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에서 자유로
나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몸이 아플 때 무슨 병인지 알아야 치료를 하고, 공부를 할 때도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하듯이 내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생각들을 가두어 형체를 부여했는지,
어떤 생각들이 날아가지 못하고 고체화되었는지,
어떤 생각들이 연합해서 덩치를 키웠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작업은 약간의 훈련을 하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노와 불안을 잘 들여다봐도 어느정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화가 난다면 문제는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전에 내안의 무엇이 반응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방향이 문제해결에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살펴 내려가다보면 내 무의식에 모양을 짓고 화석처럼 굳어있는 신념들이 드러납니다. 넌 그래야만 한다. 난 이래야만한다는 당위들이 있습니다. 그 신념들은 허술하게 쓰여진 시나리오, 모양만 그럴듯한 허수아비 같은 것임을 자각해야합니다.
불교의 대승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에 나오는 4구게입니다.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만일 모든 상을 상이 아닌 것을 본다면 면 곧 여래를 본다는 뜻입니다. 형체 없는 것을 형체가 있다고 믿는 것을 불교에서는 상(相)을 짓는다고도 합니다. 금강경의 이 문장에 따르면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바로 해탈이라고 합니다. 어때요, 해탈하기 참 쉽죠? 누워서 떡 먹기처럼, 누워서 해탈할 노릇입니다. 이 문장은 1등 당첨번호 다 가르쳐준 로또 같은, 참으로 강력한 말입니다. 선불교 6대 조사인 혜능은 이 문장을 듣고 바로 깨달았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혜능이 아닙니다.
절에 오래 다니시는 보살님들이 금강경 필사, 독송, 암송하며 금강경을 술술 읊는다고 다 해탈하진 않지요. 한국에 기독교인들이 몇 백만 명이지만 모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배추가 있다고 김치가 되는 건 아니듯 '안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는 것, 이게 말은 쉽지만 막상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는 그것이 상인 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에펠탑 아래에서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들이 깊숙이 박혀있기도 하고 너무 오래 믿어와서 스스로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노력과 수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산에 가서 수련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부딪히는 모든 일에서 내 경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오래해도 내면을 들여다보는 노력은 하지 않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거나 수동적으로 외부에서 내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나이만 들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