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은 책방할머니

by 도우너

처음 책방을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게 있다.


"딱 10년만 해보자."


제길. 10년이 지나버렸다. 그렇게 다짐하던 시절에는 10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 몰랐거니와 그쯤하면 책방으로 성공했거나 아니면 내가 성장해서, 즉 환골탈태하여 미련없이 이 일을 접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은 책방은 여전히 작고, 나도 여전히 작다. 책방에 아직 미련이 많이 남았고 미련보다 더 많이 남은 재고가 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에 넘쳐났던 20대의 어느 날,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40대 선배에게 한 곳에서 오래 일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 선배는 그 일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한 집안의 가장이 되고나니 선택지가 많이 남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는 갸우뚱했던 말을 나도 그 나이가 되고 부모가 되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턱대고 시작했던 많은 일들을 통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고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생기니 가급적 모험은 피하는 안전지향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지금 하는 책방 역시 그렇다. 시작할 땐 책이 좋아서, 열정과 모험심이 버무려져 시작했지만 감사하게도 이 일이 나름 적성에 잘 맞다는 거, 그간 시행착오를 얼추 지나고 나니 지금 책방일이 능숙해져서 다른 모험을 꿈꾸지 않는다. 처음의 열정은 시간에 녹아 이제 잘 보이지 않지만 없어진 것이 아니고 희석된 것이므로 지금의 덤덤함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욕심내어 조금 더 나은 책방의 미래를 그려보자면, 백발이지만 허리는 꼿꼿하고 눈빛은 살아있는 책방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 지금보다 더 다정하고 여유롭고 지혜로우면 좋겠다. 얼마전 제인구달 박사가 돌아가셨을 때 신문에서 본 그녀가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백발에 할머니지만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웠다. 그런 눈빛을 가지려면 부단히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깨어있어야겠지. 그리고 한 번 더 열정을 내어 책방 공간도 이동하고 싶다. 처음 시작했던 10평 공간에서 복닥거리며 3년을 보냈고 지금 의 23평 공간에서 7년을 보냈는데 다음에는 좀 더 한적한 장소에 1층이 아닌 2층의 더 너른 공간을 꿈꿔본다. 커다란 창밖으로 나무들이 보이고 모임공간도 더 커지고 무엇보다도 둥글고 커다란 타원형 책상에서 모임을 하고 싶다. 지금 모임하는 방은 작아서 직사각형의 좁고 긴 책상을 사용하고 있는데 좁은 면에 앉으면 회장님 자리 같아서 영 부담스럽다. 둥근 책상은 두드러지게 주목받는 자리가 생기지 않아서 좋은 반면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꿈만 꾸고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책 제목처럼 이것이 무슨 마음인지 설명하긴 복잡하지만, 책방은 그만하고 싶으면서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하고싫은' 마음이랄까. 그것은 싫은게 아니라 그럼에도 하고싶은 마음일테다.


얼마전 SNS에서 한 유명인이 부자의 정의에 대해 말하길 "돈이 더 많아져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바꾸지 않은 사람" 이라고 했다. 그 말씀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내 체중을 다 실어 '좋아요'를 눌렀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자의 기준에 본의아니게 부합하고 말았다. 윷놀이에서 빽도로 모에 간 기분.


지금은 책방이모쯤 되는데 이렇게 늙다보면 책방 할머니가 될 테니 나의 장래희망은 이미 시작되었다.

심지어 책방 할머니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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