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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사범대학 11동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손에는 두툼한 스프링 노트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가 아무도 반기지 않는 과 사무실을 훑어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수현과 민경만 확인했다. 수현이 보이면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고 민경이 보이면 따로 불러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과 사무실에서 웅성거리며 슬그머니 그를 외면하는 학생들 가운데 민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오석은 과사무실을 나왔다.
과사무실 부터 시작해서 강의실 마다 슬쩍 슬쩍 들여다보지만 민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민경, 어디 있어?” 하고 소리치며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우연히 마주치기 기대하며 돌아다니는 수 밖에.
민경을 찾아 11동과 10동 복도를 헤매고 다니는 오석의 마음 속에 지난 한 달이 흘러갔다. 어느새 9월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졌다. 2학기도 한 달이 지난 것이다. 끔찍한 한 달이었지만 이제는 견딜만했다. 처음에는 살이 에이듯 아팠다. 하지만 오석은 사람의 적응력이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배웠다. 혹은 사람의 본성이 아니라 오석 나름의 적응력일수도 있었다.
문득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신 아니면 짐승이라고 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그건 틀린 말이었다. 오석은 신도 짐승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렇게 바뀌어야 했다.
“사람은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적응할 수 있는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었는지 정치학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활동적인 삶이 아니라 ‘관조적인 삶’이 최고의 삶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석은 그런 내용을 어디서 읽었는지 이마를 찌푸려 가며 떠올려 봤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 동료들이 그를 모른 척하는 것 역시 오석의 인생에서 딱히 처음 일도 아니었다. 학교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따로 나도는 생활은 중학교 1학년때 충분히 경험했다.
애초에 오석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었다. 완전한 혼자는 견디기 어려워도 한 두 사람이라도 교류할 수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굳이 조직이나 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필요는 없다. 관계의 양 보다는 질이 중요한 것이다.
1학기 때는 수현이 있어 전혀 외롭지 않았다. 다만 엉망진창의 성적표를 받게 될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민경이 있고 하영이 있다.
민경의 말을 듣고 문학 학회에 들어간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문학 학회 개설자는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큰 눈망울이 조금은 수줍어 보이는 느낌을 주는 신수민이라는 86학번 여자 선배였다. 학회 구성원은 아주 단출했다.
87학번은 오석을 포함해서 민경, 하영까지 세 명 뿐이었다. 생각보다 아담한 학회였다. 곽재훈 녀석이 웬일로 여기 안 왔나 싶었다. 민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나타나는 녀석인데 의외였다.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신수민 선배는 의식화 교육 이런 것 하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전형적인 문학소녀에 가까웠다. 소설가가 꿈이고, 기회가 되면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싶다고 했다. 이 모임은 그야말로 문학 작품을 읽어보고 소감을 나누는 그런 모임이었다. 이념서적 따위는 읽지 않았다.
물론 같이 읽는 문학 작품 중에는 대체로 좌파 성향의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학적 가치 없는 프로파간다성 작품을 읽는 것은 아니었다. 카프 문학 이런 부류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이네, 뷔히너, 하우푸트만, 브레히트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높은 평가를 받는 고전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쉴러의 ‘간계와 사랑’, ‘빌헬름 텔’ 같은 작품,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같은 작품이 사회비판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이른바 과에서 하는 학회라는 모임 중에 매우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다른 학회들은 이름이 뭐가 되었건 결국 운동권 이념을 학습하는 의식화 모임이었다. 이름이 역사학회 이렇게 되어 있으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읽거나 ‘항일 무장 투쟁사’ 따위를 읽었고, 철학학회 이렇게 되어 있으면 ‘유물론적 변증법’, ‘역사적 변증법’ 학습했으며, 경제학회 이렇게 되어 있으면 ‘자본론’을 읽기 위해 이런 저런 입문서를 읽었다.
오석은 곽재훈이 여기 들어오지 않은 이유를 세미나 몇 번해 보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재훈에게 잠깐 빙의해 보자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한가하게 세계 명작 읽을 때가?”
덕분에 학회는 자칫 지옥이 될 뻔했던 오석의 대학교 두번째 학기를 구원해준 동아줄이 되었다.
그런데 그 동아줄을 내려준 민경의 생일이 10월 5일, 일주일 정도 남았다. 오석은 당연히 의미 있고 진심이 담긴 선물을 하고 싶었다. 수현 대신 음악회에 같이 갔던 날 민경이 한 말 속에 이미 무엇을 선물할지 암시되어 있었다.
“너의 시를 받고 싶어.”
그 선물이 바로 지금 오석의 손에 들려 있는 두툼한 스프링 노트다. 정확히 말하면 스프링 노트가 아니라 노트에 담긴 내용물이다.
