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의 화학작용

by 도우너

“독서에 열심인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거기서 공동체가 생겨난다. 이는 단지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단체다.”


- C.S.루이스의 《책읽는 삶》



독서모임에 대해서 장황하게 글을 쓰던 와중에 C.S 루이스의 글을 보고 머쓱해졌다. 이렇게 단 두 문장으로 독서모임의 매력을 설명하다니! 내가 책 전체를 통해 결국 하려던 말이 이 두 문장이었다니!


독서모임엔 혼자 책을 읽는 행위와는 다른 독특한 화학작용이 있다. H2(수소)와 0(산소)가 만나서 이전과 전혀 다른 물질인 물이 되는 것처럼, 우유가 치즈되는 것처럼, 배추가 김치가 되는 것처럼, 콩이 된장 되는 것처럼 함께 읽은 책은 그 전과는 다른 책이 되기도 한다. 혼자 읽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낀다. 물론 화학작용이 강한 모임도 있고 거의 없는 모임도 있는데 좋은 모임일수록 건강한 방향의 화학작용이 많이 일어난다. 좋은 모임에는 그런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촉매가 있다. 그걸 맛보면 더 자주 경험하고 싶은 탓에 이런 저런 모임 환경을 궁리하면서 계속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독서모임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화학작용의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요즘 말로는 케미 폭발한다고 할까. 그런 순간들이 꼭 책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멤버들의 수준이 높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멤버가 좋고 책이 좋으면 그런 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기에 모임의 모임 리더는 그렇게 될 조건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만 늘 예상대로 되는 건 아니다.


묵독, 강제 몰입의 시간


일단 독서모임에서는 몰입이 잘 된다. 함께 읽으면 집중이 잘 되는 게 기본이다.

혼자 읽을 때는 책을 읽다가 자주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딴 생각에 빠진다. 잠시 인스타그램도 확인하고 카톡을 보다가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가 쇼츠 영상을 보다 보면 계속 다른 영상들로 빠져들기 쉬운데 독서모임에 함께 있을 때는 외부 자극을 어느정도 통제하게 된다. 특히 집에서 책을 읽으면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서랍정리가 갑자기 하고 싶어지는 등 딴 길로 자꾸 샌다. 그러다 서랍속 옛 친구의 편지를 발견하고 친구의 행방을 조사한다. 모임에서는 함께 읽는다는 목적이 확실하고 주위에 감시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집중할 수가 있다. 책방에서 하는 대부분의 모임은 기본적으로 묵독 시간을 1시간 갖는다. 모임 초기에는 책 읽기 1시간에, 이야기 나누기에 1시간을 할애했는데 요즘은 읽기 시간이 자연스레 늘어나서 1시간 30분 정도 읽는다. 책에 따라서 때론 앉은자리에서 2시간도 집중해서 읽는다. 이렇게 2시간 정도 몰입해서 읽으면 보통 두께의 책들은 도입부를 지나 본론에 들어간다. 보통 책을 사면 앞부분 몇 페이지 읽다가 버려두는 경우가 많은데 모임에서 이렇게 초반 마의 곡선을 지나게 되어서 본격적인 흐름을 타게 된다.



우리는 매주 해외여행을 한다


어느 가을, 독서모임에서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그 소설에 왜 그리 빠져들었는지 정해진 시간 동안 읽고 헤어져야 하는데 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소설 속파도를 제대로 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추석 연휴로 2주 후에나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더 참을 수가 없어져서 모임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헤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버렸다. 일정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뜬 사람들과 소감을 나누기를 고대하며 추석 연휴 지나고 만났는데... 책을 같이 읽은 사람들과 먼저 간 사람들 두 팀이 소설의 결말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그 때 우리가 그 소설의 세계에 빠져들어 책방을 나가지 못했던 순간, 그리고 서로 다른 결말에 어이 없어 하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함께 완전히 다른 세계로 시간여행을 경험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체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나 싶었다. 같은 책을 보지만 우린 상상 속에서 다른 곳을 여행한다. 평소에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닌데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김연수 작가이다.



큰 감동은 설명할 수 없다


2024년 가을, 대구에 간송미술관이 개관했을 무렵 책방에서 <간송 전형필>이란 책을 읽던 날도 그랬다. 미술관은 연일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고 다녀온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파에 떠밀렸던 경험들을 전했다. '간송 미술관’의 유명세에 관심이 쏠린 시기에 편승해 교양을 쌓을 요량으로 읽기 시작한 간송의 삶. 책으로 만난 그의 인생은 숭고하기 그지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깊은 한숨, 여기 저기서 감탄사들이 우러나왔다. 책을 읽는 시간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하는데 우리는 한참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삶이 준 울림이 커서 언어로 감상을 보태는 것이 모든 감동을 조악하게 만들어 버릴까 다들 말을 아끼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몰입해서 읽고 그 감동이 함께 책을 읽는 공간안에 파동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간송미술관에 이미 갔다온 사람들도 다시 가봐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간 분들은 미술관 안 '간송의 방'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를 들려주셨다. 같은 간송미술관이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다른 미술관을 경험한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혼자 책 읽는 것과 함께 읽는 것. 무슨 큰 차이가 있겠냐 싶지만 혼자 하는 사랑과 둘이 하는 사랑이 어찌 같은가.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는 것과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이 어찌 같은가.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을 때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꼭 다음에 누구를 데리고 와야겠다고 다짐하거나, 누구에게 맛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는 것과 함께 나누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좋은 책을 읽는 것도 그렇다. 좋은 것을 경험할 때, 즉 어떤 감각의 절정을 경험할 때 인간은 표현하고 나누고 전달하고 싶어지는 ‘우리’라는 감각이 깨어나는 것 아닐까. 독서모임은 그렇게 우리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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