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1987년 가을 6화 성진2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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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토요일.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 그냥 한 낮이라고 해 두자. 안 그래도 해가 긴 하지 무렵인데 썸머 타임까지 적용되어 밤 아홉시나 되어야 해가 떨어지는 판이니 시각은 아무 의미 없었다. 오후 두시부터 저녁 일곱시 까지 다 그 시간이 그 시간 같으니 말이다.

진은 도산공원 건너 논현동 비탈 아래 아담한 벽돌 건물에 두 개의 자그마한 상영관을 두고 있는 ‘시네하우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기 위해 거의 날마다 찾아왔던 곳이다.

영화만 본 게 아니라 공부도 했다. 아마데우스 상영관이었던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던지 1층에는 ‘아마데우스’라는 레스토랑 겸 카페까지 있어 간단한 식사와 차를 팔았다. 진은 검정고시, 학력고사 시험공부를 대부분 그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서 했다. 간혹 공연 준비를 핑계로 학교를 땡땡이 친 정우가 찾아오기도 했다. 둘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서 각자 시험공부와 악보 분석을 했다.

그날은 진이 바로 그 레스토랑 ‘아마데우스’에서 정우와 점심 약속을 한 날이었다. 먼저 와 있던 정우가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진도 손을 흔들며 한 마디 던져 주었다.

“여이. 6월 항쟁의 영웅!”

이런 싱거운 인사를 하며 정우가 앉아있는 테이블 앞으로 갔다. 눈 앞에 그리 아름답지 않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음료는 다 빨아 마시고 얼음만 남아 있고, 그 옆에는 지저분하게 온갖 메모를 갈겨놓은 너덜너덜해진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직접 그린 악보가 아니라 인쇄된 악보다. 작곡이 아니라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야, 닭살 돋는다. 그런 말 하지 마라.”

정우가 눈빛으로 점화라도 시킬듯 노려보고 있던 악보를 접으며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리. 영웅은 영웅이지. 한국은 영웅 결핍증이 너무 심하다니까. 영웅이 없으니 비극이 없고, 그저 해학과 풍자만 남아있다고. 그거야 약자, 패자의 소극적 저항이지. 이제 우리도 영웅이 필요하다고. 누구라도 영웅에 한 몫 하면 좋지 뭐.”

진이 이렇게 반박하자 정우의 손사래가 오히려 더욱 격해졌다.

“그럼 더더욱 안되지. 난 비극은 사절이다. 난 슬픈 것 질색이거든.”

“멜로성 최루물 말고 고전적인 비극인데? 한 번을 살아도 그렇게 사는 것, 그거 괜찮지 않아? 난 평범하고 지루하게 장수하는 것 보다 영웅적인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나한테 그럴 능력이 없을 뿐이지.”

“네가 안되는데 나라고 될까?“

“오호, 천재 디누께서 나를 같은 레벨로 봐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진 말자고. 아니, 잠깐. 저건,”

진은 말하다 말고 깜짝 놀라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우가 마치 “너를 위해 준비했어, 놀랐지?” 이렇게 말하는듯한 느낌으로 빙긋 웃는다.

“맞아. 네가 지금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그 사람 맞아. 오늘의 서프라이즈야.”

그리고 손을 흔들며 진을 깜짝 놀라게 할 그 이름을 불렀다.

“봉 주르, 지네트! 비엥시!”

진은 보는 눈과 듣는 귀를 모두 의심했다. 지네트라고? 진이 먼 발치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악착같이 용돈 저축한 돈을 다 털어 넣고, 교통비가 없어 트리어에서 룩셈부르크까지 두 시간도 안되는 공연을 위해 자전거를 여섯 시간 달려야 했던 그 지네트라고? 아직도 매일 삼십분씩 그 연주를 듣지 않으면 하루가 마무리 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 그 지네트라고? 그 지네트가 바로 눈 앞에 나타나 같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혹은 옆에 앉을 거라고?

