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 기다리는 아이가 있었어요.

우울증이 재발했습니다.

by 최예지
눈나 울 때 부터


우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항상 문을 닫았죠.

이불 안에 파고들어 숨죽이며 흐느꼈어요.

뭐가 그렇게 슬펐는지 모를 일이었지요.

문 앞에는 항상 우리 집 강아지가 있었어요.

매일 그렇게 강아지가 문 앞에 있었어요.


들키고 싶지 않아서 문을 닫았어요.

그런데 되려, 제가 지금 울고 있다는 신호가 되어버렸지 뭐에요?

그래서 다들 말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함께 울었던 거 같아요.

저는 저랑 같이 우는지도 모르고, 혼자라는 생각에

그런 생각에 그다지도 울었나 봐요.




찾아보니까, 저는 2020년 3월에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었어요.

코로나의 여파였죠, 뭐. 다들 코로나 블루, 그럴 때였으니까요.

그동안 취업을 했고요, 또 그만 뒀어요. 그러면서 단약을 시작했고요!


그렇게 3개월이 지나서

저는 약 7개월 간의 새 직장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계약직이었기에 이 생활이 끝나갈 즈음에 환송회와 함께 제 세상은,

저도 몰랐는데. 참 많이 무너지고 있었어요.


제가 무너졌다고 느낀 건 '제 상태'를 돌이켜보니깐요.

일을 하다가 눈물이 뜬금없이 흘렀고요,

졸음껌 없이는 깨어있질 못했어요.

일 때문에 걷다가 과호흡이 와 주저앉은 적도 여럿 있었고요.

말 다했죠, 참.


그때 정신건강센터에 전화를 했어요.

제가 처음 우울증 치료를 받던 시기에 도움을 받았던 곳이에요.

그곳에선 연락을 잘 하셨다며 절 진정시켜 주시고 약속도 잡았어요.


새 직장에서의 마지막 회식날, 그러니까

계약직인 저의 환송회를 하는 날에 제 증상은 더욱 심해졌어요.

저는 누군가의 단순한 '호기심'이 저를 '시험'하는 것처럼 느꼈고,

또 '호의'는 사악한 의도를 숨긴 거대한 '작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를 개조해버릴 그런 작전 같은 거 말이에요.


그날 저는 도저히 운전할 상태가 못 되었고

다행히 가족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 왔어요.


다음날에도 상태는 멀쩡하지 못했어요.

저를 '시험'하는 그 신적인 존재를 찾아야 한다며 밖으로 나갔고요,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상하게도 같이 사는 강아지들이

'너는 나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갔죠.


신적인 존재에게 가야 한다며 차를 끌고 나갔어요,

대체 어떤 정신으로 가능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아찔해요.

제가 그렇게 해서 겨우 간 곳은 환송회 날 회식 했던 식당이었어요.

그곳이 제겐 '신당'처럼 느껴졌고 손님들은 '신'처럼 보였어요.

식당을 추레한 차림으로 서성이다가 문득 삶의 기로가 이곳에서 정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의 기로는 5가지로 제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어요.

하나는 산으로 돌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길거리를 아무것도 없이 떠도는 것,

나머지는 입에 담기도 참. 그렇네요.


그중에 마지막 기로를 선택했어요.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풀에 걸려서 저는 살아남았어요.

자연이 절 살렸더라고요.


안전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저는 진정할 수 없었어요.

제게 일어난, 제 머릿속에 들리는 모든 것들이 다 거짓처럼 느껴졌어요.

그때 엄마가 호흡법 영상을 틀어 저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셨어요.

순간 엄마의 눈동자를 바라봤는데, 아주 새까맣게 보였어요.

그제서야 '내가 제정신이 아니야.'를 알았어요, 그전까진 다 그냥 거짓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깐요.

저를 위해 애쓰시는 엄마가 눈에 들어오면서 제 마음은 차차 진정되었어요.

그러곤 천천히 누웠죠.




아아, 잠은 오질 않았어요.

천장에 달린 십자 모양의 전등을 보며 또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지금 떠올려보면, 망상이었죠.

여러 악랄한 환청에 시달리면서요.

저는 그렇게 어느 때보다도 짙고 어두운 밤을,

그다지도 헤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