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었다. 길고 긴 하지의 태양마저 지친 몸을 눕혔다. 태양마저 지쳐버리자 빛이 어둠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땅 위의 것들이 하나하나 빛을 잃고 어둠에 함락되었다.
그러나 신림동의 거리는 어둠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저항했다. 거대한 가두투쟁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자축하는 학생들의 술판이 시끌벅절한 불야성을 지었다.
낮에 싸운 학생들이 밤이 오는 것을 거부하며 여전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학생들은 신림동 골목길을 서로서로 스크럼을 짠 체 구호를 외치며 휘젓고 다녔다. 몇몇 학생들은 안 그래도 지친 몸에 너무 많은 알코올을 투입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온갖 신체의 거부 반응은 다 보여주며 시뻘건 토사물을 게워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미현은 이 복새통을 헤쳐가며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자취방을 향해 힘겹게 올라가는 미현의 모습은 과다카날 정글에서 공포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일본 패잔병 모습을 연상시켰다.
낮에 입고 나갔던 흰색 티셔츠는 땀과 오물질로 온통 얼룩덜룩 더렵혀져 있었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운동화 한 쪽이 사라져 왼발은 맨발이었고, 발바닥은 이미 새까맣게 더렵혀졌다. 대학생이 아니라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중증 환자로 보였다.
미현은 이 꼴을 하고 명동에서부터 왔다. 복잡한 전철을 탔고, 환승 통로를 걸었고, 버스를 갈아타고 마침내 신림동을 걸었다. 태어나 처음 당해 보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하지만 미현의 진짜 문제는 몰골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공포. 두려움과 공포가 미현의 가슴과 머리를 헤집고 다니며 계속 링반더룽을 하고 있었다. 몰골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머, 미현아!”
이렇게 공기에서 헤엄치듯 허우적거리며 가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영아.”
정난영. 같은 과 동기에, 같은 학회에 있지만 웬지 낯설고, 조금은 두렵고 웬지 모를 거부감을 주는 아이.
“아니, 이게 뭔 일이야?”
난영이 눈이 휘둥그렇게 뜨며 미현을 보았다. 미현은 그제서야 자신의 몰골을 확인하고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낼 수 있었다. 대신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거지 꼴, 이런 거지 꼴을 하고 잘도 먼 길을 왔다.
“집에 가는 길이야? 내가 같이 가 줄까?”
난영이 걱정에 가득한 눈으로 미현의 왼쪽 팔목을 감싸 안았다. 왼발이 엉망이라 그랬을 것이다. 순간 미현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난영아 너 시간 좀 있니?”
미현은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아무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마침 앞에 난영이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이 나타났더라도 붙잡고 시간 좀 내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럼. 시간 많아.”
난영이 쿨 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막상 난영이 시간 있다고 하자 미현은 뭘 하자고 할지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 술 마시고 싶어.”
“그래. 나야 뭐 좋지.”
난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긴 생머리가 물결을 쳤다.
“그럼, 나 좀 데려다 줄래? 집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게.”
“그래. 나 한테 좀 기대.”
난영이 미현의 왼팔에 팔짱을 단단하게 끼고 휘청거리는 몸을 버텨주었다. 미현은 난영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자취방까지 왔다. 난영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녹두거리 중간 어디쯤에서 그냥 주저앉아 소리 내어 엉엉 울었을 것이다.
“여기서 기다릴게. 옷 갈아 입고 와.”
이렇게 말하는 난영의 모습이 든든했다. 남학생 못지 않은 큰 키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미현은 방에 들어가자 마자 걸레가 되어버린 스타킹부터 벗어 던졌다. 스타킹이 힘없이 흔들거리며 날아가더니 방 구석에 찌그러져 구겨진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되는 양 흐느꼈다.
막연한 의무감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명호에게 부탁하고 따라 나섰던 가두 시위. 하지만 그 현장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무시무시했다.
젊은이들이 고함치며 달렸다. 그 목소리는 절박하고 간절했다. 어떤 어른들은 요즘 애들이 배가 불러서 공부는 안하고 데모나 한다고들 했다. 미현은 어느 정도 낭만적인 행위일 것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그것은 데모도 낭만도 아니었다. 전쟁이었다. 훨씬 강한 상대에 대항하여 일방적으로 얻어 맞아가며 싸워야 하는 전쟁. 과학으로 만들어진 화학 무기 앞에, 맨주먹과 석기시대 무기로 싸워야 하는 젊은이들의 처절하고 눈물겨운 저항.
