다. 요즘 나는 밖에서 식물을 보는 게 제일 행복해 보이는 것 같아서 사무실에 식물도 한두 가지 두려고 화분판매하는 곳을 기웃거린다. 그간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온 나한테 땅도 보고사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남들이 만족해할 내 모습보다는 내가 만족할 내 모습을 찾아가는데 삶의 중요한 의미를 두는 것으로 터닝포인트를 마련해보려 한다.


나를 챙기지 못해서 생긴 불찰에 주변 여러 대표님들께서 진심 어린 통화와 조언들로 그래도 살아서 달리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셨다. 사업자 치고 어린 나이랍시고 철부지 없이 포기하는 모습은 늘 보이기 싫다. 또 내가 기대하는 나보다 이하의 모습이 비추어지는것도 소름 끼치게 싫은 편이다.


배움을 단지 글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지난 2주간의 경험을 통해 고독과 부정에 더욱 단련되어야 할 필요를 알았고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이러한 유사상황에 틈틈이 단단해져야겠다.


나의 번아웃은 실책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들다고 하는 것만큼 이기적인 사람이 어디 있을까. 흐름을 못 잡고 무너지는 플레이를 선보인 나의 단순한 실책을 2주라는 고된 정신적 훈육기간으로 받아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쉴틈없이 준비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늘 필요하다.


실책성 플레이는 지울 수 없지만 대부분 잘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책임과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을 보았기에 흐름에 따르고자 한다. 그렇게 더 성장하는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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