물론 진은 지네트가 한국에서 공연하는 일정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6월 들어 부쩍 잦아진 시위 때문에 마음의 여유도 없고, 무엇보다 티켓 가격이 진의 한 달 용돈을 훨씬 뛰어 넘어 안타깝게 포기했을 뿐이다. 지네트가 활동 중단하고 잠적한 뒤 2년만에 컴백한 공연이라 티켓 프리미엄이 어마어마했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너 지네트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했잖아?”

당황하는 진의 모습을 보며 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미안. 미리 말 안 해서. 나중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지네트가 마침 한국에 공연 일정 있어 온 김에 너하고 나하고 같이 좀 보자 하더라. 그래서 마침 오늘 너하고 약속 있다고 했더니 온다 하더라고. 뭐, 말릴 이유도 없고 해서. 사실 나도 2년 만에 처음 만나.”

“공연만 안한 게 아니었구나. 너마저 못 만났을 정도라면.”

“그러게. 나 지금 어때? 괜찮아 보여?”

“천하의 디누가 긴장을 하네?”

이런 만담 같은 대사나 주고받는 동안 어느새 지네트가 다가와 조금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 역시 때로 한국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디누, 안녕! 2년만?”

바로 눈 앞에서 마주친 지네트는 진이 레코드 자켓 사진에서 공연 포스터에서 보아 왔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헐렁한 티셔츠와 발목이 드러난 청바지, 그리고 맨발에 평평한 하얀 샌들을 신고 있는 상상외로 소박하고 수수한 차림이었다. 생각보다 체구도 작고 몹시 가냘퍼서 바람이 세게 불면 팔을 넓게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뵈어서 영광입니다. 성진이라고 합니다. 성이 성, 이름이 진이죠.”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탓에 진은 녹음된 문장 재생하는것 같은 어색한 인사를 해야만 했다. 무슨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지 아무 느낌도 없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레코드 판 자켓이라도 하나 들고 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 뿐이었다. 기왕이면 정우와 함께 연주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파가니니 2중주 앨범에 사인이라도 받는 건데.

그러는 동안 벌써 지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탈 글라스에 물을 절반쯤 담아두고 젓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면 날 것 같은 날카롭고 맑은 목소리다. 이 역시 진이 상상했던 것 보다 반 옥타브 정도 높았다.

“디누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철학자, 시인, 그리고 민주 투사라고요.”

그리고 진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까딱하더니 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얼굴의 1/3을 차지하는 것 같은 그 큰 눈망울이 온통 얼음으로 가득 찬 것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호감보다는 경계심이나 적대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아니, 무슨 그렇게 까지나.”

진은 아무리 들어도 그 민주투사라는 말이 칭찬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적당히 대답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지네트는 진의 대답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눈길을 바로 정우를 향해 돌렸다.

“너 그 동안 아주 유명해졌더라. 르 몽드에서 네 사진 보고 깜짝 놀랐어. 건반 위의 체 게바라라던가 뭐라던가.”

“그랬어? 난 전혀 몰랐어.”

“모르다니? 대범한 건가 아니면 자기 일에 무관심한 건가?”

“한국은 외신이 통제 되거든. 프랑스 언론이 날 뭐라고 했더라도 정작 내가 그걸 알 수 없어.”

“난 너 그러는 것 싫어.”

갑자기 지네트가 딱 잘라 말했다. 한 순간에 분위기가 마치 망치로 얼음을 두드려 깬 것 같이 싸늘하게 식었다.

확실히 이럴 때는 바이올린 여제니, 여신이니 하는 말이 괜히 한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진도 정우도 감히 말을 못 꺼내고 지네트 눈치만 살피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디누를 놓아주세요.”

그런데 하필이면 지네트가 그 차가운 눈빛을 다시 진에게 돌리더니 다짜고짜 요구했다.

“무슨 뜻이죠?”

“디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진은 오랜 팬심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이게 무슨날 벼락 같은 말인가? 아무리 팬심으로 가득하다 해도 받아 줄 수 있는 말이 있고, 없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선을 넘은 말이다.