왜? 무엇을 위해?
“휴우!”
미현은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어 이런저런 생각을 일단 뱉어냈다. 거울을 보고 이그러진 표정도 바로잡았다. 하지만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난영이를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미현은 얼른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간단하게 세수를 한 뒤, 한쪽만 남은 운동화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샌들을 꺼내 신고 밖으로 나섰다.
낮 동안 기승을 부렸던 더위도 한풀 꺾여 덥기 보다 훈훈하게 느껴졌다. 시원한 저녁바람이 뺨을 스쳤다.
“많이 기다렸지? 가자.”
“어디 갈래?”
“난 잘 몰라. 네가 데려가는 데 갈게.”
“알았어.”
난영이 미현을 학사주점 ‘스페이스’로 이끌었다. 미현도 처음 와 본 곳은 아니다.
스페이스는 이미 시끌벅절의 경지를 크게 넘어 거의 광란의 도가니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과연 자리가 있을지 걱정될 정도였지만 그들은 그 소동 속에 거의 기적적으로 남아 있는 구석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뭐 마실까?”
“우선 밥부터. 배고파.”
“그래.”
난영이 아주머니를 불러서 두부튀김 찌개와 공기 밥, 그리고 소주를 주문했다. 이미 많이 해 놓았는지 주문한지 얼마되지 않아 바로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
미현은 허겁지겁 밥을 퍼먹었다. 평소 얌전하고 깔끔한 미현의 모습만 봐 왔던 난영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오늘 힘들었나 봐?”
난영은 미현에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미현은난영이 묻지 않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미현 같이 얌전하고 깔끔한 여학생이 이런 꼴이 되어 돌아올 일이라면 이 시국에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자, 위장 채웠으면 한 잔 받아.”
난영이 미현 앞에 놓인 잔에 한 가득 소주를 붓더니 자신의 잔에도 한잔 가득 따랐다. 난영이 자기 잔을 들어 올렸다. 미현도 잔을 들어 난영이 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난영이 잔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한 입에 탁 털어 넣었다. 미현도 흉내 내어 혀끝에 느껴지는 쓴 맛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한잔을 들이켰다.
위장이 뒤틀리며 거꾸로 치솟아 오르려는 것 같이 불쾌했다. 재빨리 김칫국에 젖은 두부튀김 하나를 집어먹고 심호흡을 하자 간신히 뒤틀리던 속이 잠잠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얼굴이 후끈거리며 뜨거워졌다.
이거야? 이게 술 취한다는 거야? 미현의 마음 속에 어디 한 번 갈 때까지 가 볼까 이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 잔 더!”
미현이 빈 잔을 난영이에게 들이 밀었다.
“오케이!”
난영이 바로 소주를 가득 따르더니 자기 잔에도 넘치도록 따랐다.
“원 샷!”
“원 샷!”
둘이 동시에 소줏잔을 탁 털어 넣었다.
난영은 소주가 많이 익숙한지 두번째 잔이 들어가도 별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미현은 정신이 모호해지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경동맥의 박동이 느껴졌다.
까짓 거. 미현의 마음에 객기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술은 삼배가 원칙이지. 또 한 잔.”
“어머!”
아까와 달리 난영이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왜? 술 떨어졌어?”
“아니, 그건 아닌데. 너 더 마셔도 괜찮아?”
“걱정 마. 끄떡없어.”
미현이 빈 잔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알았어. 까짓 거, 그렇다면, 자. 한 잔 더 받아. 술이야 얼마든지 따라 줄 수 있는데 이유나 좀 알자. 역사과 깔끔 공주 손미현이 무슨 일로 이렇게 술을 퍼 먹는데? 나 지금 머리가 혼란스러워 정리가 잘 안 되거든.”
“나 말이야.”
세번째 잔도 단숨에 비우자 미현은 목소리가 원하는 톤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게 혀 꼬부라진 소리라는 건가? 하지만 꼬부라져서 그런지 입 밖으로 내뱉기는 훨씬 부드러웠다.
“나, 데모 나갔어. 아니, 데모는 어른들이 쓰는 말이지? 뭐라고 해야지?”
“가투?”
“그래. 그거. 나 오늘 가투 나갔어.”
