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이야기에 경고를 날린다

by 도우너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독서모임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리더가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고 그 누구든 자유롭게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 아직 서먹한 사이일 때는 리더가 먼저 질문을 던져주면 좋다. 책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주제가 될 수도 있고 감명 깊었던 문장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러다 이런 사람이 나타난다.


내가 아는 사람이...


누군가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옛날에.."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모임에 꼭 한 명씩은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을 주제로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는, 실은 안들어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언뜻 들으면 주제와 연결되는 이야기 같지만 들을수록 점점 주제와 멀어지고 흐름이 산으로 간다.

이름하여 숟가락 얹는 이야기. 자신의 내부에 닻을 내리지 않고 그저 생각의 표피에서 부유하는 비슷한 에피소드를 전달할 뿐이다.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조차 소외된 이야기에는 힘이 없어서 그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다. 한두번은 그럴 수 있지만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시간은 본의아니게 오페라 인터미션 시간처럼 사람들이 하나둘 화장실에 다녀온다. 심지어 안내자인 나조차 다녀왔다.


내 안에 쌓인 것, 나만의 세계관이 없을 때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렇다. 우리 집에 몇 년 묵은 집된장이 없으면 남이 만든 걸 사오던지 얻어와야 하는 것처럼 내 이야기가 없으면 밖의 이야기를 그저 나열한다. 굳이 듣지 않아도 무방한 이야기들은 감동도 없고 듣고 있노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깊이 없는 말, 뿌리 없는 말, 표류하는 말, 숙성되지 않은 말들은 밀도가 없다. 내가 아는 사람은 나 혼자 알고 있으면 된다.

독서모임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 이런 대화가 지속될 때 그걸 못 끊겠다는 거다. 사람들이 기분 나빠할까봐 그냥 웃으며 계속 들어준다. 나 역시 예전에는 이런 상황을 지나치게 길게 듣고있곤 했는데 그걸 배려라고 착각했다. 물론 모임의 초반에 서로를 탐색하는 동안 이런 시간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되면 문제다. 그런 대화가 주도적으로 많아지게 되면 밀도있는 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간다. 대부분 본인의 오랜 습관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지적 않으면 몇 년이 지나도 계속 똑같다. 그리고 좀 달라진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습관이 나온다.


독서모임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다. 늘 장황한 이야기를 펼쳐놓는 분이 있었는데 초반에는 그냥 들어주었다. 이런 분들의 고질적인 특징은 이야기를 하다가 항상 끝에는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자신도 모른다. 주제에서 한참 멀어진 뒤이다. 어느 정도 들어주는 시기가 지나고 결국 말을 꺼냈다. 주어가 자신이 아닌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주제에 맞지 않은 내용이 많으니 말할 때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좋게 전달해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당황해한다. 그러고 그는 다음 모임부터는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극과 극을 오가며 시간이 지났고 그는 다시 원래 패턴으로 돌아와서 같은 지적을 여러 번 더 들어야했지만 결국 자신의 컨트롤 하지 못하는 패턴을 통찰했다.


때는 남이 말하는 중인데도 여지없이 자르고 자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다른 분들도 너무 불편해해서 따로 만나 얘기를 했다. 그 분은 자신이 그런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그간 여러 집단에서 자기가 소외된다고 느꼈거나 문제을 일으켜 나오게 되었던 상황들이 이해가 되었다고 했다. 성인이 되어 회사 생활이 아닌 곳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지적을 받을 일이 잘 없기에 대부분 이걸 넘어서기 힘들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계속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당황스러움과 직면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 확실히 나아진다. 하지만 그 터널을 지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 아쉽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관건은 본인이 이걸 넘어서서 변화의 문을 여느냐 그냥 포기하느냐이다.


좋은 책에는 특유의 주파수가 있다.

좋은 작가는 좋은 책을 낳고 좋은 독자는 그 주파수를 감지해낸다. 라디오를 들을 때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지지직~잡음만 들리고 주파수에 가까워 질수록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듯이 독서모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이 전하는 주파수에 가까이 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말짱 황이다. 고전소설을 보고서 소설 속의 스치듯 지나가는 연애사건에 초점을 맞춰서 각자의 첫사랑 이야기만 나누다 헤어지는 꼴이다. 그래서 밀도 있는 대화가 중요하다. 책의 주파수에 세심하게 맞추어가는 대화. 밀도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모임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멤버들 모두가 이런 대화에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라면 리더의 역할은 크지 않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모임에는 사람들이 계속 바뀌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리더의 역량에 따라 대화의 흐름이 많이 달라진다.


