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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짠 시간표. 오석에게 입학식이 있기 전, 2월 중순에 있었던 수강신청은 낯설지만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12년 동안 남이 정해 준 시간표에 따라 살았는데 처음으로 자기 시간표를 자기가 짜는 것이다.
하지만 오석은 엉뚱하게도 직접 시간표를 짠다는 해방감이 아니라 아무도 시간표를 짜 주지 않는다는 상실감을 느꼈다. 본인이 시간표를 짜고, 본인이 교실을 찾아다니고, 하지만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그런 무인도에 팽개쳐진 것 같은 외로움이다.
-고급 독문법 강의1(11동 109호)
오석은 강좌와 강의실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긴다. 후생관에서 사범대학까지는 숨이 찰 정도로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거의 관악산 중턱 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계로 측정해 보면 적어도 해발 200미터는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범대학 역시 졸속 행정의 표본을 보여주며 순 날림으로 지어진 낡은 건물들의 집합이다. 지하실도 없는 위태 위태한 건물들이 어거지로 엉켜있어 일단 들어가면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10X 호라고 되어 있는 강의실이 지하실에 있기도 했고, 20X 호라고 되어 있는 강의실이 1층에 있기도 하고. 그런데 다른 입구로 들어가면 그게 정말 2층이고.
더구나 강의실들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복식으로 들어차 답답하고 축축하다. 대낮에도 희미한 형광등 그림자에 의존하는 어두컴컴한 복도들은 비비 꼬이며 컴컴하게 이어져 있다.
오석은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들의 숲을 지나 약간은 설레이고 약간은 두려운 발걸음, 그 첫 발걸음을 디뎌 본다.
복도에서 낯선 얼굴들이 휙휙 지나간다. 교수로 보이는 늙은 사람.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 하지만 누구 하나 오석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로 뭐가 그리 급한지 종종 걸음을 칠 뿐이다.
오석은 이런 낯설음과 무관심이 생소하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는 학생들 중 적어도 1/3은 국민학교, 중학교 동창들이었다. 또 선생님들은 가르치건 안 가르치건 간에 우등생일 뿐 아니라 부모님이 학교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학생인 오석을 대부분 알은 척을 해 주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오니 오석은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여기 들어온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 출신 학교, 심지어 출신 지역에서 날고 뛰던 녀석들일 것이다. 그러니 오석은 별 특별한 것 없이 그들 중 하나에 불과한 학생이 되어버렸다. 오석은 지난 12년 동안 항상 누군가였지 원오브뎀이었던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되어버렸다. 만약 자신에게 특별히 관심 가져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중세 던젼같은 복도를 빙빙 돌아 간신히 11 -109 라는 초라한 문패를 달고 있는 낡은 문이 오석의 눈 앞에 나타났다. 누리끼리한 에나멜 칠이 세월과 함께 벗겨지고 싸구려 합판이 거친 결을 드러내고 있는 문이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호소하며 젊은 오석의 에너지를 갈구하고 있다.
혹시 먼저 와 있는 사람 방해될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본다. 삐거덕 소리가 나더니 교실이 초라한 자태를 드러낸다. 한 쪽 다리가 부러져 약간 기우뚱한 교탁. 제대로 닦이지 않아 지난 강의 내용이 아직도 희미하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지저분한 칠판. 의자와 일체형으로 되어있고, B4종이 한 장도 다 펼치기 힘들어 보이는 좁디좁은 책상.
오석은 논술고사를 치기 위해 처음 서울대학교 강의실이란 곳을 경험했을 때 그 초라하기 짝이 없는 책상들을 보고 몹시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여기에 비하면 거기는 차라리 최신식이었다. 고등학교 책상들을 운동장에 내어 놓고 한 10개월 정도 실컷 풍화작용을 시킨 다음 다시 들여오면 딱 11동 109호가 될 것이다.
실망이 컸지만 애써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책상이야 낡으면 어떻고, 반짝거리면 또 뭐하냐? 어쨌든 여긴 서울대학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바로 그런 학생이 된 것이다. 오석은 낡은 책상이 던져준 충격을 학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억지로 상쇄시킨 뒤 천천히 그 책상들 중 하나를 골라 몸을 구겨 넣어 본다.
