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길을 지나가다가 토끼를 봤다. 정말 뜬금없이, 주차장 한쪽 켠에 호흡하고 있는 토끼를.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도 나의 짝꿍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누구든 모르고 지나쳐도 이상하지 않을 까만 밤이 내려앉은 하늘이었다. 왜 아무도 토끼가 있는 걸 몰랐을까? 이미 그 물음은 모순이었다. 어두우니까, 그렇지. 그러나 이렇게 단순히 끝날 얘기였다면 나는 지금 시간은 돈, 돈은 생명. 나의 생명을 내놓고 글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 아무도 치료가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치료를 받아왔고, 우울증 완치를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이 왔다는 느낌이 왔는데, 다른 분이 일러주셨던 그 기분이 다가왔는데. 나는 준비가 되어있는 게 없었다. 한국사, 기사 자격증 그게 내가 가진 사회에서 정해준 결과물의 전부였다. 책을 내는 건 결과물로 봐줄까. 그래, 나는 우울증이 완치되고 나서의 삶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일을 하기 위해 치료를 받는다는 생각의 전환은 성공했으나 그 뒤의 삶은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계속 살아가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나와 사랑하고 나에게 사랑하고 있는 모든 ‘나’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다. 미련이란 게 생겨버렸다, 아뿔싸. 그럼 난 이제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을까. 그 고민이 어젯밤부터 길게 늘어져 오늘까지 날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 따라 잡혀서 이미 한 번 넘어진 과거가 다시 재생되고 있는지도. 나의 인생은 반복적이고 변화가 컸으니까 (누군들 안 그러려 마는.) 일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재밌는 일. 난 글 쓰는 게 재밌다. 글은 현실적으로 돈이 안 된다. 글만으로는 안 된다. 다른 것과 연결, 결합해야 한다. 그걸, 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이제 모르겠다. 2026년 도중에 치료가 끝나는 일이 생기면 그것만큼 행복하고 두려운 일은 없을 거라고 오늘의 나는 쓰고 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싶고 그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그랬으니깐, 아무도 토끼가 있는 걸 몰랐지.
토끼는 어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