“어쩐 일이야? 네가 가투를 다 나가고?”
“호기심, 의무감, 혹은 낭만? 하여간 뭐든. 그냥 그렇게 나갔어. 심각하게 생각 안했어. 해야 하는 것을 한다, 이런? 무슨 밀린 숙제하는 것 같은 그런 생각? 낭만. 그래. 낭만도 있어. 젊은이의 반항, 저항, 자유 이런거.”
“어떻든?”
미현이 고개를 가로로 마구 흔들었다.
“너무 슬펐어. 너무 아팠어.”
미현은 술잔을 들어 올렸지만 비어 있었다. 이번에는 직접 술을 따르고 단숨에 들이켰다.
“슬프고 아파? 뭐가?”
“그건.”
미현의 숨이 거칠어지더니 참을 틈도 주지 않고 눈물 한 뭉치가 얇은 눈꺼풀을 밀어내고 쏟아졌다.
“난 데모하는 학생들, 운동권은 뭔가 남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냥 나 같은 젊은이들이었어. 젊은이들이 맨손으로 공권력에 맞서고 있었어. 그러다 처절하게 쓰러지고. 너무 무섭고 불쌍했어. 왜? 왜들 그렇게 싸우는 거야?”
“진정한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난, 난 도무지 모르겠어.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어느 것이 바른 길인지. 부모님이 말하는 것이랑, 교과서에 적혀 있는 것이랑, 뉴스에서 말하는 것이랑, 또 학교에서 보고 듣는 것이랑, 모든 것이 다 달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지만 직접 해 보지 않고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잖아? 그래서 오늘 시험 삼아 가투 한번 나가 본 것인데. 명호가, 명호가….”
“명호가 뭘?”
“잡혀갔어.”
“뭐? 어제 나왔는데 또? 어쩌다?”
”내가 같이 나가달라고 해서, 같이 갔는데, 나 잡아가려는 백골단하고 싸우다. 어떡하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미현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대로 엎어져 눈물을 터뜨렸다. 아까 마신 소주가 죄다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나오는지 울어도 울어도 눈물의 흐름이 멈추지 않았다.
난영이 엎드린 미현의 등판 위에 뺨을 살포시 기대더니 속삭이듯 작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한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애숭이 1학년인 걸? 세금으로 만드는 콩밥이 뭐 그렇게 남아 도는 줄 아니? 금방 풀려나올 거야.”
“정말 그럴까?”
“그럼.”
“하지만. 나 아니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텐데. 괜히 나때문에. 나오자 마자 또.”
난영이 아가 재우듯 미현의 어깨를 타박타박 두드렸다.
“너 때문 아니야. 명호는 의협심이 강한 아이라 너 아니었어도 가투에 나갔을 것이고, 너 아니었어도 이름 모를 다른 학우들 지키려다 잡혀갔을 거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미현은 등을 어루만져주는 난영이 손길이 너무 편안해서 놀랐다. 대학 입학하고 얼마되지도 않아 ‘아리랑’이라는 민요 동아리 들어가 날마다 장구만 두드려 대고, 걸핏하면 수업 빼먹고, 대신 데모 판에만 열심히 쫓아다니고, 교정 벤치에 걸터앉아 담배까지 뻑뻑 피워대는 거친 모습에 거부감, 심지어는 두려움까지 느꼈던 난영이다.
그 난영이와 술을 마시고,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위로까지 받고 있다. 무슨 뜻일까? 이제야 난영과 비슷한 유형의 학생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까?
미현이 조금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자 난영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처연하고 가락은 아름다웠다.
그대 가는 산 너머로 빛나던 새벽별도
어두운 뒷골목에 숨 죽이던 흐느낌도
피투성이 비구름 되어 진달래 타는 언덕 되어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그러자 주점 안에 있던 학생들 중 누군가가 2절을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점안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가세하여 이 노래가 합창이 되었다.
휘날리던 그 깃발은 가슴 동여맨 영혼이였소
치던 바람 그 함성은 검푸른 칼날이였소
우리 지금 여기에 발걸음 새로운데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너무 어두운 노래였지만 그 어두운 가사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느덧 여학생 둘이 마주 앉아 해치운 소주병이 세 병을 넘어섰다. 난영도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말이 꼬불꼬불해지기 시작했다. 미현은 당연히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
미현은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며 말을 했다. 난영은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양 맞장구를 쳤지만, 말하는 난영도 듣는 미현도 그 말 뜻을 몰랐다. 이렇게 그들은 혀 꼬부라진 집단 독백을 주고받았다.