표지는 직접 무늬를 그려 장식했고, 그 장식을 배경으로 ‘권오석 시 전집’이라는 장식문자를 그려 넣었다. 중학교 때 부터 썼던 모든 시를 정성껏 만년필로 정서하여 옮겨 놓은 것이다.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어쨌든 평생토록 영혼을 쥐어짜서 만들어낸 모든 흔적들의 모음이다.
사범대학에서 못 찾으면 캠퍼스를 다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이 넓은 관악 캠퍼스에서 학생 하나 찾는 건 낙산 비치에서 크리스탈 한 조각 찾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일이겠지만, 정 안되면 운동했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12동과 자하연 사이에 있는 모든 건물과 주위를 다 뒤져보겠다는 각오를 다졌지만 오석의 캠퍼스 대탐험은 의외로 짧게 끝났다. 9동과 11동 사이에 있는 중정에 나서자 마자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는 민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늘색 셔츠 위에 물 빠진 청 조끼를 입고 옅은 파란색 디스코 바지와 나이키 운동화 차림이었다.
평소 안단테 정도로 뛰던 심장이 갑자기 알레그로로 뛰었다. 오석은 몇 번 숨을 깊게 쉬고 나서 심박수를 모데라토까지 맞춰 놓고 발걸음을 소스테누토로 디뎌가며 민경에게 다가갔다.
“어머, 오석아. 안녕.”
누가 다가오는 소리에 살짝 놀라 고개를 돌리다 오석을 본 민경이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읽고 있던 책을 접어 무릎에 내려놓고 벤치 옆 자리를 가볍게 툭툭 치며 와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음. 민경아. 사실, 줄게 있어서. 이거.”
오석은 옆에 앉는 대신 마주보며 서서 두손으로 공책을 받쳐들고 내밀었다.
“어? 이게 뭔데?”
“곧 생일이잖아? 선물이야.”
“고마워. 어, 어머!”
공책을 펼쳐본 민경이 깜짝 놀라며 오석을 올려 보았다.
오석은 얼른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민경이 다시 공책을 응시하더니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겨본다. 휙휙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꼼꼼하게 읽어보고 넘겼다.
지난 5월 시위하는 학생들을 보며 썼던 시가 눈에 들어왔다.
한번
더
하늘을 감감히 덮고 내린다.
소리마저 감싸고 있는 강물 위
유연하게 휘청이는 물결의 흐름을 위해
봄도 못 본 꽃들이
시들어 떨어진다.
저기
어차피 가라앉을
썩어가는 판자 배를 저어가며
꽃잎의 물결을 지쳐나가는
늙은 사공의
주름살 깊이 패인
도강이 보고파라
아아
저렇게 푸르던 하늘이
새푸르게 말라 비틀어지고
거칠게 물결쳐 오르는
새하얀
꽃
꽃
꽃
꽃잎들이
피어오른다.
오석은 자기가 쓴 시지만 무슨 소리를 하고 싶었던 건지 도무지 알아먹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이건 시가 아니다. 그냥 넋두리다. 맙소사 이런 쓰레기를 선물이랍시고 주었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확 다시 빼앗아서 불타는 아궁이에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민경이 너무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이 도깨비 같은 문장들이 대체 무슨 뜻인지, 글쓴이조차 원관념을 잊어버린 베베 꼬인 메타포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마를 찡그리며 보고 있었다.
오석은 너무 부끄러워 적어도 자기 눈 앞에서는 민경에게 읽히고 싶지 않았다. 얼른 손바닥을 민경이 눈앞에서 흔들며 읽는 행위의 중단을 요청했다.
“나중에 봐. 바로 앞에서 보니까 좀, 아니 많이 부끄러워.”
“아냐. 시들이 다 멋져. 소재도 다양하고, 표현도 독특하고. 이거 다 직접 썼어?”
“응.”
민경이 눈과 입을 활짝 벌리며 웃었다.
“와, 너무 고마워. 나아, 태어나서 이렇게 감동적인 선물은 정말 처음이야. 이거 다 옮겨 쓰느라 너무 힘들었겠다. 난 상상도 못할 일이야.”
“너 준다고 생각하니까 힘 하나도 안 들었어.”
“어머!”
민경이 깜짝 놀라며 페이지를 넘기던 공책을 놓칠 뻔했다.
다행히 재빨리 공책을 잡았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는 참변은 면했다. 간신히 공책을 다시 잡은 민경의 얼굴빛이 아까 보다 발그레하게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본 오석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저기. 그럼, 나중에 봐.”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오석은 얼른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걸음을 떼기도 전에 등 뒤에서 민경의 날카로우면서 작은 목소리가 들리며 발걸음을 잡았다.
“오석아 잠깐!”
“응? 왜?”
엉거주춤하게 돌아섰다. 민경이 아까처럼 벤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안 바쁘면 여기 앉아서 얘기 좀 해.”
“그, 글쎄.”
“어어 서어!”