그런데 오석을 제외하면 학생이 없다. 선생도 없다. 계속 이 큰 강의실에는 오석 혼자 앉아있을 뿐이다. 시계를 보니 10시 55분. 아직 시간이 남아서 그런가? 강의실은 텅 비었고, 학생이라고는 오석 혼자다.
그냥 기다리자니 심심해 강의실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책상마다 학생들이 커닝을 하기 위해 적어 놓은 글씨들이 새까맣게 덮여있고, 그런 글씨들이 벽에까지 들어차 있다.
칼로 책상 위에 새겨 놓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양키 용병교육 전방입소 철폐하라’ 따위의 글귀들이 보인다. ’섹스 없는 사랑은 공허하고, 사랑 없는 섹스는 맹목이다’ 따위의 현학적 음담패설도 있다. 오석은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한참 동안 이 책상 저 책상을 뒤적이다 시계를 보니 수업 시간이 지난 11시 5분이다. 이상하다. 왜 아무도 안 오지? 뭔가 착오가 생긴 모양이다. 과 사무실에 가서 조교한테 물어봐야겠다. 새치가 많아 교수로 착각했던 그 조교는 분명히 입학식 날에도 오후수업은 정상수업이라고 말했었다.
막 가방을 들고 일어 서려는데 강의실 문이 슬그머니 열린다. 드디어 누군가 들어올 모양이다. 학생일까 교수일까? 그 주인공은 어색해 보이는 파마 머리, 그리고 역시 어색한 투 피스 스커트 정장 차림의 여학생이다. 날씬한 몸매와 큰 키, 하얀 피부와 서글서글하고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맑은 눈망울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여학생 역시 텅 빈 강의실에 당황한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 칠판에 적힌 게 없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혼자 앉아있는 정우를 발견하고 입을 연다. 소프라노로도 모자라서 거의 소프라니노라고 해야 할 정도의 맑고 높은 목소리다.
“저어. 여기 독문법 강의실 맞아요?”
“예.”
“그럼, 그 쪽도 독어교육과 신입생인가요?”
“예. 그런데요?”
“저도 신입생이거든요.”
“아, 예.”
12년간 모범생으로만 살아왔던 오석은 여학생과 가깝게 마주하거나 이야기한 경험이 많지 않다. 정우의 누나인 미우와는 무척 가깝게 지냈지만, 세 살이나 위인 누나와 동년배 여학생은 또 얘기가 다르다. 정우의 여자 친구였던 최나경과 간혹 이야기를 나눈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런데 여학생과 이렇게 가까이서 이야기를 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틀림없이 얼굴 빛도 낮술 마신 것처럼 불그스름해졌을 것이다. 어디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부끄러워하는 오석을 놀리기라도 하듯 대뜸 말을 놓는다.
“반가워. 난, 주민경이라고 해.”
오석도 얼떨결에 대답했다.
“예. 전 권오석입니다.”
그 여학생 아니 주민경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웃음을 터뜨린다.
“양복 입은거 재미있어.”
“예?”
“재미있다고."
“아.”
“하긴 나 투피스 입은 것도 웃기지? 꼭 애들이 어른 흉내 내는 것 같아.”
하지만 오석은 대답은커녕 민경의 얼굴을 바로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냥 아무 말없이 시계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조교가 되었건 다른 학생이 되었건, 누구라도 좀 들어와서 이 어색함을 좀 깨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났다. 역시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쪽은 민경이다.
“가자.”
“어딜?”
“집에. 혹시나 해서 왔는데, 역시나야. 오늘은 다 휴강인가봐. ”
“예?”
오석은 믿을 수 없다. 수업이 취소된다고? 시간표에 엄연히 나와있는 수업 시간이?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학생이 수업 땡땡이 치는 건 들어 봤어도 선생이 수업을 땡땡이 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아무런 공지도 없이?
민경은 강의 캔슬이라는 말에 놀라 동그랗게 떠진 오석을 보며 오히려 놀란다.
“어머, 대학생 형이나 누나 없어?”
“예. 첫째라서….”
“아아! 그렇구나. 원래 대학교 개학 첫 주에는요 강의가 캔슬 되는 경우가 많대요.”