이 때 미현의 입에서 모처럼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이 터져 나왔다.
“토할 것 같아.”
미현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쫌만 참아. 화장실 데려다 줄게.”
난영 역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함께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향했다. 제미니 몇 호이던가에서 선외 활동하는 우주비행사 같은 모습이다.
“우욱! 우우욱!”
화장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신음 소리와 함께 시뻘건 김치찌개 색깔의 구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난영이 부지런히 등을 두드려 주고, 그 등 두드리는 리듬에 맞추어 빨간 토사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괜찮아?”
“괜찮아.”
“정말?”
“응. 내려가자. 한 잔 더 마셔야지?”
“아니. 오늘은 그만 해. 많이 취했어.”
“내가? 정말? 나 많이 취했어?”
“그래.”
“어떡해? 나 그럼 이상한 짓도 막 하고 그랬어?”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네 몸 생각해서 오늘은 그만 쫑 하자. 술은 토한 다음에는 그만 마셔야 해. 몸이 거부한다는 신호니까.”
“그런가? 몸이 싫다는데 억지로 마실 필요는 없겠지?”
“혼자 들어갈수 있어? 바래다줄까?”
“아유. 괜찮아.”
“정말?”
“괜찮대두.”
미현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난영이를 억지로 뿌리치고 밖으로 나섰다.
한바탕 토하고 난 뒤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신선한 바깥바람을 쐬었기 때문인지, 화장실에서 육체의 반란을 진압할 때 보다는 한결 기분이 상쾌하고 맑았다.
그러나 그 상쾌한 기분은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영상들과 함께 엉망이 되었다.
서울 시내. 명동에서 남대문 사이의 어느 곳.
무장한 전경들과 학생들이 사방에서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다.
학생들이 외쳤다. 데모하는 학생들, 좌경용공폭력 학생들이라고 어른들한테 들었던 그 학생들이 외쳤다. 그런데 그 외치는 소리들을 들어보면 다 중학교 도덕 시간,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좋은 말들이었다. 그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배워왔고 그렇게 외워서 시험쳤던 그런 말들이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직선개헌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
경찰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그 말을 외친다고 경찰이 때리고 잡아갈 것 같으면 대체 그 말은 왜 가르치고, 그걸로 시험까지 치게 했을까? 그 말을 가르쳤던 어른들이 미웠다. 그 어른들 시키는 대로 살아왔던 지난 시간도 미웠다.
그 미움이 복받치며 미현은 학생들 틈에 엉켜 더 열심히 구호를 외쳤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다 다시 뭉쳐 구호를 외치고, 다시 도망쳤다 모여 외치기를 반복했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이글거리며 아지랑이를 일으키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외쳤다. 도덕시간, 국민윤리 시간에 옳다고 배웠던 바로 그 말들.
민주주의를 자유를.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데모하지 마라. 신세 망친다.”
아니 왜 어른들은 선악을 판단하지 않았을까?
“데모하지 마라.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왜냐하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세 망치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했다.
어른들의 논리는 모순 그 자체다. “신세 망치기 때문에” 어떤 대의명분과도 상관없이 데모하지 말아야 한다면, 가난한집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효도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신세에 보탬이 안 되고 오히려 해가 되니까. 그러니 “효도하지 마라. 신세 망친다.”라는 말도 성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부모나 친척들에 대한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나라나 민족에 대한 희생은 안 된다고 하는가?
하지만 미현의 곁에는 어른들이 아니라 명호가 있었다. 명호가 언제 도망쳐야 하는지,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지 알려 주고, 때로는 손목을 잡고 함께 달렸다.
경찰의 공격이 맹렬해도 명호의 손만 꼭 잡고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그 손이 이끄는 대로 달리면 귀신같이 안전지대로 퇴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달리다 어느 순간 그만 그 손의 감촉을 놓쳐버렸다.
“명호야! 명호야!”
손을 잃어버린 미현이 두리번거리며 명호를 찾고 있을 때 달려드는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청바지와 청자켓을 들고 곤봉을 들고 달려오는 경찰들. 사복 체포조. 백골단.
