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교육부 업무보고를 들을때 교원업무경감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게 웬일이지 싶을 정도의 소식이다. 하지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니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를 제외하면 교원업무 경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교사 패싱이란 말이 일상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교사를 홀대하는 정부, 교사를 학생, 학부모, 학교 비정규직, 공무직 앞에서 갑질하는 적폐로 몰아대는 운동권에 시달리고 억눌렸던 마음에 상대적으로 신선했을 뿐이다. 사실 교사를 홀대하고 적폐로 몰던 문재인 정부때나 교원업무 경감에 관심을 보였던 다른 정부 때나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교사의 업무는 해가 갈수록, 정권이 바뀔수록 계속 늘어만 갔고 이제는 거의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교원업무경감’이 늘 구호에 그치고 교사 업무가 해가 갈수록 늘어난 까닭은 그 근본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근본은 “교육이 바로 교사의 업무”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교사의 일은 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결과를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그 동안의 실천의 반성, 연구, 학습을 통한 역량의 함양이다. 도대체 그것 말고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것이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이다.
아무 교사나 붙들고 “선생님의 담당 업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자.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이들 가르치고 때로 상담하는 일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확률은 0%에 수렴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사의 업무란 교육이 아니라 그 밖에 추가된 온갖 잡다구리한 각종 학교일(교무)을 말하기 때문이다. 수업시간표(자기 시간표 말고 전교 시간표) 짜는 일, 방과후 학교 수강권 발급하고 등록하는 일, 온갖 종류의 외부 강사 모집 공고하고 채용하는 일, 학습 준비물 구입하는 일, 컴퓨터 등 기자재 구입하고 관리하는 일, 그 밖에 온갖가지 일들이 ‘업무’라는 이름으로 교사에게 할당된다. “나는 교사이니 교육에 전념하겠다”는 말이 마치 나는 “꿀 빨고 신선놀음 하겠다.” 라는 말로 들리는 비틀린 공간이 바로 우리나라 학교다.
이렇게 “교사의 업무는 교육”이라는 원칙 아니 상식마저 지켜지지 않는 상태에서 교사에게 할당된 교육 이외의 각종 학교 업무들을 늘리고 줄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특히 학교가 교육 이외의 기능을 점점 많이 떠 앉고 있는 최근의 사회 흐름상 교육 이외의 학교 업무가 줄어들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학교가 교육 이외의 기능을 요구받는다면 당연히 교사 이외에 다른 담당직원을 채용해서 배치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최근들어 학교에는 과거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교원 아닌 직원(행정직원, 공무직)의 숫자가 많다.
이렇게 직원의 수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사에게 할당되는 교육 이외의 ‘업무’라는 해괴한 일들이 줄어들지 않는 까닭은 교사가 교육 이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을 전혀 문제삼지 않는 악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악습의 폐지는 금연과 같이 단숨에 근절해야 하는 것이지 줄이고 조정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악습은 그 여지를 조금이라도 남겨 두면 결국 그 작은 것이 씨가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원상태로 돌아간다.
가령 학교에 A라는 업무가 생겨 직원을 추가로 채용했다고 하자. 그런데 학교에 B라는 업무가 새로 생겼고 직원을 추가로 채용할 여력이 없을 경우 기존 직원에게 B라는 업무를 할당하면 이들은 똘똘뭉쳐“우리의 업무는 A다. 부당노동행위 하지 말라.”고 버틸 것이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에서 교사의 업무는 “교육”이라고 못박혀 있는 반면 직원의 업무는 “행정사무 및 기타사무”라고 되어 있다. 즉 학교에서 업무를 분명하게 규정한 구성원은 교사지 직원이 아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된 우리나라 학교는 직원이 채용 당시 자신의 업무분장을 기준으로 업무에 선을 그어버리고 도리어 교사가 새로 추가되는 업무 혹은 경계가 모호한 업무들을 담당하는 왜곡된 업무구조가 자리 잡아 버렸다. 더구나 노동3권과 정치참여가 보장되는 직원들의 교섭력이 노동권이 제한되고 정치참여가 금지된 교사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선출직인 교육감이 교사가 아니라 직원의 눈치를 보면서 직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엉뚱하게 교사의 교육 이외의 업무가 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기까지 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그 피해자는 교사가 아니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학생들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서울시 교육청의 가방속 디지털 벗 일명 ‘디벗’이라는 사업이 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 모두에게 아이패드, 갤럭시 탭, 크롬북 등을 지급하여 디지털 기술과 교육을 결합한 이른바 에듀테크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사업이다. 그런데 현재 상태로는 교육청이 기대한 효과를 거둘 가망이 거의 없다. 상당히 많은 교사들이 지급받은 디지털 단말기를 활용하는 수업을 개발 하기는 커녕 기기를 제대로 써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기껏 교육청에서 큰 돈을 들여 기기를 공급 했는데 왜들 이러는 것일까? 교사들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고 시대를 따라잡으려는 성의가 없어서일까? 물론 그래서가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다. 왜? 업무 때문에.