오석이 계속 존대말을 쓰자 민경의 말투도 슬그머니 존대말로 바뀌었다.
“정말요?”
“첫 주 강의는 안 하는 것이 예의라나 뭐라나….”
“그럼, 봄방학이 일주일 더 긴 셈이네요?”
“후훗. 그런 셈이죠. 그만 집에 가죠?”
민경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아 예.”
오석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강의실을 나선 오석과 민경은 집에 가기 위해 교문에서 올라왔던 그 만큼을 고스란히 내려가야 했다. 50개쯤 되는 계단을 한 무더기, 두 무더기, 세 무더기 내려가니 자그마한 연못이 나온다.
이름은 무슨 도교 전설에 나오는 연못 같지만 막상 가까이 가 보니 그냥 커다란 웅덩이에 불과하다. 어쨌든 서울대학의 명물로 알려져 있으니 눈도장 찍고 바로 시커먼 후생관 옆 길을 걸었다.
오석과 민경은 나란히 그저 또각또각 구두 소리만 내며 걸어 간다. 오석은 반짝반짝하는 로퍼를 신고, 민경 역시 반짝반짝하는 굽이 5센티 정도 되는 펌프스 구두를 신고 있다 보니 구두 소리가 요란하다. 이렇게 구두 소리만 내며 가다 보니 어색하다 못해 한심하게 느껴진다. 오석이 용기를 쥐어짜서 말문을 열어 본다.
“그런데, 저어, 집이 어느 쪽이세요?”
민경이 기다렸다는듯이 대답한다.
“삼성동. 그런데 삼성역 말고 선릉역에서 내려요.”
선릉역이라고? 오석은 갑자기 민경이 확 가깝고 편하게 느껴진다.
“정말요? 저도 거기서 내려요. 개나리 아파트 살거든요.”
“저는 그 반대쪽. 선릉역에서 AID아파트 중간 쯤. 어쨌건 참 반갑네요. 같은 동네 사람 만나서. 그럼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휘문? 경기? 난 정신 나왔어요.”
“J 나왔어요.”
“맞아. J도 있었구나. 그런데, J 애들은 숙명여고 애들하고 조인트 하던데, 숙명에 아는 여자 친구 있어요?”
“아뇨. 사실은 전 그러니까 아는 여자애가 하나도 없어요. 민경씨가 처음이에요.”
순간 민경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아이고, 하하하. 혼자 말 놓는 게 어색해서 같이 높여 주었더니 이건 너무하네. 민경씨가 뭐니? 같은 과 친구끼리 그게 뭐니? 이제 우리 그냥 이름 부르자? 어때 오석아?”
“예, 예?”
“말 놓자고. 응?”
“예? 아. 그, 그래. 말 놓자. 그런데, 민경씨, 아니, 민경아. 너, 정신 나왔다고?”
“응. 진선이 가깝긴 하지만 불교학교라. 나 교회 다니거든.”
“날씨 좋은날 우리학교에서 창밖을 보면 탄천 건너편으로 정신여고가 빤히 보였어.”
“어쩜 우리 먼 거리에서 서로 본 적도 있었겠네? 나도 탄천 건너편으로 너희 학교 봤었는데.”
“어쩌면.”
오석은 민경의 이 스스럼없는 자연스러움에 박자 맞추기가 어렵다. 다른 성장환경을 가진 아이 같다.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그러는.
어쩌면 교회 다닌다는 말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교회는 남녀 고등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었으니까. 물론 오석도 성당에 다녔지만 교회같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주소 이야기하고 나니 딱히 더 할 말이 없어 그들은 다시 말없이 걸었다. 후생관에서 교문을 지나 버스 타는 곳 까지는 적어도 10분 이상 더 걸어야 한다. 가는 길목 곳곳에는 ‘고문정권 살인정권,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 ‘박종철을 살려내라!’, ‘열사의 뜻 이어받아 군부독재 타도하자!’ 따위의 구호가 적힌 지라시가 붙어 있다.
아, 또 박종철이다. 고등학교 때 기억 역시 다시 소환되었다.