결국 이렇게 잡혀서 감옥에 가고 신세 망치는 것일까? 미현은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눈을 뜨자 신음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지는 경찰들의 모습이 보이더니 아킬레스처럼 늠름한 모습의 명호가 나타났다.
아, 그때 그 모습이란!
그러나 명호는 신화속의 아킬레스처럼 늠름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전철역으로 뛰어 들어가. 그리고 전철타고 집으로 가! 어서!”
“명호야, 너는?”
“상황이 영 그러네. 너는 얼른 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골단 한 무리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고 미현은 죽기 살기로 전철역을 향해 달렸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명호가 어디서 구했는지 손에 든 커다란 각목으로 근처에 접근하려는 백골단들을 위협했다.
미현이 마악 전철역에 성공적으로 뛰어든 순간 바로 뒤에서 한바탕 격투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대여섯 명의 백골단에게 팔 다리를 모두 붙들린 체 끌려가고 있는 명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 절망적인 눈동자의 떨림. 그 와중에서도 그 눈동자가 이렇게 외친다.
“난 괜찮아. 얼른 가!”
아아, 싫다. 미현은 머리를 감싸 안고 목을 좌우로 마구 휘저었다.
왜 인간의 두뇌는 이런 고약한 장난을 하지? 왜 나쁜 기억은 오래 가고 좋은 시간은 빨리 가지? 하느님의 시련일까? 그것을 통해서 영적으로 단련시키려는 것일까? 헛소리!
그렇게 몸을 흔들다시피 하며 간신히 집 앞에 도착했다.
부모님께 하숙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얻은 자취방이다.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하숙하는 대신 그 동안 곱게만 자라온 자신을 훈련시키고 단련시키고 싶어 스스로 선택했던 자취생활이다.
작은 방에 작은 부엌 한 칸이지만 난생 처음 가져보는 독립 생활의 터전. 난생 처음 만끽해 보는 자유공간. 처음 경험하는 자유. 자유!
하지만 지금 명호는 자유를 잃고 차가운 유치장에 갇혀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구치소까지 끌려 갔을지도 모른다. 경찰들을 그렇게 많이 두드려 팼으니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같이 잡혀 갈걸 그랬나? 하지만 명호는 분명 자신이 잡혀가는 한이 있더라도 미현만은 무사히 탈출하기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왜?
“왜 그랬어, 명호야? 응?”
미현은 마치 명호가 앞에 서 있기라도 한것처럼 말을 던져 보았다.
“너, 혹시 나 좋아하니? 그래서 그랬니? 푸훗!”
방금 그 말은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우스웠다. 아니, 이 마당에 이런 말이 왜 튀어 나왔단 말인가?
“그럼. 좋아하구 말구.”
이럴 수가! 대답이 들렸다. 누가 듣고 장난치나? 아니면 술 기운에 헛것이 들렸나? 그런데 그 대답소리가 점점 커지고 또 가까워졌다.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말은 못했지만 미현이 너를 참말로 좋아했었다.”
맙소사. 명호다. 진짜 명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아, 그것이, 그러니까 나 끌고 가던 백골단 놈들이 성대 아그들 기습을 받았거든. 그 틈에 빠져나왔다. 그런데 너를 끝까지 지켜 주질 못해서 그것이 종시 마음에 걸려 미안하단 말 하려고 기다렸다. 무사히 돌아오는 것도 확인할겸. 그란디 아무리 기다려도 안 들어오지 않냐? 그래서 엄청 걱정하고 있었다.”
“미안해. 난영이랑 술 마시느라.”
“아, 그랬었냐? 그럼 그때 전철역에서 안 붙잡히고 무사히 여까지 온 것이냐?”
“응. 덕분에.”
“그럼, 나 보디가드 노릇은 잘 한 것이지?”
“응.”
“몇 점?”
“백점, 아니 그 이상도 아깝지 않아. 하지만 오늘 내가 제일 고맙게 생각하는 보디가드 잘 한 거 말고 따로 있어.”
“정말이냐? 그것이 뭔데?”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거.”
“그것은 또 뭔 소리냐?”
“말 그대로야. 명호야. 이렇게 무사해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미현아.”
명호가 뭔가 말 하려다 멈추었다. 미현은 명호 눈동자에 반사되는 가로 등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명호가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이 뒤엉킨 길다란 실루엣이 차가운 회색 가로등 빛을 타고 깜깜한 새벽 골목 바닥에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