진은 골이 났다. 골이 나자 얼어붙었던 말문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사랑이 시의 연료라면 분노는 철학의 연료인 셈이다. 진은 지네트가 알아듣기 편하라고 아예 프랑스어로 따지고 들었다.

“그것 참 이상한 말씀이군요. 전 지네트의 열렬한 팬이자 찬미자이고,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만 정우의 친구는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이용하다뇨?”

“아무 말이 아니에요. 디누는 지금 여기 이러고 있으면 안돼요. 7월 6일 저 하고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연주해야 해요. 9일에는 협주도 해야 하고. 그리고 한 달 정도 저하고 다섯 번 투어 콘서트 일정이 잡혀 있어요. 그 밖에도 작은 투어가 예약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힘을 다 빼고 있어요.”

팬심이고 뭐고 진은 이 바이올린 여제의 오만한 발언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용감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정우가 다른 나라 부르주아들이 점잖게 폼 잡고 앉아 있는 곳에서 연주하는 것만 귀합니까? 자기 나라는 맛이 가서 수천만 동포가 고통 속에 허덕이는데, 그건 나 몰라라 하고 있어야 합니까? 제 나라 동포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건 공연한 일에 진 빼는 것이고 낭비입니까? 지네트 나라이기도 하잖아요? 저도 사실 유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1980년의 그 끔찍한 뉴스를 보았을 때 결심했습니다. 정우도 고등학교 때 그 진실을 알았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더구나 정우처럼 신의 축복을 받은 천재라면? 그런 고통과 불의를 외면하고 유럽이니 미국이니 다니며 부자들 앞에서 연미복 입고 연주하는 것이 위대한 재능을 내려준 하느님의 참뜻일까요?”

한번 말문이 트이자 말이 술술 흘러나와 진은 거의 연설을 하고 말았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예요.”

그런데 의외로 지네트의 기세가 쉽게 수그러 들었다. 그 얼음같던 큰 눈망울이 조금 흔들렸다. 그 눈망울을 채우고 있던 얼음조각들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진은 기세를 잡고 계속 밀고 나갔다.

“미안합니다만 제 귀에는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말 나온 김에 짚어 볼까요? 대중음악 하는 가수들도 이 시대에서 무엇인가 했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고결한 클래식 뮤지션들이 한 일이 뭐가 있죠? 현실과 무관하게 천상 낙원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미소나 주고받는게 전부 아닌가요? 누가 클래식 한다는 이유로 현실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까?”

“그 말씀 뜻, 잘 알아요. 그리고 저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럼 뭐죠? 그 말씀은?”

이번에는 진이 당황했다. 나름 세차게 몰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수긍해 버리니 오히려 김이 빠졌다. 오히려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이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지네트가 조금 누그러진 모습으로 다시 한국어로 말했다.

“성진 씨는 저의 팬이며 찬미자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무척 서운하네요. 저를 겨우 그 정도로 보셨나요? 세상을 외면하는 특권층의 퍼펫 정도로 보셨나요?”

“아. 그건.”

지네트의 반격은 차분하지만 치명적이었다. 진은 완전히 한 방 먹었다고 인정해야 했다. 찬미한다고 아양을 떨어놓고 바로 비난하고, 찬미한다고 호들갑 떨어 놓고 바로 천박한 부르주아와 같은 무리로 만들었다.

진은 너무 부끄러워 그저 지네트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도의자리로 돌아갔다. 여신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찬미자를 자처하시면 저를 그런 천박한 사람들과 같이 놓고 보시면 안되는 거죠? 그렇죠? 하지만 디누를 아끼는 저의 진심만 이해해 주세요.”

“어이어이, 친구들. 왜 그러는 거야? 입장 난처하게?”

정우가 분위기를 돌려보려 끼어들었다. 하지만 지네트가 차가운 목소리가 그 말을 잘라버렸다.

“넌 빠져. 나 오늘 무슈 진 사이의 일이야.”

“그러지, 마. 진이도 내 친구고, 너도 내 친구고. 난 너희들이 싸우는 것 보기 싫어.”