김지하 시화전이 열리고, 정우가 작곡한 ‘5월 칸타타’가 공연되자 발칵 뒤집힌 학교측은 학생부 선생들을 풀어 시화를 수거하고 정우, 성진, 축제 위원들과 합창반 회장을 끌고갔다. 오석도 시화전을 주관한 문예반 소속이라 같이 끌려갔다.
학생부실에 들어가자 마자 선생들은 물어보지도 않고 일단 아이스하키 스틱으로 허벅지가 부르틀 정도로 두르려 패기부터 했다. 한참을 두드려 팬 다음 물어본 첫마디가 이거였다.
“어떤 놈이 시켰어?”
이 한 마디. 박종철이 경찰에 끌려가 고문당해 죽었다는 끔찍한 뉴스가 번번이 소환하는 기억. 누구냐? 어디있냐? 불어라.
일단 때린다. 그리고 묻는다. “누가 시켰어?” 그리고 다시 때린다. “그 놈 어디있어?”
당시 선생들은 누구를 집중적으로 때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오석이었다.
오석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약하고 마음이 여리고 순진한 아이로 통했고, 그런 오석이 신음소리를 내며 얻어맞는 모습이야 말로 진이나 정우 같이 심지 굳은 학생들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무기였다. 오석은 지금도 명색이 교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제시대 헌병들이나 할 법한 고문과 심리전을 구사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군인 출신 교련 선생들 아이디어였는지도 모르겠다.
박종철, 그리고 85년의 그 끔찍한 기억 때문에 말없이 걸음만 옮기고 있는데 맑고 높은 민경의 목소리가 오석을 끔찍한 기억의 림보로부터 끌어낸다.
“오석아.”
민경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기 부담스러워 살짝 고개를 숙이자 아직 발에 익지 않은듯 구두 신은 발을 어색하게 꼼지락 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어, 응?”
“너 J고등학교 나왔으면 그 아이 알겠네?”
“누구?”
“걔 있잖아? 너희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애? 피아니스트.”
“디누?”
“그래. 디누.”
그럼 그렇지. 오석은 그럴 줄 알았다. J 고등학교 다닌다 그러면 열이면 열 이걸 물었으니 말이다.
천재 피아니스트 디누, 클래식 아이돌 디누. 중학교때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어른들과 겨루어 두번이나 3위 이내에 입상하고, 바이올린 신동인 누나 미우와 참가한 2중주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디누.
다들 그렇게 부르지만 오석은 그 예명이 낯 간지러워 듣기도 부르기도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그 친구는 죽마고우 권정우니까.
하지만 오석은 정우를 좋아했고, 자신이 정우와 친구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도 좋아했다. 오석이 디누 대신 정우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대답한다.
“정우랑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야. 이제 대학까지 동창이네. 같은 반인 적도 몇 번 있었어. 중학교 때는 그 자식이 반장, 내가 부반장, 고등학교 때는 반대.”
“어머, 그럼 아주 잘 알겠네?”
“응.”
“시간 되면 나 좀 소개시켜 줘.”
“알았어.”
이쯤 되면 소녀팬들이 좋아할만한 정우, 아니 디누의 이런 저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내며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지만, 오석에겐 그런 주변머리가 없다. 있어도 절친의 뒷 이야기로 여학생이나 꼬시는 그런 타입도 아니다.
다시 침묵이 이어지고, 어느덧 철로 된 거대하고 흉측한 샤문이 버쩍 가까이 다가왔다.
“어머! 저게 뭐야?”
갑자기 민경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교문을 가리킨다.
“왜?”
“전경들.”
“정말.”
“오늘도 데모하나?”
“빨리 나가야겠다.”
전투경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무슨 중세시대 병사들처럼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든 전경들이 교문을 절반쯤 틀어막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다.
점잖아 보이는 30대 남성이 전경과 실랑이를 벌이고 모습이 보인다.
“아, 수업하러 가야 한다니까요?”
“그럼 학생증을 보여 주세요.”
“학생이 아니라 선생입니다.”
“그럼 공무원증 보여 주세요.”
“시간 강사가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그럼 들어갈 수 없습니다.”
“수업해야 한다니까.”
“자꾸 그러면 연행합니다.”