그간 독서모임을 하면서 생긴 직업적 습관이 있다면 대화의 주파수를 감지하는 센서가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센서가 무뎌 지는게 아니라 더 잘 감지된다. 대화가 산으로 갈 때마다 내 마음에는 사이렌이 울리며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걸 참고 그냥 듣고 있는 게 진정한 배려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론이고 당사자에 대한 배려도 아니었다. 계속 참고 참다가 뒤늦게 경고를 날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오래 끌지 않고 그런 상황이 되면 그때 그때 주제를 상기시킨다.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던 주제는 0 0 0 0 0 이었는데 지금 말씀하시고자 하는 요지가 뭔가요?" 라고 묻거나 틈을 봐서 다른 분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그냥 거두절미하고 책 내용으로 돌아가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 이걸 알게 모르게 계속 반복하면 사람들도 익숙해지고 그런 분위기가 자리잡는다.


에리히 프롬은 <존재의 기술>에서 존재의 기술을 배우는데 장애가 되는 것 중 하나로 '하찮은 이야기'에 빠지는 것을 꼽는다. 하찮음은 사물의 원인이나 심층에는 관심이 없고 사물의 표면에만 관심을 가지는,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향한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개인들 간의 많은 사교모임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하찮은 욕구들을 서로 교환하는 작은 시장들이라 했다. 그런 작은 시장이 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독서모임인데 그것마저 시장으로 만들면 않된다. 적어도 독서모임에서는 휩쓸려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애써 존재의 기술을 다시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존재하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대화는 촘촘해야 한다.



대화의 밀도


위의 '하찮은 이야기'에 대해 쓴 글을 모임에 오시는 분들에게 보여드렸더니 '지금 내 얘기하는 거냐', '찔린다'는 피드백을 여러 명에게 받았다. 글만 보면 우리 독서모임에서는 하찮은 얘기를 꺼냈다간 절대 안 될거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지향한다고 다 이룰 수있는 사람들 같았으면 우린 모두 하버드대 수석 졸업을 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승승장구하는 엄친아, 엄친딸이 되었거나 명상 유튜브 보고 해탈하여 열반했을게다. 아무리 단도리를 한들 여전히 독서모임에서 오고 가는 하찮은 이야기 속에 싹트는 우정을 확인하곤 한다. 왜냐. 우린 태생적으로 하찮은 존재들이니까. 탄소배출과 세계평화에 대한 고민을 세시간 내내 나눈다한들 우주적 관점에서는 우린 모두 하찮다.


허나 그렇게 끝나길 원하지 않는 게 인간이다. 하찮음을 삶으로 극복하려는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책을 읽는다. 보다 먼저 치열하게 사유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며 나를 확장하고 어제보다는 덜 하찮은 내가 되려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하나가 독서모임이기에 그 시간에 나누는 대화는 밀도가 있어야한다. 밀도있는 대화는 책의 어느 지점에 자신의 현재와 내면이 깊숙이 접속하여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이야기한다. 책이 지금의 나에게 일으킨 동이나 균열에 이어지는 생각이나 고민을 공유한다. 이런 고민에 닿으면 아무리 하찮은 주제라도 심연에서는 각자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모두 경청하게 되고 다른 이들의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모임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길다. 좋은 공연을 보고 객석을 떠나지 못하는 관객들처럼 모임이 끝나고도 계속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기도 하다. 모임에서 이런 공명이 있었던 날은 모두가 그걸 느낀다. 그날을 오래동안 기억에 남는다.


독서모임에서 이런 공명이 있는 촘촘한 대화를 위해서는 몇가지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라고 표현하니 좀 딱딱해 보이지만 연마하면 습득할 수 있는 게 기술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의 원제가 The Art of Loving인 것처럼 기술은 'ART' 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마할수록 아름답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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