“그래도 따질 건 따질 거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지네트, 너야 말로 날 너무 무시하는거 아니야? 내가 남의 말 듣고 선동되고 이용이나 당할 멍청이로 보여? 난 내가 생각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야. 이 나라의 한 사람의 젊은이자 예술가로서 그 의무에 충실했을 뿐이야. 그리고 7월 공연은 아무 걱정 하지 마. 난 데모 한다고 연습 게을리하는 그런 인간 아니니까.”

“너야말로 날 오해하고 있어. 나, 5.18도 알고 6월 항쟁의 의미도 알아. 그리고 나도 디누가 6월 항쟁에 나섰던 것 고결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해. 그런 널 존경하고. 네가 투쟁한다고 음악을 게을리하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알아. 네가 불쌍한 사람들, 불의한 상황에 눈 감지 않는 다는 것 알아. 그러면서도 그 어떤 공연도 소홀히 하지 않고 완벽하게 준비할 것이라는 거 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 다만 그 댓가로 바칠 너의 몸과 마음이 걱정될 뿐이야. 네 꼴을 봐. 넌 완전히 망가졌어.”

“망가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번에는 정우와 지네트 사이로 언쟁의 불이 옮겨 붙었다. 이미 레스토랑 손님들과 직원들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수근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우와 지네트가 계속 평행선을 그리며 말다툼을 계속했다. 중간 중간에 지네트가 답답해 할 때 마다 프랑스어 문장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그러면 정우는 엉뚱하게 독일어로 그 말을 되받아 쳤다.

진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모두 알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넌, 지금 네 몸과 혼을 갉아먹고 있어!”와 “네가 왜? 내 유모라도 돼?” 라는 종류의 날선 말을 주고 받고 있음을 금방 알아챘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이래서는 안된다.

“잠깐만요.”

진이 끼어들었다.

“나는 둘이 이렇게 싸우는 거 정말 보기 싫어요. 끔찍해. 내 보물이 부서지는 느낌이야. 알았어요. 지네트 말대로 정우가 정치판에 휘둘리지 않게 내가 지킬게요. 안 그래도 오늘 그 이야기 하러 만나려던 참이었어요.”

“넌 또 뜬금없이 뭔 소리야?”

“난 아름답고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정우의 선택을 존중해. 하지만 그게 반드시 거리에 나가 구호 외치고 정치적인 노래 만들고, 그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정우야. 난 네 음악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데만 힘쓰면 그걸로 충분히 네 몫의 투쟁을 다 한 거라 생각해. 그럼 내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억압받는 사람도 그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보일테니까. 막상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받던 사람도 수준 높고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그런 음악을 만들어야 할 네가 투쟁가나 만들다 더 올라갈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시대의 비극이 될 거야. 난 네가 투쟁에 앞장서고, 정치적인 음악 만들고 그러는 것, 의미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길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실 청와대에 초청받으면 가서 희희덕덕 거리는 돼지 같은 무리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맙거든.”

그리고 계속 무슨 말인가 했는데 진은 전혀 기억 나지 않았다. 자신의 우상 앞에서 뭔가 멋진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말을 마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네트가 눈을 크게 뜨고 진을 보고 있었다. 이미 눈망울을 채우고 있던 얼음은 말끔히 녹아 없어지고 대신 감탄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순간 진은 현기증을 느꼈다. 평생의 우상과 마주 앉아 이야기 하고, 심지어 말다툼까지 했는데 그 우상이 오히려 감탄의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꿈은 시작도 안 한 것이었다. 더 꿈 같은 일은 그 날 이후 진과 지네트 단 둘이 몇 차례 더 만났다는 것이다.

“아이고, 이제 끝났네. 내 이름 쓰는게 이렇게 중노동이 될지 몰랐어. ”

정우 목소리가 들리며 진을 6월에서 9월로 되돌려 놓았다. 진이 지네트와 만났던 기억을 되돌려 보는 동안 정우가 기나긴 사인 행렬을 다 소화한 모양이다. 지쳐 보이지만 활짝 웃는 밝은 모습이었다.

“프로젝트 완주 축하해.”