한 눈에 봐도 난감한 상황이다. 남의 일이지만 오석마저 안타까워 한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안타까움 보다는 괜히 근처에 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민경의 걸음이 빨라지자 오석도 서둘러 그 뒤를 따른다. 그 상황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티를 내어 가며 그 안타까운 강사 옆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전경들은 들어오는 사람만 신경썼지 나가는 사람들에겐 관심 없는 모양이다.
전경 옆을 지나면서 오석의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심장 뛰는 속도가 아첼렐란도로 올라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이게 생물시간에 배웠던 아드레날린 분출인가 싶다. 부신인가 편도체인가에서 투쟁 혹은 도피 반응이라고 하던. 그러다 보니 처음 신어 보는 구두가 자꾸 조이면서 엄지발가락과 발등이 지끈지끈 아파온다. 민경의 구두가 내는 또각 소리도 아까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들린다.
전경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나 간신히 교문 밖으로 나선 다음에야 아드레날린의 분수가 멈춘었다. 오석은 아랫도리의 힘이 쭈욱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가 밀치거나 했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다.
민경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든다.
“평생 만난 경찰보다 오늘 본 경찰이 더 많아.”
“맨날 이래야 할까?”
민경이 자그맣게 속삭인다.
“무서워.”
오석도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어머, 남자도 무서운 게 있어?”
“경찰보고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지? 어, 버스 있네.”
그들은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출발하지 않고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140번 버스 안으로 몸을 던진다.
“학생! 요금 안 내?”
운전 기사의 호통 소리가 들린다.
“예? 저 냈는데요?”
“그럼, 같이 온 여학생은?”
“예?”
오석이 잠시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민경이 웃는다.
“내 것까지 내주는 것 아니었니?”
“응? 아. 알았어.”
오석은 어깨를 한 번 으쓱 한 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버스 요금 함에 쨍그랑 소리가 나게 던져 넣었다. 오석이 던져 넣은 동전이 신호라도 되는양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는 전경들이 짜 놓은 스크럼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로터리를 빠져나가 봉천동 고개를 올라간다. 지금 교문 앞에 늘어서 있는 전경만으로는 부족한지 말로만 들었던 닭장차가 길가에 줄줄이 늘어서 있다.
오석은 버스를 세우고 전경들이 들이닥치는 상상을 한다. 끔찍하다. 2년 전 진이가 보여준 광주 5.18 비디오의 잔상이 그 상상에 겹치자 몸서리가 쳐지며 팔에 소름이 돋는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가 무사히 고개를 넘어 서울대입구 전철역에 그들을 사당동 쪽으로 바삐 옮겨간 것이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없이 바삐 지하철 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학의 기쁨이고 뭐고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녹색으로 도색된 지하철 2호선에 올라탄 다음에야 두근거리던 가슴이 가라앉는다.
“학교 어떻게 다닐지 걱정이야.”
오석이 한숨과 함께 말한다. 하지만 민경은 오히려 태연한 모습이다.
“무슨 걱정?”
“데모하는 학생들, 그러니까 뭐라더라? 운동권 학생들은 우리 같은 강남 출신들을 원수처럼 생각한다는데. 그럼 어떻게 하지?”
민경이 별 시시한 걱정 다한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운동권이 무슨 고등학교 때 날라리들이야? 그런 것 아니야. 걱정 마.”
“그래도, 우리 혹시 왕따 되는 건 아닐까?”
“그거야, 우리가 가서 하기 나름 아닐까? 우리가 뭐 주소만 강남구인 거지 진짜 부르주아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할 바를 다 하면 걔들도 우리를 이해해 줄 거야.”
“그럼, 민경아. 너도 데모할 거야?”
“글쎄? 뭐라고 딱 잘라 말 못하겠어. 음. 해야 할 때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젊은이의 의무 아닐까? 3.1 운동 때, 4. 19때 그랬던 것처럼.”
“3. 1 운동. 4. 19. 그래. 그건 훌륭한 일이야. 하지만 그건 공산주의 운동은 아니었잖아?”
“학생운동이 공산주의라고 누가 그래? 너 정부 선전물을 너무 곧이곧대로 믿는거 아니야? 하긴 나도 잘 몰라. 넌 무슨 신입생이 그렇게 미리부터 걱정을 하니? 그냥 희망차게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 되지?”