민경이 몸통을 가볍게 좌우로 돌리며 보채듯이 말한다. 이건 막냇동생 소진이가 잘 하는 제스쳐인데 이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알았어.”
할 수 없이 오석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민경 옆에 30 센티 미터가량 거리를 두고 앉았다. 하지만 그 거리는 이내 3센티, 아니 마이너스 1센티 미터로 줄어들었다. 민경이 바짝 가까이 옮겨 앉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경이 다리를 꼬고 앉는 바람에 민경의 왼발이 오석의 왼쪽 정강이에 닿기까지 했다.
사실 민경과 신체 접촉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성격이 발랄한 민경은 자주 웃었고, 웃을 때 옆에 있는 사람 몸을 두드리거나 손목을 잡고 흔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왜 의식되는지 모르겠다. 1학기때까지만 해도 편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민경이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질까?
오석은 민경과 시선을 맞출 엄두가 나지 않아 눈을 살짝 아래로 깔았다. 그러자 얼굴 보며 이야기할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손목 시계였다. 베이지 색 가죽 스트랩의 평범한 손목시계처럼 보였지만 자판에 찍혀 있는 TISSOT라는 알파벳이 자신이 스위스 출신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민경은 티소 정도면 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 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민경이 입고 있는 평범한 청조끼와 청바지 단추에 선명하게 써지오 발렌테의 황소 얼굴 모양 마크가 찍혀있다.
오석은 민경의 얼굴을 계속 피하며 TISSOT 글자 위로 금색 바늘이 지나가는 것만 바라보았다. 바늘이 글자를 두 번 지나갈 때쯤 되었을 때 민경의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렸다. 목소리와 함께 숨결까지 느껴졌다.
“무슨 생각해 지금?”
“아니? 그냥. 시계가 예뻐서.”
“아, 이모가 입학선물 준 건데. 참. 오석아. 내가 부탁 하나 하면 들어줄래?”
“부, 부탁?”
“좀 어려운 부탁일수도 있는데.”
“말해봐.”
오석은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아니 어지간하면 다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 이상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라도 좋았다.
문득 정우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정우라면 아마 이 순간 바로 민경을 와락 부둥켜안았을 것이다. 어쩌면 키스를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이 이상한 기분에서 벗어나려면 차라리 그렇게 저지르고 뺨이라도 날카롭게 한 대 맞는편이 더 시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석은 정우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만년필로 옛날에 썼던 시나 옮겨 적고, 청바지 단추나 손목시계 바늘을 흘끔흘끔 보는 것뿐이다.
“말하면 들어줄 거야?”
“비도덕적인 일만 아니라면.”
“그럴 리가 있겠니? 음. 아크로에 같이 갈래?”
“아, 아크로에?”
이런. 하필 아크로?
잠잠하던 오석의 심박이 다시 프레스토로 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압박감까지 느껴지면서 오석은 눈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눈알이 튀어나가지 않게 눌러 막아야 할 것 같았다.
아크로, 아크로폴리스 광장.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시작되는 곳. 그곳은 오석에게 절대 금역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그런데 거길 가자고?
“오늘 총학생회 출정식을 할 거야.”
“그런데?”
“왜? 싫어?”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럼 한 번 가 보자.”
‘어떡하지? 민경이가 뭔가 오해했나봐.’
난감했다. 오석이 학회 같이 하겠다고 한 것은 그야말로 같이 책 읽는 모임을 하겠단 뜻이었다. 하지만 민경은 그걸 의식화에 동참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오석은 민경이 집회나 시위, 한 마디로 데모에 종종 가담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이 가자고 나설 줄은 몰랐다. 사실상 운동권이나 다름없는 하영은 오히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오석은 민경이 특별히 이념적이거나 이른바 의식이 투철하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평소 민경이 하는 말은 전두환이 독재자고 민주적인 선거가 이루어져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대접받는 평등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정도였는데, 이 정도라면 특별한 의식화도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이미 중고등학교 도덕, 국민윤리 수업 시간에 무려 공교육을 통해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배운 것과 영 딴판인 나라가 잘못인 것이다. 왜 가르쳐준 것과 다른 세상을 보여주냐는 항의를 이념이니 의식화니 몰아붙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돌과 화염병을 경찰에게 집어 던지며 싸우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오석은 아크로 광장에 가는 것이 마치 동정을 상실하는 것처럼 느껴져 계속 쭈뻣거렸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정해졌다. 오석은 거부할 수 없다.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한심하다. 한심해. 수현이를 거부할 수 없어 아크로를 외면하고 바깥으로 나돌더니, 이제는 민경이를 거부할 수 없어 아크로로 들어간다고? 에라, 이 줏대 없는 새끼야.”
머리 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오석을 비난했다. 다름 아닌 정우 목소리다.
왜 하필 정우 목소리가 맴돌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제 밤에 정우와 성진을 만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