일단 축하 인사부터 던졌다. 던지고 나니 영혼 없는 인사였다. 정우가 바로 그 빈틈을 치고 나왔다.

“그냥 완주 한 것에나 만족하라 이거야?”

“아니, 아니. 연주도 정말 좋았어. 그런데 주영이 누나는 어떻게 만났어?”

“뭐, 말하자면 길어. 어쨌든 우리학교 강사님 아니냐? 나 수강까지 하는 걸? 실내악 코스.”

“와우. 그럼 누나가 디누 스승이야?”

주영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어머, 스승은 무슨. 참, 저녁 어떻게 할래? 늦었지만 같이 할래?”

하지만 진의 귀에는 그 소리가 “같이 안 해도 좋지? 너희들 끼리 시간 보내.”로 들렸다. 진은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아니. 고맙지만 두 분이서 오붓하게 보내세요. 우리 둘이 따로 갈게.”

진이 주영 옆에 서 있는 정동진 교수에게 미묘한 눈빛을 던지며 이렇게 말하자 정동진 교수가 알았다는 듯이 껄껄 웃으며 주영의 어깨에 넓직한 손을 걸치며 끌어당겼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강사는 강사끼리 학생은 학생끼리로 분리되었다.

“나 밥 생각은 없고. 너무 더운데 셰이크나 마시자.”

정우가 이렇게 말해서 그들은 웬디스를 향했다. 가자 마자 정우가 밀크 셰이크와 오렌지 주스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미친듯이 흡입했다. 진은 그 모습이 딱해 보여 한 마디 던졌다.

“너 너무 달리는 거 아니냐?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유럽 투어에, 다시 돌아와서 공단, 파업장 콘서트 하더니 언제 이런 프로젝트까지 준비하고 있었어?”

“아, 이거? 궁금하면 내가 지네트랑 유럽에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연주했는지 한번 살펴 봐.”

“설마?”

“맞아. 둘이 베토벤 2중주 했어.”

“그러니까 전에 지네트한테 민주화 운동 하면서도 공연 준비 차질 없이 제대로 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한 건?”

“맞아.”

“맙소사. 그러니까 너 이 녀석, 주영이 누나를 대타 삼아 투어 연습하고 있었던 거구나. 하여간 너란 녀석은.”

“아니, 그 반대야. 성 선생님 프로젝트 먼저 시작했고, 기왕 그렇게 시작한 거, 지네트한테 유럽 투어는 베토벤으로 하자고 했고. 지네트는 시대 장르 안 가리는 전천후라서 뭐든 좋아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했고. 그렇게 된 거야.”

진은 이렇게 정우를 알아갈수록 감탄이 더해갔다. 사람들은 정우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을 경이롭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꼼수의 귀재인 것이다.

86년에도 그랬다. 정우는 서울대 입시 실기곡들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서 대입 두 달 전에 학교에 공결 내고 미국 투어 공연을 했다. 진은 그때 프로그램을 보고 너무 기가 막혀 입을 닫지 못했다.

당시 프로그램은 이랬다. 1부는 바흐 평균율에서 네 곡, 쇼팽 연습곡에서 두 곡을 연주하고, 2부는 베토벤 소나타 21번, 23번중 하나를 번갈아 가며 연주했다. 이 중 평균율과 연습곡은 매 공연 때 마다 다른 곡들로 선정하여 열 두번의 공연을 마쳤을 때는 전곡을 골고루 다 연주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지극히 표준적인 프로그램으로 보이지만 결국 음대 실기시험 연습과 북미 투어 공연을 한번에 해결한 것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대입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하고 해외 공연 다니는 천재의 클래스니 뭐니 했지만 정우는 이렇게 시간과 기회를 압축적으로 재활용하는 재주가 있었다.

“어쨌든 후련하겠네. 큰 공연도 잘 마치고, 큰 기획도 다 마치고.”

“아니. 후련하긴 커녕 답답해.”

“왜?”

“6.29 때문에.”