처음 사용하는 기기를 설정하고 기본적인 앱을 설치하고 익숙해 질 정도로 다루어 보려면 시간, 그것도 어느 정도 여유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학교는 교사들에게는 그 정도의 시간도 내어주지 않는다. 교사들은 온갖 보고 양식 작성하느라, 코로나 때문에 늘어난 수많은 학생 인정결석 서류 정리 하느라, 그리고 이런 저런 ‘업무’ 하느라 책상에 머리 처박고 잠깐 고개 들 틈도 없다. 겨우 짬이 생겨 뭐 좀 해 보려 하면 새 공문이 날아오고, 방과후에 무슨무슨 위원회니 협의회가 있다고 전화 오고, 점심시간에 급식지도 해야 한다는 메신저가 날아온다. 이렇게 정신 없이 지내다 보면 중간고사 출제 기간이 다가오고, 그래서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고사출제 규정 지켜가며 끙끙대고 나면 벌써 1학기 절반이 지나는데, 이쯤 되면 새로 무엇을 할 여력은 거의 없고 그저 방학때 까지 버티는 게 목표가 된다.
더구나 디지털 단말기의 도입 자체가 또 다른 업무를 만들어 낸다. 단말기를 선정하고 주문하고 수령하고 교사 및 학생에게 분배하고 단말기들 관리하는 MDM 서버를 선정하고 관리 프로그램 운영하고, 필요한 응용프로그램 구입하고 설치하는 일들, 누가 봐도 교육이 아니라 행정이나 관리에 해당되는 업무조차 교사들 중 누군가의 ‘업무’로 할당된다. 대체로 IT활용 능력이 뛰어난 교사들에게 이 업무가 던져진다. 그래서 교육청이 야심차게 선발하여 운영하고 있는 ‘에듀테크 선도 교사단’ 교사들은 각자 자기 소속 학교에 가면 에듀는 빼고 사실상 테크 직원이 되어 일하고 있다. 행정직원이나 공무직이 “이 일은 우리 일이 아니다.”라고 하거나 “너무 어려워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며 뻗대 버리기 때문에 결국 교사 중 스마트한 누군가의 ‘업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교사들은 기기를 익힐 시간이 없고, 디지털에 능한 교사들은 기기 관리, 유지, 보수 등의 ‘업무’ 하느라 지쳐버려 에듀테크 선도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학생들에게 단말기만 잔뜩 나누어 주고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별로 일어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질 판이다. 물론 이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학생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지만 웃음이 터지고야 마는 블랙 코메디 같은 상황도 있었다. 지난 해, 코로나 19가 마무리된다고 판단한 교육당국이 그 동안 수고한 교사들을 위로 한다며 “교사 마음 방역”이라는 이름의 사업을 시행했다. 학교에 적지 않은 예산을 뿌려 교사들 위로하는데 쓰라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청이 한 일은 돈과 그 돈 사용에 대한 지침을 학교에 뿌린 것 뿐이다. 교사들은 안 그래도 바쁜 학년 말에 느닷없이 날아온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지침을 참고하여 정하고, 정해진 데 따라 계획서를 작성하여 결재를 받고, 계획서에 따라 지출 품의를 올려 집행하고 마지막으로 지출 내역을 정산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을 한 달 안에 해치워야 했는데, 그 한 달이 하필이면 1년 중 제일 바쁜 12월이었다. 생활기록부 작성하느라 정신 없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업무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마음 방역은 커녕 마음 염증이다. 정 교사를 위로하고 싶었다면 돈을 뿌리고 지침에 따라 계획을 세우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 교사에게 필요한 것을 신청만 받아 스스로 집행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당국은 일단 계획을 세워 학교에 돈을 던지면 누군가가 담당해서 집행할 것이라는 마인드로 일을 벌린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거의 대부분 학생을 교육해야 할 교사다.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새 정부의 교원업무 경감의 의지가 아주 강하다고 치자. 그러면 뭔가 좀 달라질까? 어림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은 역대급 코메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가 교원업무 경감 계획을 15쪽 짜리 계획서로 발표한다.
교육청이 각 시도 교원업무 경감 계획을 50쪽 짜리 계획서로 발표하고 각 학교에 공문으로 전파한다.
각 학교마다 교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교원업무 경감 협의회 따위가 만들어지고 을 수립하여 교장 결재를 받고 이를 교육청에 송부한다. 그런데 이 업무 대부분을 교무부장, 연구부장 및 몇몇 교사들이 담당하는데, 통상 이 교사들은 이것 말고도 수많은 각종 협의회, 전담기구 구성원으로 되어있다. 교무부나 연구부의 어느 교사가 ‘교원업무 경감 담당자’로 지정이 되는데, 이 교사는 이미 다른 업무들을 빽빽하게 담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담당 장학사가 학교에 공문과 체크리스트를 보내 ‘교원업무 경감 실태 보고’를 받는데, 그 보고서 작성자 역시 교사 중 누군가로 지정될 것이다.
5. 결국 이 사업은 각 학교에 ‘교원업무 경감’이라는 업무만 추가하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런 코메디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먼저 과감하게 딱 한 줄만 선언하면 된다.
“교사의 업무는 교육이다.” 그 이유도 간단하다. 교사의 정의가 가르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법에도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 업무는 누가 하느냐고 되물을수 있겠지만, 어쨌든 교사는 아니다라고 먼저 정해놓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야 업무를 간소화 하거나 합리화 하거나 인공지능에 맡기거나 등의 행정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교사가 교육의 전문가라면 직원은 업무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걸 먼저 못 박지 않고 진행되는 교원업무경감은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거나 뻔히 알면서 현혹하는 사기로 끝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웬지 두번째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부디 내가 착각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