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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과해원 Mar 21. 2016

3.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여행

- 인생의 동반자란 뭘까?

아두미야. 안녕?     


나는 오랫동안 널 두미야, 둠둠, 알둠, 아두미야라고 기분에 따라서 불렀었지.

그러니까 아마 중학교 1학년 같은 반에서 만났을 때부터였으니까 우리 만난 지 10년이 훌쩍 지났네. 엊그저께에는 10여 년 전을 건너서 그때 그 기분으로 네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어. 그 이야기는 차차 풀어볼게.      

우리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는데 얼굴은 1년에 한두 번 볼까하고 지냈지 요즘. 그래도 힘든 일 생기면 이야기하고, 기쁜 일 생기면 이야기하고 그러고 싶은 친구. 뜬금없이 만나기도 하고 만나지 않아도 괜찮은 친구. 혼자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기차에서 뜬금없이 너에게 연락을 했지.     


"오늘 저녁에 일 늦게 끝나니? 집에 가는 길인데 그곳에 들려서 네 얼굴이나 볼까하고. 지금 기차 안이야."     


"역에 몇 시에 내리는데?"     


"1시간 후쯤 도착해."     


너는 일을 서둘러 마치고 역으로 마중을 왔어. 알고 있었니? 내가 얼마나 설레고 있었는지. 괜히 네가 변했을까 안 변했을까 혼자 머리 속으로 네 얼굴을 떠올려보면서. 혼자 설레여하느라 뜬금없이 내 연락을 받은 네가 나한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내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랐어.     


"뭐냐. 짐이 아주 한 짐이냐. 또 어디 갔다 왔냐."     


"내가 여기 몇 년 만에 왔는지 아냐. 야. 근데 먼저 들릴 데가 있어."     


툭툭거리는 물음 뒤에 당연한듯 따라오는 툴툴거리는 대답. 우리 사이에 엄마랑 딸이 나누는 대화나 자매가 나누는 대화 같이 자세한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넌 왜 그렇게 이유를 안 말하냐."     


"응? 내가 뭐?"     


아차, 싶었던 나는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너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어.       


"여기 기차역 역사를 재건축한 게 한 오년 전쯤이었나? 옛날에 여기 살던 때에 기차타고 오면서 엄마 손 잡고 어디 다녀오던 게 생각나더라. 지금은 기차역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나도 그때랑 달라져서 엄마 손 안 잡고 다녀도 되고, 괜히 어른된 것 같이 기분이 이상한 거야. 그러다 역 앞에 있는 안경점에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안경점 아저씨가 뵙고 싶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괜히 다른 안경점보다 그곳에 가고 싶은 게 꼭 오늘 내가 어른이 된 걸 확인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이런 마음이 든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옷을 사러 가서 아가씨들이 입는 옷을 입어보면 이상한 점이 없고 잘 어울리는 느낌이더라. 예전에는 내가 아가씨도 아닌데 아가씨 옷 입는 것 같이 불편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그렇게 보면 내가 지금 한창 예쁜 때인 것도 같아서. 나만큼 예쁠(?) 네 얼굴도 무지무지 보고 싶더라. 내 눈엔 네가 교복 입고 있던 옛날 모습도 눈에 선하고, 기차역 바뀌기 전 모습도 눈에 선하고, 안경점도 눈에 선한데, 눈에서만 그리던 모습을 오늘 확인하고 싶기도 했어."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예전 기차역 사진이 검색되지는 않더라. 내 머릿속에서만 재생 가능한 영상이 되어 버렸나봐.)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너와 안경점에 들려서 안경을 쓰는데 네가 나를 보자마자 그러더라.     


"중1 때로 돌아간 것 같아."      


다행히 안경점 아저씨도 뵙고 네 차를 타고 기차역 주변을 지나 우리 살던 동네로 갔지. 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는 계속 기분이 이상하다고 얘기했어. 정말 기분이 이상했지. 온 시간이 내 한 몸에 어우러져 있는 듯한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거든. 중 1때 우리와 지금의 우리.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지나게 될 우리.      


그때. 그때 내 기억 속의 너는 말이야. 2mm 정도 될까, 샤프심이 네 눈에 들어가서 너는 울고, 몇몇 친구들이 너를 둘러싸고 연신 입으로 바람을 불어대고, 너와 우리가 모두가 어찌할 바 모르던 순간. 너는 샤프심이 움직일까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지도 못하고, 우린 그런 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어쩌지를 연발하던 순간. 그 장면 속에 아직도 그대로인데.     


우리 살면서 그런 순간을 참 많이도 같이 겪어왔지 싶기도 하더라. 그런 순간들을 너와 함께 하나 하나 풀어보았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 겹 한 겹 눈물이 차올랐던 거야.


영화 <You and me and everyone we know>의 한 장면



우리 서울에서 자취할 때 버스비가 없어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 다녔던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일한 곳에서 돈을 다 받지 못했던 어이없던 일을 이야기하고, 엄마 속 썩이고 철없이 지내도 좋았던 때,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을 이야기하고, 최근에서야 알게 된 엄마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이제야 엄마 걱정을 나누고, 어엿하게 사회에서 내 몫을 다하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지.    

  

또 서로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주며 요즘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어.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의 장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지. 그 이야기가 전과 조금 달라졌다면 예전에 막연한 대상으로, 연애 대상으로만 여기던 연인이라는 타인을 이제 조금은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야. 그의 단점도, 그가 어려워하는 부분까지도 이해하고 싶어하는 노력.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또 울컥. 우리 10여 년 전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나서 설레고 떨리고 마음 졸이던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순간들을 이미 지나와 버렸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을 거야.      


우리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거니. 그래도 앞으로의 걱정거리들도 함께 나누어 갈 거니까. 오늘의 울컥.은 쓸쓸하지 않아서 좋다. 인생의 동반자라는 거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가 얘기 나눈 그런 거겠지? 서로의 단점이나, 어려움, 낯선 모습까지도 이해하고 싶어 노력하는 사이. ‘나’라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지금. 그 사람이 ‘너’라서 참 좋다. 고마워.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때에도 나의 동반자가 되어주길.

꼭 지금처럼 'Me'와 'You'가 되어 한 발자국 씩 함께 걸어가길.   


때로는 엄마 같이, 때로는 언니나 동생 같이 서로 챙겨주며 함께 하자.

어느 날 파전집에서 파전을 손수 뜯어주던 너의 왕손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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