“6.29 때문이라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뭔가 계속 치밀어 오르는 데, 풀어놓을 곳이 없는 거야. 차라리 데모라도 많이 할 때는 시원했는데, 6. 29인지 속이구인지 뭐니 나오고는 데모도 도통 안하고. 이젠 파업도 별로 안 하네. 뭘 하지? 내 영혼의 한 부분이 증발하는 것 같아. 아니 부식된다는 쪽이 더 맞겠다.”

“어허, 너, 이걸로 다 끝난 것처럼 말한다. 겨우 대통령 선거 하나 얻었어.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네 영혼이 부식될 걱정 따윈 안 해도 될 거야. 오히려 네가 소진될까 걱정이야.”

“이제부터 시작? 그럼 어디까지 가야 중간은 간 거야? 대통령직선제가 단지 출발점이라면 우린 어디까지 가야 해? 아 참, 진이 넌 좌파니까, 설마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난 기계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니까. 굳이 따지면 인문주의 좌파라고 하자.”

말해 놓고 보니 진은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를 해괴망측한 신조어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니 어떻게든 정당화 시킬 작정이다. 그런데 정우가 단번에 이 신조어의 근본 없음을 까발렸다.

“오호, 성진의 오리지널 사상이다 이거지? 어디 네 생각을 풀어 봐. 듣고 있으니까.”

하지만 진도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았다.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할수 없어. 그냥 평소 소신을 말할 수 밖에. 그리고 거기에 저 이름을 붙이자. 인문주의적 사회주의라고 할까? 인문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할까? 변증법 주의자 답게, 변증술로 이야기를 풀어 볼까?’

진이 변증술을 시작했다.

“음악을 예로 들자.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오늘날 대체로 어떤 계급, 뭐 계층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하여간 어디 속하는 사람들일까?”

“매우 유감스럽지만 중산층 이상이야. 부르주아라고 해도 뭐 별 상관 없겠지.”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중 그런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건 사실이니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자, 이걸 기계적 마르크스 주의로 해석하면 이렇게 돼. 노동자계급은 미래의 주인이다. 노동자계급이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부르주아가 가지고 있는 것은 타도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뽕짝은 미래지향적이고 클래식은 쓰레기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장난 하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진은 자기도 모르게 변증술은 잊어버리고 연설 혹은 강의를 시작한다.

“바로. 이게 마르크스주의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일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야. 스탈린의 공포정치도, 중국의 문화혁명도 다 이런 기계적 마르크스주의와 그 변종들이야. 하지만 나 같은 인문주의자들은 이걸 다르게 봐. 우리는 이윤 동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그 시스템을 문제 삼는 것이지 부유한 계층이 즐긴다고 해서 고급문화를 날려 버리자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아.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저급하다면 그들의 문화가 왜 저급한가, 노동자계급에게 어떻게 하면 고급의 문화를 누리게 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고민하지, 저급한 노동자계급의 문화에 계급성이라는 면류관을 씌워 주는 따위의 일은 안 한다고. 내가 원하는 세상은 모든 노동자를 인텔리로 만드는 것이지 인텔리를 노동자로 만드는 게 아니야.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강요되는 막걸리 젓가락 장단 문화 같은 거, 솔직히 역겨워.”

“운동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니. 전혀 아니야”

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왜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거의 안 하지. 사실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

“그렇지? 그럼 생각해 봐. 그런 고등학생들, 문화도 교양도 없이 교과서 밖에 모르던 고등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문화와 교양이 확 늘어날까?”

“그게 한 두 해 만에 될 일이 아니잖아?”

“자, 그런 교양도 문화도 없는 고등학교 갓 졸업한 학생들에게 교과서 대신 마르크스주의 엉성하게 요약하거나 엉뚱하게 해석한 이념서적이 하나 던져졌다고 하자. 이걸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그냥 바로 물들어버리지 않을까? 이게 진짜 운동권일까? 그래서 자기들이 고등학교 때 즐겨 듣던 대중가요 양식에 가사만 살벌하게 붙였을 뿐인 그런 노래들을 운동 가요라며 숭상하고, 고등학교 때 접근하지 못했던 고급문화는 부르주아, 혹은 외래 문화라고 부르면서 배척하는 게 아닐까?”