“걱정하게 만들잖아? 모든 것들이.”
“하기는. 그건 그렇다. 정말 이게 뭔지 모르겠어. 입학하는 날부터 이런 이상한 긴장감이나 느껴야 하고. 언제나 좋은 세상이 올까?”
“Bald, bald, oder nicht.”
“지금 뭐라고 한거야?”
“곧. 곧. 아니면 영영 안 될 수도.”
“어머. 멋있다. 네가 생각 한 말이야?”
“아니. 마술피리에 나오는 대사야. 갑자기 이게 생각나더라고.
“너 클래식 듣는구나?”
“사실 클래식 밖에 안들어. 알고 있는 팝송이나 가요도 별로 없어.”
“그럼, 아침이슬 같은 노래도?”
“그건. 예쁜 노래긴 한데 그 노래에 대해 나쁜 기억이 있어서별로 안 좋아해.”
“나쁜 기억?”
“고등학교때 정우, 그러니까 디누 따라 운동권 써클 했어. 거기서 늘 아침이슬 불렀거든. 그런데 끝이 안좋았어.”
“아, 그 사건 나도 들었어. J고등학교 축제때 디누가 광주 5.18 노래 만들어서 공연하고 그래서 난리 났다고. 너도 그때 한 몫 했구나? 와 그냥 순진한 범생인줄 알았는데 웬지 달리보이는데?”
민경의 표정에서 약간의 선망을 읽은 오석은 기분이 오히려 가라 앉는 느낌을 받는다. 그 선망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정우를 떠올리는 것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왕 그렇게 느낀다면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 투쟁이라면 정우가 주도한 것이 아니니까. 그 영광은 아이돌 디누가 아니라 철학도 성진에게 돌아가야 한다. 오석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윤리교육과 들어온 성진이란 친구가 주도했어. 정우도 한 역할을 했지. 하지만 난 반대했어. 난 문학과 예술은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순수? 글쎄 과연 뭐가 순수일까? 오히려 순수를 지킨다고 뒤로 빠지는 것이 어느 한편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 아닐까?”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의 순수. 워즈워드나 키츠의 시에서 보이는 그런 순수. 그런 순수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오석은 순수라는 말을 꺼내고 나니 문득 성당이라도 계속 다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 정우 누나 미우를 따라 가톨릭에 입교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와 미우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발길이 뜸해지고 말았다.
지금 미국에 있는 미우는 편지를 해도 답장이 없다. 하긴 친동생 정우가 편지해도 답장 안하는 것을 보면 그냥 아무 하고도 말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정우 이상으로 잘 나가던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병으로 그만두게 되었으니 그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어쨌든 성당만 가면 미우 생각이 나고, 그러면 공부도 안되고 해서 결국 발길을 끊었다.
“무슨 생각해?”
“아, 그냥. 성당이나 계속 다닐 걸 그런 생각.”
“그래? 그럼 우리 교회 나올래?”
“아, 그건 좀.”
“그럼, 다니던 성당 꼭 다시 나가. 거기나 여기다 다 같은 주님 품이니까. 어머. 선릉역이야. 다 왔다. 내리자.”
“그래.”
플랫폼에서 계단을 올라와 개찰구를 통과하자 민경이 손으로 출구 두개를 가리킨다. 언젠가 TV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본 스튜어디스 동작 흉내내는 모습같다.
“여기서부터는 반대 방향이네? 넌 남쪽, 난 북쪽.”
“응.”
“잘 가. 다음 수업 시간 때 보자. 어쨌든 처음 만난 같은 과 친구가 같은 동네라 반가웠어. 참, 그리고 이거 잊지 말자.”
“뭘?”
“우린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 만난 사이라는 거. 그러니까 졸업할 때까지 친하게 지내자.”
“그래 친하게 지내자. 잘 가.”
오석은 민경과 작별하고 돌아서며 뺨에 손을 얹어 본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온도로 보아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 올랐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근처에서 향긋한 우유 혹은 요구르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런 게 여자 냄새라는 걸까? 이런 이런.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오석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 느낌을 털어버리기 위해 집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