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민하는 많은 문제,
답이 보이지 않는 한숨만 나오는 일들은 양립하지 않는 것(모순)들을 가지고 둘다 갖겠다고 할때 생긴다.
공부하기는 싫고 공부는 잘하고 싶다.
맛있는거 많이 먹고 살은 빼고싶다.
힘든 거는 싫고 돈은 많이 벌고 싶다.
아이가 자유로웠으면 좋겠고 엘리트를 원한다.
고통은 피하고 성장은 하고싶다.
왼쪽길 끝에 보물이 있고 오른쪽 길에도 보물이 있다.
동시에 둘다 가겠다고 하면 아무데도 못간다.
한쪽을 선택해야 앞으로 나아간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말한다. 프롬은 "인간의 성격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만이, 즉 존재지향에 힘입어서 소유지향을 몰아내는 것만이 정신적 및 경제적 파국을 모면할 수 있다" 라고 하며 그러한 근본적 성격변화는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방법론으로 불교언급) 또한 아무리 깊은 통찰에 이르러도 이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다.
옛 자아가 죽고 옛 각본을 버려야한다.
언제?어디서?
지금은 아직 아니라며 언젠가 그럴만한 때가 오겠지 라고 기다리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쳐맞아 죽거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지금 여기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면 된다. 죽음의 두려움이 아닌 탄생의 즐거움이 더 크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묻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한다.
"당신이 지금 살아가는 그 삶이 앞으로도 무수히 반복된다면, 당신은 그것을 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