“네 말, 꽤 그럴듯하게 들려.”

“그렇다면 정우야. 넌 지금 심심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세상이 디누를 부른다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는데?”

“네가 원하는 만큼 네가 원하는 음악을 해. 고급스러운 음악이든 난해한 음악이든 뭐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음악이라도 좋고, 12음이 춤을 추는 해독 불가의 음악이라도 좋고, 그냥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같은 클래식 연주하는 것도 좋고. 다만 그 동안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누릴 기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를 누리게 도와주면 돼. 이게 네가 할 일이야.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음, 이건 어때? 공단 음악회, 달동네 음악회, 이런 것들 한번 해 볼까 하는데?”

“아니, 여태까지 그런 거 하고서 체포까지 되었는데 그걸 또 하자고? 관두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럼?”

“그야말로 클래식 공연을 하는 거야. 운동가요, 민중가요이런거 안하고. 마을회관, 혹은 학교 음악실 이런 데서 업라이트 피아노가 되었든, 풍금이 되었든 하여간 악기만 있으면 돼. 공짜는 좀 그러니까, 딱 천원 씩 받고 그야말로 고전 음악을 들려주는 거야. 때론 음악 강좌도 열고.”

“그거 괜찮은걸? 이걸 가지고 경찰도 시비 못 걸 거고. 음악으로 자선을 하겠다는데 말이야. 와, 너 방금 세상을 바꿨어.”

“무슨 헛소리야?”

“농담이 아니야. 한번 상상해 봐. 내가 꿈꾸는 세상은 그저 자본가 때려잡고 그 돈 나눠먹고 그러는 게 아니야. 내가 꿈꾸는 세상은 입장료 천 원짜리 ‘코지판투테’, 오백 원짜리 ‘노르마’, 이런 공연이 동네마다 열리는 세상. 그래서 중국집 자장면 먹으러 가듯 누구나 오폐라를 보러가는 세상. 이런 세상이야. 어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지 않니? 다들 혁명으로 세상을 뒤집자고 할 때, 넌 뒤집어진 세상에서의 삶을 먼저 보여주는 거라고.”

“꿈 같은 얘기다. 하지만 아름다운 꿈이야. 아름답다면 꿈이든 뭐든 다 좋아. 그래. 그런 꿈을 품고 산다면 평생 심심하지는 않겠어. 그럼, 성진이 넌 뭐 할래?”

“나? 난 시를 써야지. 에세이도 쓰고. 일상생활에서 삶과 세계의 모순을 깨닫게 하는,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읽히고 아름답게 이미지를 그려내는 그런 시와 글을 쓰고 싶어.”

“쓰고 싶은 거야, 쓰고 있는 거야?”

“쓰고 있어. 책 한 권 분량이 되면 너부터 보여줄게.”

진은 처음에는 되는대로 이름 붙였던 것이 말을 하다 보니 실체가 있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이거면 된 걸까? 이게 인문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하지만 정우의 해맑은 표정을 보면 뭔가 그럴듯한 개똥철학이 하나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이때 정우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어색해. 지금 뭔가 어색해.”

그러고 보니 진도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어색함과 위화감의 정체를 금새 알아차렸지만 정우가 스스로 알아챌 기회를 주기 위해 입을 꾹 닫고 귀를 열었다.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트레몰로와 트릴로 두드리던 정우가 마침내 정답을 말했다.

“오석이가 없어.”

진은 하마트면 눈물을 흘릴뻔 했다. 이 말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사실은 5월부터 계속 기다리던 말인데 정우가 스스로 깨달았으니 너무 고맙다.

“맞아. 나도 어색해.”

얼른 재청했다.

“부를까?”

정우는 언제나 행동이 빠르고 거침없다. 벌떡 일어나 공중전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시간에?”

“뭐 어때?”

“그래. 부르자. 아니, 여기까지 오라는 건 좀 그렇고, 강남역 근처로 나오라고 해. 우리도 얼른 여기 정리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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