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당연히 주변에서 우리 집 아이들은 그림책을 많이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 애들은 그림책과 거리가 멀다. 나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애써 노력하지도 않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이들도 별 흥미가 없다. 그래서 그림책과 관련된 에세이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며 느낌 감상들이 나에게는 좀 낯선 이야기들이다. 또한 육아의 고수(?)들이 말하는 '그림책 육아'라는 개념 또한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책방에 와서 나에게 그림책 육아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엄마들 앞에서 면목이 없는 건 둘째치고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다.
두 아이 모두 초등학생일 때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할 때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독서습관이 안 잡혀있다고 다양한 책에 노출해 줄 것을 권하며 어릴 적 독서습관이 평생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들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속으로 '제가 아이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책방을 운영해서 이미 다양한 책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데.... 독서는 때가 되면 읽는 거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선생님께 "네네~ 알겠습니다. 집에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선생님과의 통화 후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기르는 대신 엄마가 그림책 카페를 하는 것을 학교에 알리지 말라는 교육을 실시했다. 이순신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하였던가. 독서습관이 잡히지 않은 아이들의, 그림책방을 하는 어미는 나의 업을 선생님께 알리지 말라 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그림책방 주인으로서의 치명적인 하자가 아닐 수 없지만 약간의 변명을 좀 해보자.
세상은 넓고 어린 시절에 독서 말고도 할 거는 많다. 고로 아이들은 굳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괜찮다. 프랑스 소설가 다니엘 페낙은 독자의 10가지 권리 중 첫 번째로 '책을 안 읽을 권리'를 말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책을 안 읽을 권리 따위는 없는 환경,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그리고 집에서 다양한 전집을 통해 이미 많은 책을 보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 더 보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러한 하자를 자백하며 책방을 소개할 때 작게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방’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는 책을 많이 읽히면 읽힐수록 좋다는 강박에 가까운 의무감을 가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이책 전집 회사에서는 인간의 뇌 발달에 있어 유아기가 결정적 시기임을 강조하고 그 시기를 놓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에 발맞추어 부모들은 가능한 많은 책을 ‘읽히기’에 매진한다.
책을 보는 행위의 근본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각자 다른 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이유는 사유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으로 내 삶의 불필요한 것들을 쳐낼 수 있게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풍요롭고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독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사유의 힘을 한 인간의 스펙 향상을 위한 도구로 가정할 때, 그리고 그 스펙들이 풍요로움 가져다줄 것이라고 착각할 때 부터 독서는 힘을 잃는다.
신생아 때부터 초점책을 필두로 헝겊책, 목욕할 때 보는 방수책, 조금 더 자라면 성장동화, 수학동화, 자연관찰, 과학동화, 인성동화, 생활동화, 창작동화, 전래동화, 명작동화 등등 연령대에 맞게 ‘넣어주어’야 하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인터넷 육아 카페에는 그림책 육아로 아기가 15개월에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는 엄마의 성공담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우리 책방에도 아직 돌도 안 된 아기에게 그림책을 추천해달라고 오는 이들이 많다. 그럴 때는 슬쩍 엄마를 위한 그림책을 권한다.
우리 모두 경험했듯이 초점책을 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우리 눈의 초점은 자연스레 맞는다. 초점책이란 존재도 몰랐던 우리 조상들, 혹은 몽고인들도 시력이 우리보다 좋다. 감성동화는 아이의 감성을 키우는데 일조하겠으나 진짜 감성은 아이가 자라 아픈 짝사랑을 해보고 첫사랑과의 결별에 몸부림치며 유행가 가사만 듣고도 눈물 흘릴 때 피어나며, 수학동화를 읽은 아이는 읽지 않은 아이보다 수학 점수가 더 높을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상 <수학의 정석>으로도 잡히지 않았던 수학 개념은 대출 이자를 계산하며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관찰 책에 수없이 나오는 ‘포유류’라는 단어는 내가 사춘기를 거치며 몸의 변화를 체험하고 엄마가 되어 젖을 물리기 시작했을 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모든 일은 책을 읽어 해결되는 게 아니고 경험이 무르익어 더해졌을 때 해결된다. 이쯤 되면 저 이상한 그림책방 주인은 어린 시절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응당한 이유를 꼽으라면 부모와 살을 맞대고 앉아 책을 읽으며 함께 공유하는 감정과 시간 때문이 아닐까. 아이가 먼 훗날 어릴 적 엄마 아빠와 그림책 읽던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림책의 세세한 내용보다 책을 읽어줄 때의 엄마 표정, 아빠 품 안에 있을 때의 온기와 냄새를 더 오래 기억하리라. 그리고 그런 기억은 꼭 책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목욕탕에서 서로 등밀어주면서도 가능하다.
오사다 히로시의 시 <세상은 한 권의 책>
"쓰여 있는 글자만이 책은 아니다. 해의 빛, 별의 반짝임, 새의 울음소리, 강물소리도, 책이다.
너도밤나무 숲의 고요함도, 산딸나무의 하얀 꽃들도, 크고 고독한 느티나무도, 책이다.
책이 아닌 것은 없다. 세상이라는 건 펼쳐진 책이고, 그 책은 보이지 않는 말로 쓰여 있다.
(중략) 인생이라는 책을, 사람은 가슴에 품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은 한 권의 책이다. 기억을 잃은 노인의 표정도, 책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요리에 비유하자면 소금과 같다. 요리에서 소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소금으로 뭐든 해결되는 건 아니다. 여러 가지 식재료들이 조화를 이루고 거기에 마지막으로 적당량의 소금을 뿌려 간이 맞았을 때의 음식은 빛을 발한다.
요즘 독서모임에서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읽고 있는데 다들 중고등학교 다닐때는 그렇게 재미없던 화학, 물리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였냐며 놀라워한다. 유튜브로 물리학, 양자역학 자료를 찾아 공부하기도 한다. 모든 공부는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때가 되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그림책 육아를 하지 않아도 모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훌륭하게 자라난다.